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정찰기는 북한의 치밀한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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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에 없었던 이상 기온 현상으로 대한민국에는 가는 곳마다 벌써 봄꽃 축제가 한창입니다. 특히 서울 중심에 흐르고 있는 한강 여의도와 나란히 하는 윤중로에는 많은 시민들과 꽃이 물결처럼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족과, 연인들과 친구들과 함께 감탄의 함성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지고 있습니다. 또 얼굴에는 함박꽃과 같은 환한 웃음이 이어지고 손에는 사진기와 손전화기로 촬영을 하느라 여념이 없답니다.

하기에 어떤 이들은 꽃보다 많은 사람들을 구경하느라 입을 다물 줄을 모릅니다. 이러한 행복도 잠시 잠깐, 지난 한주간은 북한 무인기가 우리 영토인 백령도와 파주에 떨어져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파주에 떨어진 무인기로 청와대를 집중적으로 촬영했으며 심지어는 대통령의 숙소가 있는 관저와 시설들도 촬영한 것으로 밝혀졌다는 겁니다.

저는 뉴스를 보며 만약 무인기에 촬영기 대신 폭탄이 장치되어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4년 전 천안함 피격 사건보다 몇 배나 더 큰 아주 상상도 하기 싫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 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일부 주민들은 높은 고도가 아니라 저공으로 날아다니는 무인기를 왜 미처 발견하지 못했는지, 우리의 영공이 왜 그렇게 허술하게 뚫렸는지 하는 의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만 저는 북한당국이 이미 오래 전부터 빈틈없는 준비를 해 왔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북한은 1970년대 초부터 무인기와 비슷한 모형비행기와 조종비행기를 군부에서 만들어 포 실탄 사격장과 고사포 구분대들에서 조준 훈련용으로 사용해왔습니다. 실탄 사격 시에는 모형비행기에 길이 1m, 너비 25m의 풍통(표적기)을 달아 실탄사격을 진행했습니다.

군복무 시절 제가 소속되어 있었던 중대는 해마다 실탄 사격을 위해 황해남도 과일군에 있는 공군부대 실탄 사격장에 갔습니다. 한창 실탄 사격을 하던 중 제가 지휘하고 있는 조준수가 풍통(표적기) 대신 모형비행기를 쐈습니다.

사실 과일군은 100리가 사과 과수원으로 돼 있거든요. 사격을 중지하고 모형비행기를 찾기 위해 그 넓고 넓은 과수원을 모두 이 잡듯이 살폈습니다. 반나절이 훨씬 지나서야 겨우 찾았는데 조종사는 엔진부터 살펴보고 또 살펴보며 검사하더니 크게 안도의 숨을 쉬는 것이었습니다.

모형비행기는 비록 볼품없이 됐지만 엔진은 그대로 정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70년도 중반에 웬만한 고사포 중대에는 훈련용으로 사용하도록 조종비행기를 한 대씩 선물로 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는 평양시에 대낮에도 비행기 소리가 나지 않는 작은 비행기들이 자주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 비행기가 바로 무인 정찰기였답니다. 그 당시 무인 정찰기는 제가 군 시절에 자주 보았던 모형비행기나 조종비행기보다 더 발전된 비행기로 알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무인 정찰기를 두고 실험 중이라는 말도 있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무력시위 행사를 위해 비행 훈련을 한다고도 했었습니다. 이번에 떠들썩하게 한 무인 정찰기 사건을 두고 저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북한은 벌써 오래 전부터 이런 계획을 했었다고 말입니다.

우리 군에 의해 나포됐다가 송환된 선원들을 기자회견장에 내세워 강제로 쇠몽둥이로 폭행하고 귀순을 강요했다는 억지를 부리게 했을 뿐만 아니라 서해와 동해로 로켓 발사와 포탄 사격을 끊이지 않고 발사함으로써 우리 국민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김정은은 삼지연에서 열린 북한 인민군 연합부대 지휘관들의 결의대회에서 공공연히 지금 한반도 정세는 매우 긴장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까놓고 말해 우리 한반도 정세는 북한 당국이 긴장시키고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전쟁도 아닌 평화로운 시기에 우리 젊은 군인들과 국민들의 목숨을 빼앗아갔고 또 로켓발사와 포 사격으로 우리 군인들과 주민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하고 있으며 무인기로 우리 영공을 침략해 우리 대한민국의 정세를 긴장하게 만들고 있는 건 바로 북한 당국입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