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 노부부의 아름다운 사랑

노부부의 사랑과 이별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주인공 강계열 할머니와 조병만 할아버지가 2010년 10월 손을 꼭 잡고 강원도 횡성한우축제를 찾고 있다
노부부의 사랑과 이별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주인공 강계열 할머니와 조병만 할아버지가 2010년 10월 손을 꼭 잡고 강원도 횡성한우축제를 찾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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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함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관으로 들어가면서 또 빠지지 않으면 안 되는 팝콘과 콜라가 있죠. 팝콘과 콜라를 양손에 들고 북한 사투리를 써가며 입장 시간에 맞추어 영화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한파로 몹시 추운 날씨였지만 영화관 안은 훈훈했습니다.

목도리와 외투를 벗어 놓은 다음 들고 들어간 팝콘과 콜라를 지정된 자리에 놓고 앉아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는데, 광고가 끝나고 드디어 ‘님아, 저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기본영화가 시작되자 물을 뿌린 듯 조용해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배우들이 아니었고 또 말씨는 어딘가 모르게 중국 조선족들의 말씨나 북한의 말씨 같았거든요.

알고 보니 강원도 횡성의 어느 시골에 살고 있는 98세의 조병만 할아버지와 89세의 강계열 할머니가 14살에 만나 76년을 알콩달콩 살아온 노부부의 행복한 삶이었습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한번은 가야 한다는 인생이라고 하지만 14살 소녀시절에 9살 위인 할아버지를 남편으로 만나 즐겁고 행복한 삶이 생활 그대로 방영된 실화였습니다.

언제나 손목을 놓지 않고 꼭 잡고 다녔으며 캄캄한 밤에 화장실에 들어간 할머니의 무서움을 덜어주기 위해 할아버지는 추운 마당가에 서서 정선 아리랑의 노래를 불러 드리기도 하고 마당에 수북이 쌓인 가랑잎을 쓸면서 가랑잎을 한줌 쥐여 할머니의 머리에 뿌려 주며 장난치다가 토라진 할머니의 머리에 노란 국화꽃을 꽂아 주며 달래 주기도 합니다.

또한 어린 소녀 소년들처럼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도 하던 두 노부부, 새해 첫 눈을 먹으면 귀도 밝아지고 눈도 밝아진다면서 서로에게 눈을 먹여 주던 노부부의 삶은 영원할 줄 알았건만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야만 합니다.

이 영화는 평생 사랑을 해도 부족한 부부의 아름다운 사랑과 이별을 보여주며 세대 차이를 떠나서 누구든지 나도 저런 사랑을 하며 한번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끔 큰 감동을 주는 영화였습니다. 사실 저 역시 지난 시절 저런 뜨거운 사랑을 해 보았나 돌이켜 보면서 이제 남은 인생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노부부들처럼 사랑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올해 제 나이 환갑이 되었거든요. 한일 없이 나이만 들었네, 하는 생각도 가끔은 해 보지만 북한 같으면 환갑이라 하면 아무 쓸모없는 늙은 할미로 취급 받을 것입니다. 북한에 있었다면 그저 골목시장에 쭈그리고 앉아 작은 채소나 팔고 한심한 노인네로 취급을 받고 있을 것입니다. 쉽게는 외출을 하려고 버스를 타도 또 지하철을 타도 젊은 사람들은 복잡통에 이 노친은 집에 가만있지, 왜 이렇게 다니느냐? 하는 얘기와 꾸지람을 흔히 듣게 되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곳 한국에서는 ‘60이 청춘 90이 환갑’이라고 지금 제 나이를 두고 한창 나이라고 합니다. 며칠 전에도 어느 이름 있는 음식점에 갔었는데 83세인 식당 주인 어르신이 지금 이 모습에서 더 늙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조금은 수줍은 얘기지만 때로는 공주병에 들 때도 있습니다.

하기에 노부부들의 실화가 그토록 제 가슴에 와 닿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이미 겪어 본 경험이 있는 저로서는 이 영화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순간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가슴 아프고 슬픈 것인가를 알게 됐습니다.

우리 어머님도 홀로 자다가 숨을 거둔 아버지를 두고 얼마나 슬프고 마음이 아팠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부모님들이 가시는 마지막 길을 바래주지 못한 죄책감으로 인해 영화를 보는 내내 저는 많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아버님은 사망되기 이틀 전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고 합니다. 첫째로부터 시작해 7번째 막내 동생에 이르기까지 한명 한명 이름을 불러가며 평소에 하고 싶었던 얘기와 부탁하고 싶은 얘기들을 다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서 평소 같으면 아래 목에서 홀로 잠자리에 들곤 하던 아버님은 그날따라 잠들기 전에 어머님의 손목을 꼭 잡고 그동안 고생을 너무 많이 시켜 미안하다는 말을 하셨다고 합니다. 누구보다도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란 저였지만 평양시 행사로 인해 아버지의 사망 전보를 받았지만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고, 어머님은 제가 이곳 대한민국으로 온 후에 사망했기에 결국은 두 분의 부모님 장례식에는 참가하지 못한 불효자식이라는 자책으로 인해 영화를 보는 내내 더더욱 눈물이 났습니다.

영화를 본지 시간이 좀 지났지만 지금도 저는 노부부의 아주 행복했던 삶과 마감 생에 대한 모습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저는 이 영화를 보고나서 남은 인생 그 노부부들처럼 행복하고 즐거운 삶과 내 가족들에 대한 사랑과 또 누구를 마음껏 사랑하고 사랑을 받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