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 한 어린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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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일은 국제 노동자명절이라 친구들과 함께 오랜만에 식사를 하고 헤어져 조금 늦은 저녁 시간 아파트 출입문으로 들어가려다 우편통에 뭔가 들어 있어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작은 편지 한통이 들어 있었습니다. 편지 겉봉에 씌어 있는 이름을 보는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올해 초등학교 2학년생인 손녀 딸애의 이름 석 자가 조금 서툴기는 하지만 또박또박 적혀 있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받아 보는 편지였습니다. 할미가 보고 싶다고 애교 넘치는 목소리로 필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손 전화기로 안부를 물어 오던 손녀이건만 오늘은 웬일로 편지를 다 보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요. 너무도 오랜 세월 만에 제 이름 석 자가 씌어 있는 편지 봉투를 손에 쥐어 보는 감격이 새로웠습니다. 문득 잠시 지나간 고향 생각이 났습니다.

전화가 없는 북한에서 지방에 살고 있는 친척과 친우에게 편지로 고향 소식과 안부를 자주 전하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군복무 시절 일주일이 멀다 하고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에게 보고 싶다 아프지는 않은지, 당시 학생이었던 동생들은 공부에는 열중하고 있는지, 최우등을 하고 있는지 등 안부를 묻는 편지를 자주 썼거든요.

지난날 그렇게 자주 쓰던 편지도 어느 날 갑자기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서로 살기 어렵다는 핑계로, 아니면 나라 사정이 어려워져서 인지 서로 편지조차 자주 보낼 수도 없었고 받아 볼 수도 없었습니다. 어느새 제 눈이 촉촉해 왔습니다. 승강기를 타면서 편지를 뜯었습니다. 편지 내용은 어린이날을 앞두고 할미에게 선물을 요구하는 편지였습니다.

이제는 9살 공주님이라 제 방을 꾸미고 있는데 어린이날 선물로 침대를 구입해 달라는 것입니다. 저는 빨리 손녀에게 할미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손전화기를 들었습니다. 첫마디에 초롱초롱 손녀의 목소리가 울려 왔습니다. 편지를 받아 보았는가 하는 답변입니다. 눈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은 금쪽같은 귀중하고 소중한 내 강아지라 단 한마디로 오케이 했습니다.

좋아라. 깡충깡충 뛰는 손녀의 모습이 한 장의 그림으로 안겨 옵니다. 하여 지난 주말 저는 손녀와 함께 서평택 가구 전문점으로 갔습니다. 손녀가 마음에 꼭 들어 하는 2층 침대가 있습니다. 저는 가격은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무조건 또 오케이 했습니다.

손녀의 작은 입에서 '역시 내 할머니이고 나는 할머니 손녀라니까' 하는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가구매점 사장님도 저도 제 엄마도 크게 웃었습니다. 침대는 다음날 설치 해 줄 것을 사장님과 약속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북경이라고 씌어 있는 중국음식점에 들렸습니다. 손녀가 제일 좋아 하는 자장면을 시켰습니다. 저 역시 오랜 만에 먹는 자장면이라 별맛이었지만 맛있게 먹는 손녀를 보는 제 마음 너무도 행복 합니다.

자장으로 칠을 한 손녀의 입을 닦아 주기 위해 저는 물티슈를 꺼내 들었습니다. 자장면 먹는 맛은 바로 입주변이 더러워 져야 제 맛이라고 하는 손녀의 기특한 말과 표현이 조용하던 음식점 안에 다시 한 번 웃음 폭소가 터졌습니다. 누가 봐도 내 손녀가 아니랄까, 하고 우리는 또 한 번 웃었습니다. 사람은 때로는 행복과 즐거운 인생에 대해 잘 느끼지 못 할 때가 있다고 하지만 저는 이런 행복과 즐거운 생활이 가끔 새삼스럽게 가슴에 와 닿을 때가 많습니다.

손녀와 즐거운 식사를 하면서 저는 오래된 속담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옛날 어느 머슴 집에서는 아기의 재롱을 들으며 매일 저녁마다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답니다. 이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부러운 주인(지주)이 금덩어리와 돈을 쌓아 놓고 마누라와 마주 앉아 바라보았지만 행복한 웃음은커녕 서로 두 눈을 부라리며 싸웠다는 옛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저는 개구쟁이 손자 녀석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마음이 다 그러 하듯이 저도 북한에서 우리 아이들을 키우면서 남들 보다 좋은 교육을 받게 하고 싶었고 다른 집 아이들보다 더 좋은 옷을 입히고 좋은 것을 먹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도 열악한 생활이기에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돼 주지 못했습니다.

또 모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그러하듯이 저 역시 다를 바 없습니다. 그들을 내 품에 안은 그 순간부터 저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고 귀중한 내 가족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제가 지금 '이렇게 좋은 세상에서 이런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남한에서는 해마다 5월 5일이 어린이날입니다. 이번 어린이날도 저는 세상에서 제일 즐겁고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 보면서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