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면 봄꽃 축제가 전국 어디에서나 다양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저는 꽃 공원이라고 불리는 일산 호수공원을 다녀왔습니다. 사실 일산 호수 공원은 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거리에 있어 자주 운 동삼아 찾아가기도 하는 공원이랍니다. 하지만 이번 봄꽃 구경은 여느 때보다 남다른 의미가 있었습니다.
주말이라 주차장은 많은 차들로 꽉 차있었습니다. 차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감탄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진달래, 산수유, 목련과 벚꽃 개나리, 그리고 길게 늘어선 수양버들이 화창한 봄볕에 반짝반짝 빛나는 호수와 잘 어우러져 황홀했습니다.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과 젊은 청춘 남녀들, 그리고 어린 꼬마들 모두 천진난만한 행복의 웃음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남편의 걸음이 빨라집니다. 어느새 활짝 핀 개나리 꽃 속에 파묻혀 빨리 사진 한 장 찍으라고 보챕니다. 철없는 7살짜리 소년 같았습니다.
노란 개나리 꽃을 입에 물고 올 봄꽃 구경 기념으로 한 장 남겼습니다. 순간 저는 지난날 고향에서의 추억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개나리는 습기가 있는 곳에 가지를 심기만 하면 살아나는 생명력 강한 꽃이거든요. 군 복무 시절 대원들에게 개나리 꽃가지를 포진지 주변과 포탄고 위에 심도록 했습니다.
봄이면 노랗게 피는 개나리꽃 가지를 꺾어 꽃의 향을 맡으며 례성강 푸른 물을 내려다보며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을 그려 보았습니다. 입대해 신병 훈련을 마치고 배치되어 노란 개나리꽃이 하도 예뻐 꽃가지를 꺾어 병에 꽂아 병실 창문에 놓았습니다.
정치 지도원으로부터 군복을 입은 군인이라면 안일 해이된 생각을 당장 버려야 한다고 강한 비판과 함께 당장 버리라는 꾸지람을 받았습니다. 그 후부터 저는 꽃의 아름다움을 잊기로 결심했었지만 장교가 되어 소대장으로 배치되어 제일 먼저 군관 침실에 봄내음이 듬뿍 담긴 개나리꽃을 꺾어 꽃병에 꽂아 놓았습니다. 해마다 개나리꽃이 피는 봄이 오면 자주 개나리꽃을 보며 고향생각을 했습니다.
잠시 고향 생각에 잠겨있는데 남편이 맵고 달콤한 떡볶이 컵을 들고 왔습니다. 수양버들 가지가 늘어진 의자에 앉아 떡볶이를 먹었습니다. 그야말로 한 장의 화보 같았고 사진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호숫가에 비쳐진 풍경을 보노라니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청춘 시절이 떠오릅니다.
소대장 강습을 마치고 부대로 돌아 왔을 때였습니다. 얼마 뒤 기통수로부터 한 장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편지에 내용은 없이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버드나무 가지가 늘어진 그늘에 하나의 의자가 놓여 있었고 그 의자에는 청춘 남녀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름도 주소도 없었습니다. 기통 수에게 물어봐도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냥 기술대대에 있는 운전수가 보냈다고만 했습니다.
먼 훗날 알고 보니 제가 하사관 시절 기동훈련 때 우리 포를 잠깐 끌어 주었던 기억이 가물가물한 운전기사였습니다. 평안남도 강서가 고향인 그는 기술대대 로켓포 검열차 운전기사였거든요. 남편과 나란히 앉아 지나간 청춘시절을 회고하다 보니 조금은 쑥스러웠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과 같은 순간을 만들어 볼 기회가 없었는데 나이 들어 항상 그려 보던 순간이 오늘 일산 호수 공원에서 현실화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새 남편은 자전거를 대여해 왔습니다. 아들과 며느리가 함께 탔고 딸은 손녀와 함께 저는 남편과 함께 탔습니다. 아들과 딸은 씽씽 잘도 달립니다. 한참 달리던 아들과 딸은 속도를 줄이고 저를 기다립니다. 그리고는 제 뒤에서 천천히 달려옵니다.
지난 주말 많은 시민들과 어울려 봄꽃 활짝 핀 공원에서 가족과 더불어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