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왔습니다. 갑자기 날씨가 따뜻해졌다 싶어 두꺼운 잠바를 장롱 속에 넣어 두면 또 꽃샘추위로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넣어 두었던 깃털이 달린 잠바를 꺼내 입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봄은 어김없이 오고 있습니다. 봄은 역시 여자들의 계절인가 봅니다. 여자라 하면 누구나 아침 출근 시간이면 옷장 문고리를 잡고 이 옷을 입을까, 저 옷을 입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이것저것 만져보고 입어보다 보면 아차 하는 순간 출근시간과 약속된 시간에 맞추기 위해 100m달리기를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라 봅니다. 해마다 봄이 오면 이런 경험이 많은 저 역시 환갑 나이이건만 아직은 여자의 심성 그대로 아닌가 생각을 해 보네요.
지난 주간은 꽃샘추위로 조금은 쌀쌀했습니다. 사실 집에 있는 날에는 아침 세수도 제대로 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화장도 예쁘게 하고 외출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쇼핑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미리 약속 한 대로 일산역에서 친구와 만나 뉴코아라는 백화점으로 들어갔습니다. 갖가지의 봄철 신상품이 그야말로 황홀하게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구두로부터 시작해 가방과 수많은 신상품 옷들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예쁘고 점잖은 옷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옷가게 주인은 입어 봐도 된다고 합니다. 저는 직업병이라 봄철 양복을 입어 보았습니다. 순간 공주병이 되살아나 내가 보기에도 한 20년은 젊어 보입니다.
봄철 양복 정장 상의(재킷)2벌과 셔츠 한 개를 구입하는데 시간이 반나절이나 걸렸습니다. 하루 반나절, 내 인생에 아마 이처럼 오랜 시간 쇼핑한 것도 처음인 듯합니다. 그리 지루하지도 않고 시간 가는 줄 몰랐거든요. 늦은 점심 겸 저녁 식사하면서 친구와 못다한 수다도 떨겸 햄버거 가게에 들어가 햄버거에 음료수를 시켰습니다.
한참 햄버거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 한 친구가 다가와 강철이 엄마가 아닌가 물어 옵니다. 얼떨결에 맞는다고 했지만 도무지 기억이 떠오르지가 않아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연이’라고 합니다. 2003년 이곳 한국에 처음 도착해 하나원에서 만난 딸의 친구였습니다. 그때에는 20대 초반 아가씨였는데 인제는 30대 중반이 넘은 아줌마가 되었으니 알아볼 리 만무합니다.
연이는 뉴코아를 나오는 저를 보고 낯이 익어 따라 왔다고 합니다. 눈에 이슬이 맺힌 그의 눈을 보는 순간 너무도 반가웠습니다. 비록 나이로는 세대 차이가 있지만 지나간 10여 년 전 함께 한 하나원 생활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네요. 부모님 품에 안겨 어리광을 부려야 할 어린 나이에 고사리 손으로 부모의 주검을 땅에 묻고 굶어 죽지 않으려고 어린 동생의 손목을 잡고 두만강을 넘었다고 했습니다. 어렵고 험난한 고비를 겪으면서도 이곳 한국까지 어린 동생과 함께 온 그 연약했던 연이가 든든한 아줌마가 되어 7살짜리 아들과 함께 나타났는데 알아보지 못한 것이 미안했습니다.
연이는 10년이 지난 세월 변한 제 모습을 이내 알아보았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한국 나이로 49세였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고 오히려 더 젊어지고 세련되고 멋져졌다고 말합니다. 그리 싫은 소리는 아니었습니다.
옛날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자주하는 말 가운데 젊어서 호랑이를 안 잡은 사람이 없었다는 말이 있듯이 나도 왕년에는 미인이었다고 군복무 시절에는 4줄로 섰다는 우스갯 소리로 또 한 번 웃었습니다. 역시 지금도 예쁘지만도 그러고 보니 우리 셋 중에 예쁘지 않았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손녀딸에게도 친구 같은 할미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한때는 군복을 입고 어깨에 별을 달고 한 개 중대를 지휘하던 중대장이었고 또 제대 이후에는 많은 사람들을 관리 하고 다스리는 인민반장이었습니다. 한 친구 역시 군 복무 시절 비록 장교는 아니었지만 특무장으로서 한 개 중대 하루 일과를 집행하고 인솔하던 그 매력이 아직 살아 있습니다.
또 한 친구는 비록 딸 같은 친구이지만 그도 역시 사선을 넘어 어려운 고비를 여러번 겪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하나밖에 남지 않은 남동생과 함께 이곳 한국으로 찾아온 어린 여성 영웅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위대한 누나, 강한 엄마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저는 즐거운 봄철 쇼핑도 하고 뜻이 깊은 친구들과 함께 지나간 가슴 아팠던 추억들, 그리고 즐겁고 재미있었던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