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절에 생각하는 북한여성

제적 명절인 `국제부녀절'(세계여성의 날·3월8일)을 맞아 북한 시민들이 7일 평양시 평천구역에 있는 북성꽃상점에서 꽃을 사고 있다.
제적 명절인 `국제부녀절'(세계여성의 날·3월8일)을 맞아 북한 시민들이 7일 평양시 평천구역에 있는 북성꽃상점에서 꽃을 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0:00 / 0:00

며칠 전만 해도 눈이 펑펑 내리고 추웠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추위가 물러가고 봄이 왔습니다. 무던히 가기를 아쉬워하는 겨울이었지만 세월은 세월인가 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또 봄, 사계절과 함께 삶의 수레바퀴가 바뀌고 끝없이 굴러가듯이 세월은 시간 따라 말없이 흐르고 흘러 모든 세상과 강산은 여러 번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랑, 파랑 그리고 빨간색을 가진 이름 모를 새들이 동네 꽃나무 가지에 앉아 지저귀고 나뭇가지들에는 물이 오르고 양지쪽의 진달래 꽃망울은 당장 터질 듯도 합니다. 또한, 봄은 여자들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성들의 옷차림이 달라진 게 느껴집니다. 저 역시 아직은 여성이라 매일 아침이면 옷장 문을 열고 이 옷 저 옷 고르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하기에 여성들의 명절인 3. 8 부녀절도 봄이 시작되는 3월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 본답니다.

지난 3. 8절이었습니다. 올해 3. 8 국제 부녀절은 105주년이라고 합니다. 아침부터 손전화기 카카오톡에는 불이 달린 듯 부녀절을 축하하는 의미로 예쁜 여성이 빨간 장미꽃 속에 담겨진 사진과 함께 3. 8 국제 부녀절이라고 쓰인 사진들이 연이어 날아왔습니다.

올해 3. 8절도 그냥 미미하게 보낼 제가 아니거든요? 마음이 동한 저는 친구 인숙에게 조촐한 기념 모임이라도 하자고 문자 한 통을 날렸습니다. 친구들은 모두 좋다고 했습니다. 부지런히 옷장을 열고 제일 화사한 봄옷차림을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제가 약속장소에 도착을 하니 벌써 경희언니도 미경이 그리고 인숙이도 미리 와있었습니다.

제가 자주 가는 단골집이라 양꼬치 사장님은 반가워했습니다. 사장님은 중국 조선족이었는데 특별히 3. 8절이라 매콤하면서도 달콤하고 시원한 깐 두포 무침(말린 두부무침)과 중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만두 한 접시를 무료로 주었습니다. 여자들이 모이면 수다가 없으면 안 되죠, 시원한 맥주 한잔과 수다와 함께 먹는 양꼬치는 정말 별미였습니다.

다음 2차는 다방, 그러니까 커피숍으로 갔습니다. 제 2차 수다를 마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하고 진한 한 잔의 커피를 앞에 놓고 지난날 얘기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벌써 60대 중반이 된 경희 언니는 북한에서 3. 8절이면 1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여성들의 명절이라고 남편이 아침밥을 지어 주었는데 워낙 남들보다 조금 깔끔을 떠는 성격이라 손을 잘 씻지 않고 해주는 것 같은 의심스러운 생각에 그리 썩 좋아하지 않았다고 말해 우리는 커피숍이 떠나갈 듯이 크게 웃었습니다.

미경이 역시 초등학생이었던 딸애가 학교에서 돌아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엄마 밥을 지어 주던 마음이 짠했던 얘기와 지금은 그 딸이 하늘나라로 가고 없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에 우리 모두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하기도 했습니다. 인숙이는 엄마 명절이라고 한참 개구쟁이였던 아들이 식탁에서 엄마에게 밥을 더 드시라고 숟가락으로 덜어 주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들의 가슴 짠한 얘기들을 들으며 저도 지난날 고향에서의 잊을 수 없었던 얘기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비록 부족한 것이 많아 남편과 티격태격 자주 싸웠지만 그래도 1년에 한 번씩 남편이 해주는 밥상을 받았던 그때가 제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곳 한국 사람들은 3. 8 부녀절에 대해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는 얘기를 하면서 아침에 잘 아는 분과 전화 통화를 하다가 제가 오늘은 아내분에게 잘해 주라는 말을 했더니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 얘기도 덧붙였습니다.

정말 이곳 한국 사람들은 3. 8국제 부녀절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관심이 없고 모르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한국은 여성들을 위한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계절 가정마다 더운물 찬물 콸콸 쏟아져 나오고, 겨울에는 온수난방이 잘 돼 있어 추운 줄 모르고, 여름에는 난방 장치가 잘 돼 있어 더운 줄 모르니까요. 또 쌀을 씻어 밥솥에 안쳐 놓으면 전기가 해주고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고 청소기를 이용하다 보니 굳이 우리 여성들이 가정에서 크게 할 일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북한처럼 아이들과 남편이 아침부터 밥 달라는 투정 소리를 들어보고 싶어도 들어볼 수가 없답니다. 제가 이곳 한국 생활 10년이 됐지만, 아직 아침밥을 지어 본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우리 엄마들도 아침이면 운동도 하고 또 주말이면 건강에 좋은 등산도 하고 정말 천국 같은 세상입니다.

북한 여성들에게도 봄이 찾아왔건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여성들의 한숨 소리는 더해 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내 건강과 또 가족의 건강을 위해 봄나물을 찾아 식탁에 올려놓지만, 북한 여성들은 가족의 생계를 연명하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나물을 뜯으러 산과 들을 헤매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여성들은 가정과 나라의 꽃이라고 대 내외에 선전하고 있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다는 이유 하나로 강제 북송돼 공개 총살을 당하고 두만강과 압록강 깊은 물에 빠져 숨지고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당해 갖은 수모와 멸시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성들이 임신하고 출산하면 가족과 친구들의 축하와 축복을 받고 있지만, 북한 여성들 중에는 아기를 출산하고도 집이 없어 남의 집 처마 밑과 다리 밑에서 쪽잠을 자야 하고 미역국 대신 독풀을 뜯어 먹고 마른 젖꼭지를 물고 울다 지쳐 숨진 아기를 안고 엄마가 된 자신을 원망하는 여성들도 있습니다.

오늘도 중국을 비롯한 제3국에서 보금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는 탈북여성들과 내 고향 북한의 여성들도 언제면 우리 대한민국 여성들처럼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날은 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