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4월23일부터 5월1일까지는 북한자유주간을 맞아 다양한 행사가 열립니다. 미국 자유북한연합 대표이자 북한인권운동가 수잔 솔티 여사가 시작해 올해로 9회째 맞는 북한자유주간 행사가 여기 대한민국 서울에서는 세 번째로 진행됐습니다. 이번 행사에는 수잔 솔티 여사뿐 아니라 특별하게 이 행사 개막식에 참가하기 위해 일본 마쓰바라 진 공안 및 납치 문제 담당 장관도 직접 서울에 왔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함께 마쓰바라 진 장관과의 만남에도 참가했고 저녁 식사 자리에도 직접 참가했습니다.
탈북자들과의 만남에서 마쓰바라 진 장관은 북한주민들의 생활 고난과 인권의 자유가 어느 정도인가를 세심하게 묻고는 가슴 아프다는 말도 했고 북한 주민들이 여기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과 한국 국민의 행복한 삶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몹시 궁금하다고 물었습니다.
또한 일본인 납치 문제를 담당한 장관이라 그는 납치된 일본인 문제에 대해서 북한 주민들이 알고는 있는가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그는 북한 주민들이 인권이란 말조차도 모르고 살고 있으며 자그마한 경제 범죄에 대해서도 공개 총살당하고 있으며 탈북을 시도 하다가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 인간의 가치적 생활마저도 박탈당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못내 가슴 아프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지금 북한주민들이 조금씩 변해 가고 있는 모습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평양시 주민들 속에서 생활이 여유가 되는 사람들은 CD를 통해 보던 한국드라마를 이제는 USB를 통해 시청하는데 보위원이나 안전원이 검열을 할 때에는 정전을 시키고 들어오기 때문에 CD는 미처 뽑을 수가 없어 많이 걸리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걸리지 않는 작은 USB를 통해 한국드라마를 시청한다는 저의 말에 마쓰바라 장관은 크게 웃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젊은 사람들 중에는 아이들의 교육과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는 한국으로 와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한국행을 많이 선호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한국말과 노래, 춤도 많이 따라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또한 저는 북한에 있을 때 납치, 납북자라는 말은 전혀 들어 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북한 사회에서는 알 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최근에 오는 탈북자들 속에서는 자유 아시아 방송이나 자유북한 방송을 듣고 탈북해 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하면서 북한주민들은 중국에서 들어가는 록음기 주파수를 통해 이 방송을 듣는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북한 주민들에게 납치 피해자 문제를 많이 알려야 납치 피해자들의 소식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하기에 대북 방송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문제는 저 뿐만이 아닌 함께 참가한 친구들도 한결같은 마음이었습니다. 마쓰바라 진 장관은 후에 다시 함께 저녁식사를 하자는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저녁에 다시 만난 장관은 다시 처음부터 북한 주민들의 힘든 상황에 대해 세심히 묻기도 하고 일본에서 함께 온 분들에게도 궁금한 점들에 대해서도 물어 보라고 했습니다. NHK의 여성 기자는 저에게 탈북하게 된 동기에 대해 물었습니다. 저는 죽지 않으면 산다는 굳은 각오로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과 베트남, 캄보디아를 걸쳐 사선을 넘어 이곳 대한민국까지 오게 된, 어렵고 힘들었던 상황에 대해 조목조목 이야기 했습니다.
그는 눈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저의 손을 꼭 잡아주며 힘내라고 용기를 주기도 했고 고생을 많이 한 것만큼 행복하고 건강하게 북한 당국이 보란 듯이 잘살아야 한다고 말해줬습니다.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장관도 저에게 건강해야 한다고 당부하면서 기념사진을 찍자고 했습니다.
우리는 음식점에서 편안하게 여러 장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마쓰바라 장관과 헤어져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오는 동안 빗물이 흐르는 차창 밖으로 서울의 아름다운 야경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북한에서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복한 새 삶을 여기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대한민국의 이름 있는 장관과 유명한 국회의원들도 만나보았고 북한당국이 철천지원수라고 하는 미국도 여러 번 다녀왔고 일본도 다녀왔고 일본 장관도 만나 보았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평범했고 똑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일반 주민들은 대의원이나 중앙당 간부들을 마음대로 함부로 만날 수도 없거니와 자유롭고 편안한 자리에서는 더더욱 만날 수 없습니다. 1989년 세계 학생 청년 축전과 관련해 평양시 꾸리는 사업에서 중앙당 간부들이 인민반에 담당이 돼 내려 온 적이 한 번 있었습니다.
그들은 배가 나온 사람들이었는데 오만하게 건방을 떨면서 주민들의 생활에 대해서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겨울에 석탄도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추위에 떨고 있는데 아직도 석탄 때는 곳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어이가 없는 저는 "과장님 무슨 소리 하십니까? 지금 주민들은 석탄과 석유를 공급해 주지 않아 밥도 해 먹기 힘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북한의 간부들은 주민들의 생활을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지 아니면 정말 모르고 모른다고 하는 지 일반 주민들은 궁금할 정도입니다. 벌써 어느 구역당 당비서나 행정위원장이 됐다고 하던가 아니면 어느 큰 공장 지배인이나 당 비서가 되면 웬만한 당원들은 잘 만나 주지도 않을 뿐 아니라 함부로 만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주민들이 불편한 점과 애로 사항을 함부로 제기할 수도 없고 신소를 할 수도 없습니다. 구역 당 신소과에만 한 번 찾아가도 등록이 되고 열 번, 스무 번 걸음을 해야 겨우 한 번 만날 수 있어 함부로 아무 말이나 신소할 수 없습니다. 저는 자유민주주의가 얼마나 좋은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서 인권과 자유란 말조차 모르고 살고 있는 불쌍한 고향의 부모 형제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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