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소생하는 화창한 봄은 특히 여성들이 좋아하는 계절입니다. 벌써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안에는 진달래 꽃망울이 당장이라도 터져날 것 같이 물이 올라있답니다. 거리마다 노란 개나리꽃 등 봄철 꽃향기가 사람들의 발걸음을 다시 한 번 멈추게 하기도 합니다. 아침 출근시간 전철 안에서 차창 밖을 내다보던 한 아저씨의 입을 열게 한 것도 바로 노란 개나리꽃이었습니다.
친구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벌써 개나리꽃이 노랗게 피었네’ 하는 남자의 걸걸한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순간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나는 곳으로 머리를 돌렸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무뚝뚝하면서 부리부리하게 생긴 50대 중반의 겉늙어 보이는 아저씨였습니다. 그런 뚝쟁이(무뚝뚝한) 아저씨의 감정을 사로잡은 꽃이 바로 노란 개나리꽃이었던 겁니다.
저뿐만이 아닌 전철 안의 모든 사람들이 한결 같이 그 아저씨를 한 번 쳐다보더니 차창 밖을 내다보며 얘기하거나 미소 지어 전철 안은 환한 기운이 돌았습니다. 저 역시 그 아저씨를 쳐다보며 웃었는데 더 웃기는 것은 어느새 사람들의 시선을 직감했는지 문 옆에 서서 밖을 내다보시며 친구와 얘기를 하시던 그 아저씨는 쳐다보는 저를 보며 제 얼굴에 무엇이 묻었냐고 싱겁게 웃으며 물어 왔습니다. 저 역시 웃으면서 ‘아니요’ 간단하게 답변했습니다.
저는 옆에 함께 앉은 언니와 얘기했습니다. 여자들뿐만이 아니라 봄은 남자들도 좋아하는 계절이고 꽃 역시 어찌 보면 은근히 남자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입니다. 하기에 꽃은 혼자 보는 것 보다 더 많은 이들과 함께 볼수록 꽃의 향과 아름다움을 더 깊이 알 수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누구나 그렇지만 언니 역시 봄이 올 때마다 가는 시간이 아까워 죽겠다고 했습니다. 이맘때가 되면 서울의 많은 사람들은 꽃구경을 위해 3월이 되기도 전에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놀러갑니다. 요즘은 벚꽃 관광으로 버스와 기차 그리고 배, 비행기 등을 타고 남해로 간답니다.
우리도 남들처럼 열차를 타고 친구들과 함께 꽃구경을 가잔 약속을 하자며 저는 지나간 추억을 해보았습니다. 내 고향 평양에도 지금쯤은 온실에서 활짝 핀 갖가지 꽃들을 화분에 옮겨 평양의 거리마다 옮겨심기 운동을 많이 했는데, 인민반장 시절 동네에 심어놓은 살구나무도 이젠 많이 자라겠지, 꽃도 피고 열매도 달리겠지, 주민들과 함께 살구나무를 심으며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릴 때면 살구나무 밑에 돗자리를 깔고 회의도 하고 오락회도 하고 그늘 밑에서 더위도 가실 겸 수다도 떨자고 약속을 했었는데...
고향에 한번 가 보았으면 하는 생각과 더불어 평양에도 이곳 서울과 꼭 같은 꽃들이 거리마다 공원마다 피는데...하는 생각을 하며 옆에 앉은 친구에게 평양에도 빨간 장미도 있고 홍매화도 있고 금잔화, 개나리, 진달래, 철쭉 등도 있다고 고향 자랑을 조금 하기도 했습니다.
2월 중순이면 인민반마다 맡은 구역에 활짝 핀 꽃들을 화분에 옮겨 거리마다 공원마다 심어야 했습니다. 평양의 기온은 여기 서울보다 조금 낮아서 꽃이 얼어 죽을까 걱정이 되어 밤이면 비닐 박막을 쳐주곤 해야 했습니다.
한 송이의 꽃과 꽃의 한 뿌리라도 얼어 죽으면 충성심이 부족하다며, 강한 사상투쟁의 비판무대에 올라서야 했기 때문에 무조건 죽이지 않고 피울 수 있다고만 생각했지 꽃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전혀 느껴보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거든요. 하기에 이곳 대한민국에 온 처음부터 나도 여자인데 왜 나는 북한에 있을 때에는 꽃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몰랐을까 하는 생각을 아주 많이 했습니다.
너무도 열악하고 너무도 부족한 것이 많았던, 그래서 살아가기 급급했던 그 시절엔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도 했지만 그저 충성심에만 연연하다보니 그럴 여유가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정 없고 감정이 메말라 보이는 뚝쟁이 남자들도 웃게 해주고 때로는 울게도 해주는 것이 바로 아름다운 꽃이 아닌가 합니다. 아름다운 꽃이 있어 인간은 언제나 행복하고 즐겁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함께 해보았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