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군에 있는 청령포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청령포는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단종의 유배지로 1971년 강원도 기념물 제5호로 지정되었다가 다시 2008년 12월에 명승 제50호로 변경되었다고 합니다. 청령포는 동남 북 삼면이 강물로 둘러싸여 있고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밖으로 출입할 수 없는 마치 섬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기다리고 있는 배를 타고 청령포로 들어갔습니다. 작은 섬에는 아름드리의 많은 소나무들이 빼곡히 들어 서 있었는데 듬성듬성 작은 진달래꽃이 만발하게 피어 푸른 소나무와 연분홍 진달래꽃의 조화가 어울려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해설원의 나이는 50대 중반의 아줌마였는데 얘기를 조곤조곤 잘해 주었습니다. 조선시대 제6대 왕인 단종이 숙부인 수양 대군에게 왕위를 친탈 당하고 상왕으로 있다가 1455년 단종의 왕위 복귀 움직임이 누설됨으로서 상왕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중추부사 어득해가 거느리는 군졸 50인의 호위를 받으며 영월의 청령포로 유배 되었다고 합니다.
단종은 외부와 두절된 이 적막한 작은 섬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기념물로 관광지로 잘 꾸려져 있지만 당시에는 숲이 우거지고 풀이 왕성하고 장마철에는 강물이 불어 작은 초가집 마당까지 물이 철철 넘쳐 났다고 합니다. 누구나 한번 이런 생각을 해 보겠지만 순간 저도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그 어린 나이에 남도 아니고 숙부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숲과 풀로 우거진 이 깊은 산중에서 밤이면 들려오는 짐승 울음소리에 얼마나 무서움과 두려움에 떨었을까? 작은 방들을 둘러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남몰래 밤이면 호장 엄홍도가 이곳을 찾아 문안을 드렸다고 전해졌으며 그해 뜻밖의 큰 홍수로 동현의 객사로 처소를 옮겼다고 합니다.
지금 청령포에는 단종 유배시에 세운 금표비와 영조 때 세운 단묘 유지비가 서 있어 옛일을 전하고 있습니다. 청령포의 수림 속에 천연기념물 349로 지정된 600년이 된 소나무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단종이 유배 생활을 하면서 두 갈래로 갈라진 이 소나무에 걸터앉아 쉬었다는 설이 전해지는 소나무였는데 단종이 유배 당시의 모습을 보고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 해서 관음송이라고도 불리고 있습니다.
600년이 된 천연기념물 소나무를 오래오래 기념으로 남기고 싶어 사진 한 장 찍었습니다. 나무계단을 통해 망향 탑에 올랐습니다. 지금은 나무 계단으로 잘 꾸려져 있지만 당시에는 아주 험준했다고 합니다. 청령포 서쪽 절벽인 육육봉과 노산대 사이에 있는 돌탑이 있는데 어린 단종이 유배 생활 당시 이곳에 올라 한양 땅을 그리며 쌓았다는 탑으로 그 당시 애절했던 단종의 심정을 우리는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노산대는 단종이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이곳 청령포에서 유배생활을 할 당시 매일 해질 무렵이면 이곳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던 곳으로 노산대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느라 조금은 숨이 차고 힘들었지만 정상에 올라 수려한 산천을 보는 순간 우와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정말 한양이 바라보이는 듯도 했지만 망향탑 밑을 내려다보는 순간 아찔했습니다. 보기에는 그냥 흐르는 작은 강물처럼 보였지만 당장이라도 나를 휘감을 것 같았습니다.
마침 멀리 바라다 보이는 철길다리 위로 무궁화 열차가 달렸고 강 건너 보이는 작은 동네는 그야 말로 아담한 시골 마을이었는데 한 장의 그림을 보는 듯 했습니다. 재빠른 동작으로 손전화기로 사진 한 장 찍었습니다. 청령포 방문 기념으로 저는 많은 사진을 찍어 아이들에게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점심식사는 보리 비빔밥이었습니다. 보리밥이라는 말에 지난날 싫을 정도로 보리밥을 많이 먹고 살아온 저는 왜 하필 보리밥이지, 했었습니다. 생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꿀맛이었습니다. 저는 미리 준비해 가지고 간 오디술 한잔씩 옆 사람들에게 돌렸습니다. 점심식사 후 빠지면 안 되는 것이 있죠, 바로 따끈한 커피랍니다.
동료들과 함께 마시는 따끈한 커피 역시 좋은 기분에 좋은 공기와 함께 마시니 뭔가 달랐습니다.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영월읍 북방에서 약3km 떨어진 능동에 위치하고 있는 보덕사로 이동했습니다. 영월 북방 발본산 밑 바른편에 위치한 보덕사 앞에는 장릉이 한눈에 보이고 있습니다.
단종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보덕사 칠성각에는 태백산 산신령이 되었다는 단종의 혼령을 추모하기 위하여 단종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극락 보전 오른편에는 보덕사가 의상의 화엄 도량으로 창건됨 것임을 짐작케 하는 부도 1기가 있으며 극락 보전 안에 있는 삼존불은 목조 불로 알려져 상당한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함께 간 교수님은 우리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영월답사를 마치고 서울로 오는 내내 창밖으로는 봄비가 줄기차게 내렸습니다. 적지 않은 이 나이가 되도록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우리 조선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살아온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