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얼음도 풀린다는 우수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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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은 대동강 얼음이 풀린다는 우수였습니다. 손자 녀석들과 함께 썰매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느덧 제 마음속에는 봄이 찾아왔습니다만 겨울 추위는 물러가기가 못내 아쉬운 듯 날씨는 쌀쌀했습니다. 해마다 ‘우수’하면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있습니다. 지금도 제 기억 속에는 아주 오래 전인 1989년도 2월의 우수도 역시 주말이었던 것 같네요.

생각지 않은 일로 남편이 평양시 단련대에 가 있었거든요. 남편의 면회 준비를 위해 아침 일찍 10살 나는 큰 딸과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당시에는 어린 자녀들이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거든요. 대동강 둑으로 20리 길을 걸었습니다. 쌀쌀한 대동강 칼바람이 불어와 볼을 때렸습니다. 어느덧 목적지가 바라보이는 곳에 도착해 대동강 얼음위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한 발 한 발 발을 옮길 때마다 얼음이 갈라터지는 듯 하는 소리로 온몸에는 소름이 돋고 떨렸습니다. 주말마다 다니던 곳이지만 그날따라 왠지 대동강은 생각보다 넓어 보였고 아무리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려움과 공포가 한 몸에 안겨 왔습니다. 남편 면회를 하고 돌아온 시간은 오후 3시, 아침에 건너갔던 장소로 돌아와 대동강 얼음위로 한 발 디디는 순간 발목이 푹 빠져 들어갑니다.

순간 가슴이 푹 내려 않는 심정이었습니다. 먼 발치에서 규찰대 아저씨의 당장 나오라고, 들어가지 말라고 하는 손짓과 함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가 건너온 장소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오전에 한 사람이 물에 빠져 사망했다고 합니다. 저는 어린 딸과 함께 한 시간을 걸어 립석역으로 갔습니다.

대동강 역에서 강동역까지 다니는 통근 열차를 타기 위해서였습니다. 립석 역사 안에 도착해 보니 열차 시간은 아직 미정이고 발 디딜 자리조차 없었습니다. 집에서 8살, 5살 두 자녀가 이 엄마를 까마득히 기다리고 있을 생각을 하니 더 지체 할 시간조차 없어 저는 어린 딸과 함께 립석역과 청룡역 사이에 있는 대동강 철교를 건너기로 했습니다.

마침 군인 두 명과 함께 철교에 들어섰습니다. 군인들은 제일 어린 제 딸을 맨 앞에서 걷게 하고 제가 딸의 뒤를 따르고 제 뒤에는 군인들이 따라 섰습니다. 몇 발자국을 걷던 제 딸이 겁에 질려 그만 뚝 멈추어 섰습니다. 두려움과 공포에 질려 울고 있는 딸에게 저는 강하게 몰아 세웠습니다.

철교 밑에는 푸른 대동강 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엄마인 제가 내려다보기에도 무서웠습니다. 군인 들은 뒤로 열차가 들어온다고 합니다. 그 말에 어린 제 딸은 짧은 두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대동강 철교를 건너 저와 제 딸은 그만 주저앉았습니다.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무슨 정신으로 두렵고 무서운 그 철교를 어린 딸애와 함께 건너갈 결심을 하게 됐는지 잘 이해가 안 됩니다만 다른 생각을 할 생각조차 나지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군인들에게 많이 의지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만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성인이 되고 아이 엄마가 되었지만 큰 딸은 기억조차 하고 싶지가 않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우수에는 대동강 얼음이 녹는다는 말을 많이 들어 왔지만 잘 믿지도 않았습니다. 그때 실제 현실로 느꼈습니다. 고향이 함북도인 친구는 지난해에도 이 추위에 정말 대동강 얼음이 풀리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제가 겪은 얘기를 해 주면서 불길은 물로 끊을 수 있지만 막을 수 없이 무서운 것이 아마 물이 아닌가 하는 얘기를 덧붙였습니다. 썰매를 타고 있는 논두렁 반대편 양지쪽에는 벌서 파릇한 풀싹이 보이네요. 논밭에 물을 넣어 만든 작은 썰매장이였지만 올 마지막 겨울 썰매타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니 조금은 서운하기도 합니다.

다가오는 봄기운과 함께 썰매장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즐거운 시간은 저에게 또 하나의 즐거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