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저는 친구들과 함께 경기도 광주에 있는 팔당 청정국민식수원 개선 본부라는 곳에 다녀왔습니다. 오전 11쯤에 서울을 출발해 약 1시간이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구불구불한 산골길과 작은 동굴 길을 지나 목적지에 도착한 순간, 저 뿐만 아니라 친구들의 입에서는 '우와! 공기도 맑고, 정말 아름답다'라는 감탄의 말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집이 몇 채 안 되는 작은 산골이었는데 커다란 하얀 개 한 마리가 맨 먼저 달려와 꼬리를 휘저으며 좋아라 우리를 반겨 맞아주었습니다. 주변에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들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팔당 청정 국민식수원 개선 본부의 회장님은 미리 장작불을 피워 놓고,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초면이라 정중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참 친절한 분이었습니다. 마침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점심시간이라 차에서 내리자 우리들은 주인이라도 된 듯 일사불란하게 식사 준비를 했습니다. 한쪽에서는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안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아직 밭에 있는 파란 상추와 미나리를 뜯어 맑은 물에 씻기도 했고, 미국산 소고기를 넣고 김치찌개도 끓였습니다. 저는 책상에 있는 밤 봉지를 풀어 구멍탄 불에 밤을 구웠습니다. 과거 군복무 시절에 밤을 구워 먹던 생각이 나서 작은 손칼로 밤눈을 조금씩 떼내고 시뻘겋게 달아오른 난로 위에 밤을 올려놓는 저의 모습을 보던 회장님은 어디서 많이 해본 익숙한 솜씨라고 했습니다.
먹을거리 준비에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누군가 꽁치 한 상자를 안고 올라왔습니다. 그 분은 활활 타는 장작불에서 숯을 끌어 당겨 놓고 가지고 온 꽁치를 그 위에 올린 뒤 소금을 뿌렸습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날 정도로 맛있어 보였습니다. 맑은 공기 속에서 아름다운 늦가을 단풍을 바라보며 장작불에 바로 구운 꽁치와 먹는 막걸리는 참 별맛이었습니다. 뜨거운 꽁치는 두 손으로 쥐고 뜯어먹어야 제 맛이라고 해서 숯검댕이가 묻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두 손으로 꽁치를 들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꽁치도 먹고, 구멍탄 불에 구운밤도 먹느라, 제 입술과 손은 어느 새 어린아이 마냥 까맣게 됐습니다. 동심으로 돌아간 제 모습이 재미있어서 기념으로 사진도 한 장 남겼습니다.
소고기 김치찌개에 제대로 된 점심밥을 먹고는 우리는 간단하게 회의를 했습니다. 회의가 끝난 뒤 저는 소화도 시킬 겸 집 주변을 돌아보았습니다. 옛날에 독을 굽던 집이라고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독을 굽던 흔적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주변 밭에는 아직도 푸른 대파가 있었고, 미나리와 상추도 싱싱해 보였습니다. 40m 위에 있는 고속도로에서는 쉴새없이 차들이 오가고 있었고, 주변에는 아름다운 들쑥국화가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를 손전화기에 있는 사진기로 찍기도 하고, 들쑥국화 한송이를 꺾어 그윽한 향기도 맡으면서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했습니다.
평양에도 가을이면 들쑥국화가 활짝 피고, 모란봉 단풍이며,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거리가 있었는데, 왜 그 때는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는 감정이 메말랐던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열악한 북한 사회에서는 먹고 사는 것 자체가 큰일이고, 사는 게 고단해서 계절마다 달라지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여유조차 없었다고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쓸쓸했습니다.
5시가 조금 지나자 산골에는 어둠이 깃들었습니다. 우리는 노래방 기계를 틀어 놓고, 흥겨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장작불에 소고기를 구워 먹으며 노래도 부르고, 얘기꽃을 피우는 사이 지난 한 주 동안 받은 스트레스는 어느새 싹 사라졌습니다. 7시 쯤 우리는 아쉬운 발길을 돌려 서울로 향했습니다. 같이 간 친구들 중에는 저와 같은 탈북자도 있었고, 이곳 남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함께 나눈 시간은 우리를 더욱 가깝게 만들어준 것 같았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