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부랑 국수(라면)의 추억

기록영화에 등장한 대동강 즉석국수.
기록영화에 등장한 대동강 즉석국수.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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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꽃이 활짝 피는 6월입니다. 아파트 단지 울타리에는 활짝 핀 장미 넝쿨로 인해 그야말로 빨간 장미꽃 속에 동네가 묻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는 예쁘다, 아름답다, 너무 예쁘고 정말 아름답고 장미향이 좋다는 말이 저절로 튀어 나옵니다. 꼬맹이 손자녀석들도 가시 달린 빨간 장미꽃을 살그머니 코에 가져가 봅니다.

주말이라 저는 손자 녀석들과 아파트 단지 내 작은 공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인 라인 스케이트와 자전거를 타고 있는 개구쟁이들을 부지런히 따라 다니며 이마에 쉼 없이 흐르는 땀을 닦아 주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한 반나절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뛰어놀던 개구쟁이들은 때 아닌 시간에 갑자기 매콤한 라면이 먹고 싶다고 합니다.

손자들이라면 끔벅 죽는 저는 개구쟁이들과 함께 집에 들어와 미지근한 물을 가득 채워 넣은 욕조에 들여보냈습니다. 많은 땀을 흘리고 시원하게 목욕까지 한 손자들에게 매콤한 라면을 끓여 주었습니다. 라면국물을 한 술 입에 떠 넣은 9살짜리 손녀가 엄지손가락을 보이며 최고라 하자 엉뚱한 7살짜리 손자 녀석은 바로 이 맛이야 하고 엄지손가락을 보입니다.

제일 작은 4살짜리 손녀 애가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언니, 오빠 흉내를 내자 엉뚱한 말을 많이 하는 손자녀석은 제 동생에게 '네가 라면 맛을 알아?' 하고 삐쭉거립니다. 애들 때문에 우리 가족은 크게 웃었습니다. 매콤한 라면 한술에 물 한 컵을 마시며 실실거리는 개구쟁이들의 재롱을 보며 지나간 고향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북한에도 라면 비슷한 꼬부랑 국수가 있습니다.

80년대 중반에 평양시민들에게 꼬부랑국수가 식량으로 공급된 적 있었습니다. 15일간 식량으로 꼬부랑 국수를 공급받았는데 퇴근해 오면 꼬부랑 국수가 없어졌습니다. 금방 공급받은 식량인데 너무도 많이 차이가 나곤 했었죠. 세 자녀를 나란히 앉혀 놓고 꾸짖었습니다. 서로서로 눈치를 보면서 자물쇠를 잠가 놓은 것처럼 또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입을 꾹 다물었습니다.

원래 꼬부랑 국수는 씹으면 씹을수록 바삭하고 고소한 맛이 있거든요. 먹을거리가 부족한 북한 사회라 우리 아이들은 꼬부랑 국수를 간식처럼 먹어 버리곤 했습니다. 철없는 아이들은 맛있다고 또 간식 먹을거리로 먹었지만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진 저로서는 속상한 일이 많았습니다. 말이 15일간 식량이었지, 10일 먹기 딱 좋은 량인데다가 아이들이 간식 먹을거리로 먹으니 그보다 속상할 일이 없었습니다.

참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아이들에게는 미안한 일입니다만 저에게도 철없었던 그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린 철부지 시절에는 건면이 있었습니다. 건면 역시 모양은 다르지만 맛은 꼬부랑 국수 맛 비슷했거든요. 식량 공급소에서 건면을 쌀 대신 공급을 받았습니다. 직장 출근한 어머님 몰래 동생들과 함께 동네 아이들까지 불러 들여 건면을 먹으며 고소하고 맛있다고 수다를 떨던 철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낮에는 그런대로 보냈지만 퇴근시간이 가까워 올수록 부모님에게 혼날까 두려워 많은 근심으로 마음을 졸이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수십 년이 지난 오늘에는 또 부모가 된 내 자녀들과 옛말이 되네요.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소낙비가 내리던 어느 날 저녁 꼬부랑 국수를 끓여 그릇에 담아놓았는데 눈송이처럼 희고 작은 것들이 가뜩 합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좀 벌레였습니다. 장마철이라 습기로 인해 꼬부랑 국수에 좀 벌레가 들었던 것입니다. 하여 보름식량인 꼬부랑국수를 들고 배급소에 가서 다른 것으로 교환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배급소에서는 주민들의 의견을 들어 주지 않았습니다.

지나간 날들의 슬픈 기억으로 아픈 마음을 달래기도 하고 또 어처구니없는 사소한 추억으로 혼자 웃고 있는데 손자 녀석이 라면을 제 입에 넣어 줍니다. 손자가 넣어 주는 라면이라 별맛이었습니다. 야근을 하고 늦잠에 들었던 아들이 손자들이 먹는 라면 냄새에 못 이겨 방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역시 우리나라 라면이 최고지, 하며 라면 한 개를 손에 듭니다. 이곳에 온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들은 라면이 최고라 합니다. 아들은 특이한 습관으로 라면에 고추 가루와 기름을 더 두고 자박자박하게 끓입니다. 그래야 라면 맛이 난다고 합니다.

이곳 대한민국에는 라면 종류만도 수십 가지가 있습니다. 신라면, 삼양라면, 진라면 등 고소한 참깨라면 이라든지 또 우동라면, 육개장 라면, 김치라면 심지어는 자장 라면 등 어쨌든 셀 수가 없이 종류로 수십 가지의 종류랍니다. 입맛이 없을 때나 혹 전날 회식으로 소주 한잔했을 때 숙취로 뜨끈한 라면 국물 한모금 마시면 속이 시원합니다. 라면의 진한 향이 온 집안을 뒤 흔듭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