양력설을 맞으며 나이 한 살 더 먹는다고 아쉬워했는데 벌써 1월도 지나고 2월이 됐습니다. 제가 남한에 와서 8번째로 맞는 음력설입니다.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면서 저는 음력설과 추석 명절을 은근히 기다리게 됩니다. 자식들이 주는 용돈을 받는 재미도 아주 쏠쏠합니다. 전에는 명절이 되면 제가 아이들에게 설 세뱃돈을 줬는데 언제부터인가 저는 자식들에게서 설에 용돈을 받게 됐답니다. 용돈을 받을 때마다 '나도 이젠 나이가 많이 들었구나' 하면서도 기쁘고 사람 사는 맛이 나서 행복합니다.
설을 앞두고 일주일 전부터 서울 시민들은 설 준비로 분주했습니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재래시장에는 시장을 보러 나온 아낙네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고,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통해 물건을 판매하는 TV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은 어느 때보다도 호황을 맞았습니다. 물건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의 상담 전화가 폭주하면서 전화 통화하기도 힘들 정도였습니다.
올해는 물가도 만만치가 않게 올랐습니다. 저는 설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노량진 수산물 시장에 가서 큰 사위가 제일 좋아하는 영덕 게와 대하, 그리고 작은 사위가 좋아하는 소고기 갈비와 닭고기, 고사리와 콩나물, 녹두 나물도 빼놓지 않고 샀습니다. 그리고 손녀, 손자가 잘 먹는 남방 과일과 고급 사탕과자도 준비했습니다.
하루에 두 차례씩 시장과 마트에 가서 먹거리를 구입해 집까지 배달을 해달라고 신청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친구 숙자를 만났습니다. 숙자도 명절 먹거리를 사려고 시장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우연히 마주친 우리는 이곳 대한민국은 매일이 명절 같아서 명절에도 특별히 먹고 싶은 것이 없어서 무슨 음식을 만들어서 가족들을 기쁘게 해 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웃었습니다.
친구 숙자는 모든 것이 부족했던 북한에서는 맛없는 것이 없고, 없어서 먹지 못했는데 지금은 좋은 것으로 골라 먹다 보니 배에 기름이 껴서 그렇다고 말해 한참을 웃었습니다. 정말 그런 것도 같습니다. 이곳 대한민국에는 없는 것이 없습니다. 도시 사람들의 생활이나 시골 사람들의 생활이 먹고 사는 데서는 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연선이 고향인 친구 숙자는 어느 해 설날인가 정말 아이들에게 흰 쌀밥 한 끼 제대로 해줄 것이 없어서 옆집에 살고 있는 친구와 둘이서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를 안고 밤에 두만강을 건넜다고 합니다. 술 찌꺼기를 먹인 강아지를 넣은 배낭을 등에 지고 꽁꽁 얼어붙은 얼음 위로 손을 꼭 잡고 엉거주춤하고 한창 걷고 있는데 강아지가 움씰 하는 바람에 그만 미끄러져 넘어졌다고 합니다.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써도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국경 경비대 보초병에게 중국에서 돌아오면 돈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면서도 무척 무섭고 떨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힘들게 고생하면서 가지고 간 강아지 두 마리를 사려는 사람이 없어서 팔지도 못했다고 했습니다. 주인집에 사정을 해서 강아지를 맡겨 놓고 후에 다시 온다고 하고 겨우 쌀 10kg을 구입해 가지고 그 엄동설한에 다시 두만강을 넘어 집으로 왔다고 했습니다.
강아지를 팔지 못해 국경 경비대 보초병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돈을 주지 못하게 됐는데 다음에 주겠다고 사정을 했건만, 그 보초병은 쌀을 모조리 빼앗았다고 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군부대 보위지도원에게 끌려가 취조를 받고, 단련대에 끌려가 6개월 동안 강제 노동까지 했다고 했습니다. 이런 가슴 아픈 일은 친구 숙자만 당한 것이 아닙니다.
저 역시 설날 아이들에게 쌀밥을 해주기 위해 어쩌다 명절에 공급되는 사탕과자를 먹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는 미안했지만, 그것을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그리고 명절에만 맛볼 수 있는 겨우 1kg 분량의 돼지고기도 시장에 내다 팔아 쌀을 구입해서 흰 쌀밥을 해 먹인 적도 있습니다.
설 명절이 됐지만, 북한 주민들은 흰 쌀밥 한 그릇 배불리 먹을 수가 없습니다. 평양시 주민들에게는 세대 당 콩나물 1kg과 고급담배 2갑, 술 1병, 두부 일인당 10전, 바나나 일인당 1개, 귤 일인당 1개, 고급사탕 일인당 140g, 그리고 알사탕과 돼지고기, 계란, 기름 등이 쥐꼬리만큼이나마 공급되지만 지방 사람들은 생전 이런 것을 구경도 못합니다.
설날 아침, 상다리가 부러질 듯 상을 차려 놓고 저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북녘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언제이면 우리 아이들과 함께 차에 좋은 선물을 한가득 싣고 부모님 산소를 찾아가 둘째 딸이 왔다고 큰 절을 할 수 있을까 그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원할 뿐입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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