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신종 플루 예방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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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저는 오후에 신종 플루 예방주사를 맞기 위해 마을에 있는 내과 병원으로 갔습니다. 갑작스런 추위가 닥친 데다 독감이 퍼질 수 있는 계절이라 사람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병원에는 예상 외로 사람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예방주사를 맞고 있는데 옆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안면이 있는 사람이 왔습니다. 그는 이미 감기를 앓고 있어 치료를 받기 위해 왔다고 하면서 신종 플루 예방주사를 맞고 있는 저를 보고는 정말 좋은 세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도 역시 북한에서는 나이 60이 되면 예방주사를 놔주지도 않는데 얼마나 좋은 세상이냐며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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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진구청 대강당에서 노인들이 독감과 신종인플루엔자를 예방하는 백신을 무료로 접종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그 말을 들은 의사 선생님은 정말이냐고 물으면서 이곳 대한민국에는 65세 이상 되는 분들은 보건소에서 무료로 예방주사를 놔준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어렸을 적에 예방주사를 맞아본 기억이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고향이 어디인가고 제가 묻자, 그는 량강도 두메산골이라는 말 밖에 하지는 않았습니다. 한참 뒤에야 그는 평양이 고향이었는데 어렸을 때 아버님이 전과자로 추방되어 량강도의 이름 없는 두메산골로 추방됐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평양에 있을 때 예방주사를 맞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마저도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지금 내가 만약 북한 땅에 살고 있다면 새로운 독감이라는 신종 플루 예방주사를 맞을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새삼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저는 고향에 있는 동생이 결핵에 걸려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 아팠던 기억이 났습니다. 저희 집안에는 원래 결핵으로 앓은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 50이 된 동생이 결핵에 걸렸는데 병원에서는 잘 먹어야 한다는 얘기 밖에는 아무 치료도 하지 못하고, 지금 대책 없이 집에서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밤을 꼬박 새우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결핵은 잘 먹으면 낫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옛날 배우지 못하고, 전혀 의학적 상식이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그런 진단 밖에는 내리지 못했다고 하니 정말 한심하고, 그런 곳에서 결핵에 걸린 동생이 너무 안쓰러웠습니다. 과거에는 결핵이나 간염에 걸리면 다른 사람들에게 옮길까봐 무조건 요양소나 결핵병동에서 입원 치료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결핵병동에 입원하는 것도 안면이 있어야 한다고 했고, 입원을 해도 특별한 치료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제 동생을 남한에 데려올 수만 있다면 문제없이 치료도 받고 금방 몸을 회복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저는 요즘 새문화 사회복지연합회에서 홈쇼핑 종이팩을 만드는 일을 나이 많은 어르신들에게 가르치면서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그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거의 70이 넘은 분들인데 건강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르신들은 아침 9시가 되면 마을 주변에 있는 산에 올라가 건강공단에서 가르쳐주는 치매 예방운동을 따라 한다고 합니다. 그 운동이 끝나고 나면 우리 새문화복지연합회에 와서 홈쇼핑 종이 팩을 만드는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 분들은 모두 보건소에서 신종 플루 예방주사를 무료로 맞았다면서 남은 인생을 즐겁게 보내는 것이 행복하다고 자주 말씀하시곤 합니다.

저는 그 분들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향에 두고 온 부모님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저와 우리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이런 세뇌 교육을 받았습니다. 남조선에는 예방주사는커녕 병에 걸려도 돈이 없어 병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하고 죽는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모두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유아들이 기본적으로 맞아야 하는 예방주사나, 나이 많은 어르신들을 위한 독감 예방주사는 국가에서 무료로 맞춰주고 있습니다. 우리 탈북자들도 의료보험 1종으로 무료로 치료를 받고 있고, 국민들도 의료보험이 있기 때문에 중병이 아닌 질병은 싼 값으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결핵이나 간염은 큰 병으로 치지도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북한의 병원에서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진단만 해주고, 처방은 장마당에 가서 주사약이나 약을 사 먹으라는 말만 해줄 뿐입니다. 지방 사람들이 평생 동안 예방주사 한 대 맞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것도 역시 오래전 옛 일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한 현실입니다. 결핵에 걸렸는데도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무기력하게 누워있을 가엾은 제 동생의 모습은 북한 전체 주민들의 모습과 조금도 다름없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