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연 날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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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저물어 간다고는 하지만 잊을만하면 다시 찾아오는 추위가 매우 쌀쌀합니다. 이맘때이면 남한 학생들은 봄방학을 하거든요. 겨울방학으로 인해 왔다 간지 며칠 안 되어 봄방학을 했다고 손녀 딸애가 또 찾아 왔네요. 그 사이에 훨씬 자랐습니다. 방학 숙제를 살펴보느라 여느 때 없이 분주합니다. 수학문제를 풀던 손녀딸이 뜬금없이 연과 함께 하늘 높이 훨훨 날아 보고 싶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남편이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에 가서 연을 날려 보는 것이 꿈이었다고 참견합니다. 나이가 들면 어린애가 된다더니 이런 엉뚱한 면도 있었나?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저 역시 어느새 손녀 딸애의 동심 세계에 함께 빠져 들었습니다. 할미를 닮아 개구쟁이인 손녀는 연 날리러 가자고 바싹 졸라 댑니다.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은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고 또 마침 따스한 날씨라 가기로 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만들었던 기억을 더듬으며 종이 연을 만들었습니다. 먼 옛날 어린 시절에는 수수 대와 로동신문지로 어린 동생들과 함께 만들었다면 오늘은 손녀와 함께 수수 대 대신 대나무 껍질과 커다란 하얀 백지종이로 만들었습니다. 내가 보기에도 그야말로 급수 있는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평양’이라는 글을 빨간색으로 큼직하게 써 넣었습니다. 평양이라는 글을 보면서 손녀딸은 또 엉뚱한 질문을 합니다. 엄마와 할머니는 뭔가 속이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티비를 보면서 또는 전화를 하면서도 자주 북한이라는 말을 하는데 솔직히 말해 달라고 합니다. 저는 언제인가는 말해 주고 싶었지만 너무도 어린 손자들이 상처가 될까 두려워 아직도 말을 못하고 있습니다.

또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계속 숨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오던 참이라 조금은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할머니와 엄마 고향은 북한 평양이고 고향에서 살기 어려워 이곳 한국으로 왔다는 얘기를 간단하게 했습니다. 손녀는 “응, 그래서 할머니가 로켓발사 하지 말라는 행사에도 갔었고 풍선 날리기에도 갔었구나”라고 말합니다.

순간 철부지인 줄 알았던 손녀딸의 어른스러운 모습에 한 품에 않고 볼을 비벼 주었습니다. 1년 전에는 이 할미가 북한에서 왔다는 얘기를 듣고 하루 종일 삐져 입을 꼭 다물고 한마디도 하지 않아 속을 썩였던 그 손녀가 이제는 제법 어른스럽게 자랐다는 생각과 함께 너무도 빠르게 성장해 이 할미 곁을 떠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조금은 있었습니다.

잠깐 사이에 만든 연을 가지고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으로 출발했습니다. 공원에 도착하자 손녀딸은 눈 깜박할 사이에 도착했다고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생각보다 조용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만든 연을 내놓자니 조금은 쑥스러웠습니다. 눈치 빠른 남편은 매점으로 달려가 제일 멋진 연을 구입해 왔습니다.

넓은 공간에 만들어진 주차장에 주차했더니 주차장에서는 통일교가 빤히 보였습니다. 임진강 바람으로 인해 쌀쌀한 바람에 볼이 시려 옵니다. 하지만 이미 기분은 하늘 높이 떠도는 구름처럼 붕 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남편이 매점에서 구입해 온 연보다 비록 덜 멋스럽게 보였지만 제가 만든 연이 더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공들여 만든 값인가 봅니다. 어느새 10살 난 손녀와 함께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경쟁심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경쟁에서 조금 지자 손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릅니다. 연을 바꿔 주었습니다. 알고 보니 연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연을 날리는 기술이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남자애들처럼 연을 날리던 내 기술이 아직도 죽지 않았나 봅니다.

지나간 추억이 새삼 납니다. 겨울 방학이면 동네 남자애들을 따라 다니며 연을 만들고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연을 자주 날렸거든요. 평양시 아파트 옥상에는 항상 큰 자물쇠가 잠겨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자물쇠를 부수고 옥상으로 올라갑니다. 높은 옥상에서 연을 날리면 마치 연이 하늘 끝에 닿은 것만 같았고 또 넓은 시가지를 다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라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어느 겨울이었는데 그날따라 날씨가 상당히 추웠거든요. 4살짜리 남동생과 함께 옥상에 올라 한창 연을 날리고 있는데 옥상 문을 관리하는 나이 많은 반장이 누가 옥상 문을 부셨는가 하고 욕을 하면서 자물쇠를 잠가 버렸습니다. 연 날리기에 정신이 팔려 알 리 없는 저는 어린 동생을 데리고 내려오려다 보니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꽁꽁 언 동생을 안고 몇 시간을 떨고 있는데 인민반장과 어머님이 올라 오셨습니다.

어쩌면 놀아도 꼭 남자애처럼 부잡한 놀이만 한다고 하면서 회초리로 종아리가 시퍼렇게 멍이 들 정도로 맞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제일 큰 야단을 맞았던 같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연 날리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동생들이 아무리 연을 만들어 달라고 졸라도 만들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겨울이 오면 동생들에게 썰매와 외발 기를 만들어 주었고 함께 스케이트를 타면서 어린 동생들과 즐거운 겨울방학을 보내곤 했습니다. 60이 넘은 이 나이에 올 봄방학에는 손녀와 함께 고향을 향해 연을 날려 보내며 어린 시절의 추억과 함께 고향을 그려 보았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