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을 왕으로 모시는 남한 회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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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설 명절이라 떠들썩하던 분위기도 잠시, 한 달이 훌쩍 지나가고 어느새 2월도 중순입니다. 올해 겨울은 여느 때 없이 유난히 추웠지만 워낙 겨울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즐거운 시간들이 아닌가 합니다. 방학이라 찾아온 꼬맹이 손자 녀석들과 즐거운 추억들을 만들었거든요. 그중에서도 제일 잊히지 않는 재미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꼬맹이들의 아침 식사준비를 준비하느라 분주히 서성거리고 있는데 만화 영화를 보고 있던 4살짜리 손녀애가 리모컨을 들고 텔레비전이 나오지 않는다고 쫑알쫑알 조르고 있었습니다. 주방 일을 하느라 바쁜 저는 못들은 척 했습니다. 더 웃기는 것은 7살짜리 개구쟁이 손자 녀석이 동생의 리모컨을 빼앗으며 할머니는 나이가 많아 귀를 잘 듣지 못한다고 크게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순간 저는 벌써 제 나이가 그렇게 들었나, 하는 생각과 함께 지나온 일들이 떠올라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 일생 중 반생을 북한사회에서 살아온 제 입에서는 손자들 앞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북한 사투리가 많이 튀어나와 손자들에게 놀림을 받을 때도 가끔은 있었거든요.

주방에서 음식을 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내던 중 때로는 튕기는 뜨거운 기름방울에 나 자신도 모르게 아이 따가워, 하고 소리치면 손녀딸애가 뽀로로 달려와 바늘이나 가시에 찔렸는가 하고 되묻곤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가끔은 이런 모습을 피하려고 손자들의 물음에 자신도 모르게 미처 알아듣지 못한 듯 할미는 나이가 많이 귀가 잘 안 들린다고 핑계를 대곤 했습니다.

그렇게 반복적으로 할미의 입에서 같은 변명을 입버릇처럼 듣던 손자녀석이 그런 말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손자녀석에게서 리모컨을 받아 쥐고 한참을 이리저리 만져 봤지만 텔레비전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크게 고장이 난 모양이라고 생각한 저 역시 아들에게 전화했습니다. 아들은 별일이 아닌 듯 100번에 전화하면 된다고 합니다.

아들이 알려 준대로 전화를 했습니다. 상냥하고 인심 좋고 듬직해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저의 집을 찾아 오셨습니다. 리모컨을 몇 번 만져 보더니 텔레비전 화면이 나왔습니다. 4명의 손자들이 좋아라, 아주 큰 목소리로 아저씨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손뼉을 치며 콩콩 뛰었습니다.

원인은 리모컨에 들어있던 채널프로그램이 엉망이 되었다고 합니다. 먼저 보던 만화 영화는 그만 다 지나갔습니다. 내 손자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4살짜리 손녀는 서운하여 눈에서 눈물까지 보이기도 했습니다만 저에게는 그 시간이 제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순간 저는 지나온 추억을 해 보았습니다. 내 고향 평양에서도 오늘과 같은 경험이 있었습니다.

한창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에 텔레비전이 고장 난적이 있었거든요. 그때에는 리모컨이 아니라 채널 돌리개를 아무리 돌려 보았지만 꺼진 텔레비전 화면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한 마을에 사는 텔레비전에 대해서 조금 아는 분을 불렀는데 수리소에 가야 한다고 하기에 텔레비전을 보자기에 싸들고 수리소에 맡겼습니다. 한 달이 걸려야 수리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한 달 만에 텔레비전을 찾아왔는데 수리비용도 만만치 않았지만도 좋은 부속품을 낡은 부속품으로 모두 바꿔치기를 했습니다. 그 후로 한 달이 멀게 텔레비전이 계속 고장이 나서 우리 아이들은 다른 집 신세를 지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이곳 한국에서는 텔레비전 고장도 없지만 리모컨 작동실수로 텔레비전이 잘 안 나와 아저씨를 부르면 서비스 원칙에서 친절하게 직접 집을 방문해 책임적으로 하나하나 봐주고 갑니다. 텔레비전만이 아닙니다. 자가용 승용차를 운전하던 중 작동이 안 되어 고객센터에 전화를 하면 때와 장소가 구애됨이 없이 달려옵니다.

정말 전화 한 통화이면 음식도 집까지 배달이 되는 그야말로 우리 국민 한사람 한 사람이 고객이 되고 또 모든 고객을 왕처럼 모시고 있는 이곳 대한민국의 서비스 문화는 정말 대단하다고 말하고 싶네요.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