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저는 손자녀석들을 위해 김밥을 만들었습니다. 봄방학으로 찾아온 개구쟁이 손자들은 점심시간이 되자 매콤한 라면을 먹고 싶다고, 또 한 녀석은 튀김우동이 맛있다고 졸라 댑니다. 워낙 라면을 싫어하는 저는 손자 녀석들에게 라면을 먹이고 싶지가 않았거든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꼬마들과 함께 점심 메뉴는 김밥이었습니다.
큰 밥상 위에 김밥 재료들을 놓고 저는 프라이팬 위에 들기름을 약간 바르고 약한 불에 김을 구웠습니다. 팔을 번쩍 걷어 올리고 올 방자를 틀고 앉아 쫑알쫑알 대고 있는 개구쟁이들을 바라 보느라니 조금은 소란스럽지만 행복합니다. 구워낸 김을 나누어 주면서 누가 김밥을 예쁘게 만드는지 본다고 하면서 엄마 아빠 몫까지 만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겨우 4살이 된 손녀는 그야말로 김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언니 오빠에게 방해를 주기도 합니다만 신경질을 부리는 큰 손자 녀석들의 모습이 더 대견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또 조카 손녀딸애는 자리가 좁다고 칭얼대기도 합니다. 고사리 같이 작은 손으로 김밥을 만드는 모습이 제법이기도 합니다.
요즘 어린이집에서는 김밥도 만들고 심지어는 추석이 되면 송편 빚는 법도 가르치고 있어 제법 많이 해 본 솜씨로 먹음직스럽게 잘 만들어 갑니다. 드디어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사위와 딸들이 모두 밥상에 빙 둘러 앉았습니다. 각자 애들이 만든 김밥을 앞에 놓아 주었는데 서로서로 제 아이가 더 잘 만들었다고 최고의 점수도 주고 칭찬이 자자합니다.
저는 점심준비를 하느라 고생이 많은 손자들에게 뽀로로 그림이 붙은 지갑을 하나씩 선물을 주었습니다. 손자녀석이 지갑을 열어 보더니 만 원짜리 현금을 보고는 돈이 있다고 좋아합니다. 조카 손녀딸애는 지갑을 열어 보지도 않고 자기는 돈이 없다고 할미에게 뽀르르 달려와서는 손을 내밀기도 해 우리 가족은 식사 도중 한참을 웃었습니다.
점심시간에 간단한 김밥을 두고도 행복해 하는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지나온 추억을 해 보았습니다. 제 고향은 평양이거든요. 제가 한때 수산물 종합상점에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이곳 한국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김이 많지만 사실 김밥 하면 안 좋은 추억으로 인해 잘 먹지 않거든요.
평양에는 해마다 김을 먹어 보는 것은 4월이 되어야 김을 구입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특수한 경우라 말할 수 있습니다만 4월이 오면 학생들 견학도 많고 또는 기업소나 인민반 주민들 속에서도 견학을 가게 됩니다. 그러니 그때에야 김밥을 먹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말입니다. 어쩌다가 어렵게 구한 김으로 아침 일찍 김을 구어 김밥을 만들어서는 남편의 입에만 한 조각 넣어 주고는 모두 아이들 도시락에 넣어 보내곤 했었습니다.
내 고향에서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큰 애가 견학을 간다고 하기에 겨우 김 3장을 구입해 김밥을 만들어 도시락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큰 누나를 늦은 시간까지 기다리던 이제 겨우 말을 시작하고 있던 3살짜리 아들은 누나의 책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 뚜껑을 열어보고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이유는 누나가 김밥을 다 먹어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저는 아무리 아이들이 견학을 간다고 해도 김밥을 다시는 만들지 못했습니다. 김을 구입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고향에서 내 가족들이 제일 맛있게 먹던 음식은 돼지고기 국에 계란을 풀어 넣고 김을 뜯어 넣어 끓인 설렁탕이었습니다.
이런 가슴 아픈 상처가 있었기에 저는 이곳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해 준 것이 바로 김밥이었습니다. 하나원을 졸업하고 서울에 집을 배정 받고 나오자마자 처음으로 저는 김을 구어 김밥을 먹음직스럽게 한 쟁반 만들었습니다.
아들은 김밥 한 개를 입에 넣어 먹으며 별맛이라고 합니다. 부지런히 김밥을 먹던 아들이 한마디 합니다. 아주 어린 시절에 김밥 한 개를 두고 누나들에게 떼를 쓰던 추억이 난다고하면서 이렇게 맛있는 김밥을 혼자 먹을 수가 없다면서 친구들이 살고 있는 기숙사로 달려갔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큰 손녀 딸애는 직접 만든 김밥을 제 입에 넣어 주었습니다. 별맛이었습니다. 둥근 밥상에 빙 둘러앉아 김밥에 나박김치를 먹으면서도 고향의 향수로 지나온 추억을 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다시 한 번 가족의 소중함과 귀중함을 알게 됐습니다.
즐거울 때나 기쁠 때나 때로는 슬플 때나 괴로울 때도 서로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들은 바로 내가 제일 사랑하는 내 가족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번에는 눈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은 금쪽같은 내 강아지들과 함께 만든 김밥이라 아주 행복한 추억이 될 수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