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남북한 주부들이 함께 꾸려가는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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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으면 사람 사는 맛이 납니다. 제가 속한 탈북여성을 위한 단체인 하나여성회가 서울시로부터 예비 사회적 기업 승인을 받아 남과 북의 주부들이 함께 모여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형 예비사회적 기업이라는 것은 55세 이상과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한 목적으로 서울시에서 지원금을 대주고 있는 기업을 말합니다. 사회적 기업은 비영리조직과 영리 조직의 중간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요즘 하는 일은 자동차 핸들 가죽 커버를 씌우는 수봉제 작업입니다. 함께 일하는 여성 중에는 1.4 후퇴 때 남한으로 내려온, 고향이 황해도 송화군인 실향민도 한 명 있습니다. 남과 북의 50대 여성들은 일하면서 한편으로는 수다도 떨며 재미있게 지내고 있어서 일이 지루한 줄도 모릅니다.

우리는 점심도 도시락을 싸가지고 와서 같이 먹고 있습니다. 반찬을 한 사람이 한 가지씩만 가지고 와도 갖가지 반찬이 차려져 그야말로 진수성찬이 됩니다. 한번은 제가 음식 솜씨를 보여 주기 위해 돼지 쪽갈비찜을 북한식으로 만들어 간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다들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배부르고 뿌듯했습니다.

한 여름이지만 식사 후에는 따끈한 커피 한 잔을 들고 마주 앉아 즐거운 휴식시간을 갖는데 서로 알고 있는 재미있는 얘기를 하기도 하고, 즐거운 농담도 많이 합니다. 사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는 서먹서먹해서 그런지 우리 탈북자들이 웃고 떠들면서 이야기하거나 각자 살아온 소설 같은 이야기들을 하면 이곳 남쪽 여성들은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해 주기도 하고, 맛있는 것이 있으면 회사로 가지고 와서 함께 나누어 먹기도 합니다. 매실이 나던 때는 강원도가 고향인 정숙 씨가 시골에서 좋은 매실을 구입할 수 있도록 소개해줬고, 주말에 시골에 다녀온 영화 씨는 쑥떡을 가지고 와서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실향민인 인석 아저씨는 서먹함을 없애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맛있고 분위기 좋은 서양식 식당인 레스토랑으로 우리를 초청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첫 월급을 탔을 때 기분이 좋아서 신토불이 오리고기 식당에 가서 회식도 하고, 노래방에도 갔습니다. 남한 여성들은 우리 탈북자들이 목숨을 걸고 남한으로 온 탈북과정을 이야기하자 열심히 들어주고 함께 마음 아파해 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농담을 할 때는 함께 웃어 주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남한 여성인 경화 씨가 북한 사람들의 농담이 너무 야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서슴없이 북한 사회에서 뼈를 굳히며 살아온 모습이 바로 그 모습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치 얘기를 하다가 자칫 표현을 잘못하면 3대 가족이 멸족되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 놓고 말할 수 있는 건 이런 진한 농담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런 말도 덧붙였습니다. 이곳 남한 사람들의 생활이 자유로워서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서슴없이 표현하면서 살기 때문에 농담의 농도가 연한 것 같고, 우리 북한 사람들은 마음대로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기 때문에 농담이라도 농도를 진하게 할 수 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사실 진한 농담은 나중에 별로 남는 것이 없다고 했더니 모두가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점심에도 각자가 가져온 반찬으로 푸짐한 상을 차렸습니다. 중국에서 몇 년씩 살다 이곳으로 오다보니 탈북여성들은 중국 요리도 곧잘 합니다. 오늘은 계란에 토마토를 섞어 볶은 요리도 있었고, 오이무침이며, 북한 사람들도 좋아하는 감자볶음도 있었고, 한국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된장에 고추도 있고, 텃밭에다 심어 가꾸어온 쑥갓도 있었습니다. 저는 요즘 매일같이 점심시간을 기다립니다. 왜냐하면 남북한 주부들의 음식 솜씨도 감상하고 갖가지 반찬도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일 점심상은 또 어떻게 차려질지 기대가 됩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