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봄도 어느새 지나가고 5월이 왔습니다. 5월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바로 가정의 달이라는 것입니다. 5월은 1일 근로자 명절로 시작해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15일 스승의 날과 19일 성년의 날, 21일 부부의 날 등도 있답니다. 하기에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누구나 쉽게 말합니다.
이런 행복한 5월, 요즘 저에게는 조금 엉뚱하기는 하지만 하루하루가 기적 같은 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때로 해봅니다. 사실 저에게 평택에서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2시간 혹은 차가 많아 도로가 밀리면 3시간이 걸리는 서울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출퇴근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저에게는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하며 즐겁게 살고 있답니다.
작년 말쯤 저는 누군가로부터 어머니회를 하나 만들면 어떨까 하는 조언을 듣고 많은 생각을 하고 있던 참에 조금 마음 아픈 얘기를 들었습니다. 작년 말 저는 나이 많은 탈북 어르신으로부터 조금 좋지 않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얘기인즉 자식하나 없고 친척도 아는 이 하나 없이 이곳 한국에 홀로 오신 한 할머니의 여든 한 번째의 생일인 팔순 잔치 날이었다고 합니다. 우리 탈북자들은 누구나 생일이나 명절이 되면 고향에 두고 온 가족 생각에 쓸쓸하고 외로움이 가득 느껴집니다.
외로운 그 할머니는 팔순 잔치에 여러 아는 친구들을 불렀다고 합니다. 예술단원 중 4명의 젊은 친구들이 노래를 불러주고 100달러를 받아갔다고 합니다. 하여 저는 여건이 되면 큰 것은 아니더라도 외로운 독거노인들의 생일에 축하 빵(케이크)에 촛불을 켜주는 것도 하나의 행복과 즐거움이 되지 않을까, 외로운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탈북어머니회’를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친목회 형식으로 간단하게 시작하려고 했던 것이 지금은 이미 제가 알고 있던 지인들의 많은 도움으로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위한 활동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법적으로 인정받는 모임인 사단 법인도 아니고 거창한 목적을 가진 비영리 단체도 아닙니다만 우리 탈북 어머니들은 누구나 고향땅에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남편과 자식이 있고 또 누군가는 부모형제가 있습니다. 누구나 이산가족이 아닌 이산가족의 슬픔과 마음의 상처가 나름대로 있거든요. 나서 자란 정든 고향을 지척에 두고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말 못할 가슴 아픈 사연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명절과 생일이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이런 상처를 가지고도 꿋꿋이 살고 있는 우리 어머니들, 가족과 자식을 살리기 위해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자식에게 술을 먹여 배낭 속에 넣어 등에 지고 두만강을 넘었으며 자식 한 명은 등에 업고 남은 두 자식은 양쪽 손목에 작은 손목 하나씩 잡고 경비 대원에게 잡힐까 발자국소리를 죽이려 추운 겨울에 신발을 벗기고 얼음과 눈 속을 헤치며 두만강을 건넜으며, 빠른 물살에 자식이 떠내려갈까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는 부모마음으로 새끼줄로 묶고 한 몸 그대로 차디찬 두만강 살얼음을 헤쳐 여러 개의 국경을 넘으며 그야말로 ‘죽지 않으면 살겠지’ 라는 각오로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의 품에 안겨 그야말로 북한 주민들로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행복한 삶, 인간다운 새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지만 특히 우리 탈북 엄마들에게는 이런 강한 의지와 신념이 있었기에 오늘의 삶이 있다고 봅니다. 지난 모임에서 저는 탈북 어머니회 회원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남은 인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어가며 산다는 것이 별거 아니다, 소박한 꿈이 있고 그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서 서로 마주앉아 따끈한 커피 한잔을 놓고도 만족할 줄 아는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더불어 ‘우리 어머니회 회원들은 누구나 때 없이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서로 마음의 상처를 풀어가고, 서로 좋은 정보를 나누어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우리의 즐거움과 행복이 아닌가’ 라고 말하자 모두 맞는 이야기라고 한마디씩 했습니다.
또 나이 많은 어르신들은 집에 있으면 괜히 지난 상처로 인해 마음이 아프고 몸이 아프니 자주 모여 수다도 떨고 사람 구경도 하고 서로서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자고 했습니다. 가정은 한 사회의 세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기에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우리 가족이며 그 가족을 움직이는 힘이 바로 우리 여성들이 아닌가 합니다.
어제도 저는 국립의료원에 입원해 시술 치료를 받고 있는 한 어르신의 병문안을 다녀오면서 지난날 몰랐던 그분들의 외로움을 진심으로 알았고 앞으로는 그런 분들과 함께 가겠다는 것을 다짐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