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친한 언니와 함께 생각지도 않았고 계획에 없었던 경기도 팔당역 근방에 있는 예봉산에 다녀왔습니다. 오전에 서울에서 잠깐 일을 마친 뒤 언니는 누구를 만나러 팔당역을 다녀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도 이미 해야 할 일을 다 마친 뒤라 특별히 할 일이 없어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우리는 전철을 타고 팔당역으로 함께 갔습니다.
팔당역에 도착한 저는 입을 다물 줄을 몰랐습니다. 도로 밑에 흐르는 강물과 어우러진 예봉산의 절경을 보는 순간 올라가고 싶은 충동심이 생겼습니다. 모든 용무를 본 뒤 잠깐 예봉산 산세를 구경하고 가자며 우리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등산로로 들어섰습니다. 한 10분가량 도로를 따라 걸으니 도로 옆에는 여러 곳의 맛집들이 있었는데 우리는 닭가슴살을 올린 시원한 초계국수집을 지나 골목길로 들어섰습니다.
골목엔 낯익은 도깨비 박물관이 있었습니다. 몇 년 전 도깨비 박물관에 다녀온 적이 있었거든요. 저는 언니에게 도깨비 박물관에 대한 얘기를 열심히 하기도 했습니다. 얘기를 하며 걷다보니 작은 마을 사이에 나있던 포장된 도로가 끝나고 산골짜기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을 건너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작은 돌다리가 나왔습니다. 마침 물이 한 방울도 없는 돌다리였지만 우리는 돌다리를 건너 큰 돌밭 길을 걸었습니다.
잠깐 등산길의 시작점에 씌어져 있는 글을 우리는 열심히 그리고 크게 읽었습니다. 예봉산은 경기도 팔당주변의 예빈산부터 시작해 예봉산, 적갑산, 운길산으로 이어지는 작으면서도 아기자기한 능선으로 되어 있습니다. 해발 683m의 예봉산은 특히 팔당 전철역이 가까워 많은 등산객들이 편히 찾는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는 그리 높지 않은 등산 코스로 되어 있는 예봉산을 허술히 보고 쉽게 생각했었습니다. 한 10분 걸어올라 가니 우리의 숨소리는 가빠지고 온몸에는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고 얼굴은 땀범벅이 되고 거기다가 하루살이들까지 눈앞에서 날아다녀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겉옷을 벗어들어 벌레들을 쫓기도 했습니다. 조금 오르다가는 또 쉬고, 또 오르다가는 또 쉬고를 반복하면서 정상에 오를 수 있었는데 그야말로 아슬아슬한 협곡을 오르는 짜릿 함이 느껴졌습니다. 밑에서부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진달래 꽃향기, 소나무 향이 코로 솔솔 들어왔습니다.
이런 게 바로 당장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아름다움이라고 언니가 말해 우리 둘은 산이 떠나갈 듯이 호탕하게 웃었습니다. 그날은 등산객들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우리는 한 중년의 등산객을 만났습니다. 그 남성은 우리에게 다가와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왔습니다. 윗동네라고 언니가 답하자 그 사람은 중국 아줌마인줄 알았다고 하면서 옷차림이 등산하러 온 분들이 아니어서 조금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했었다고 해 우리는 또 웃었습니다.
넓은 시가지와 넓은 팔당호가 한눈에 들어 왔습니다.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하기도 했습니다. 아름다운 절경을 한눈에 바라보노라니 행복이 별 거 아니구나, 만족이 별거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하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산이든 바다든 강이든 구경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자유롭게 하고, 웃고 싶으면 목청껏 소리도 지르면서 웃는 것이 행복이라고 얘기하던 언니는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비록 노래도 잘 부르지 못하고 목청 또한 예쁘지 않았지만 즐겁고 행복해 하는 언니의 모습을 보니 저 또한 기뻤습니다. 왜냐면 요즘 언니는 동생 일로 인해 조금 마음이 불편했었거든요. 정상에서 한 시간이 조금 지나 우리는 올라갔던 반대편 길로 내려왔습니다. 한 중간쯤 내려 왔을까, 그곳에 작은 집 한 채가 있었습니다.
그 집은 점집이었습니다. 마당에 있는 작은 돌담 위에 우리는 작은 돌을 쌓고는 소원을 빌었습니다. 그리고는 졸졸 물이 흐르는 소리를 찾아 부엌문을 열었습니다. 산골 땅 속에서 나오는 물을 부엌 수도관으로 연결해 정말 물이 찼습니다. 비록 주인이 없었지만 저는 한 바가지 물을 들이키고는 신발을 벗고 발을 씻고 세수를 했습니다.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시원하고 상쾌했습니다. 내 모습을 지켜보던 언니도 세수를 하고 발도 씻었습니다. 우리는 마치 제 집처럼 마당에 있는 큰 돌담 위에 걸터앉았습니다.
마침 주인인 듯한 분이 왔는데 그 분의 손에는 두릅이 한 가득 쥐어있었습니다. 우리는 비위 좋게 그 두릅에 현미 쌀로 지은 밥까지 얻어먹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 어르신과 함께 마을로 내려오면서 우리는 후에 한 번 더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전철역으로 향했습니다.
전철역에 나와 보니 어느새 시간은 오후 5시였습니다. 다음에는 그 점집 할머니의 약수 물에 밥을 지어먹으면서 1박 2일로 여행을 오자는 약속을 했습니다. 나이 들수록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생각을 해보며,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