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은 인옥언니의 66번째로 맞는 생일이었습니다. 전날 저녁만 해도 저는 아침 일찍 언니에게 손전화로 생신축하 문자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만 깜박 잊었습니다. 낮 12시쯤 열차 안에서 그만 생각이나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생신축하 문자를 보내는 동시에 전화를 걸었더니 홀로 집에 있다고 했습니다. 손전화기를 손에서 놓는 순간 저는 나 자신도 모르게 고향의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홀로 이곳 한국에 와있는 언니가 생일날 홀로 집에 있다고 생각을 하니 왠지 내 마음이 조금 슬퍼졌습니다. 하루 계획했던 일을 마치고 보니 오후 4시가 됐습니다. 저는 인옥 언니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화곡역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습니다. 빵가게에 들려 제일 맛있는 케이크를 구입해 들고 가장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언니와 약속 장소로 갔습니다.
비록 조금 늦은 감은 있기도 하지만 작은 것으로나마 깜짝 선물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언니가 제일 좋아하는 양고기를 꼬치에 꿰어 구워먹는 양꼬치 집으로 갔습니다. 예쁘고 맛있는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소원을 빌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음식점이 떠나갈 듯이 우리는 생일 축하노래를 크게 불렀습니다. 음식점 사장님에게 부탁해 기념사진도 찍었습니다. 저는 날쌘 동작으로 케이크에 발라져있는 달콤한 크림을 손에 찍어 언니의 볼에 묻혔습니다.
비록 이제는 반생을 넘게 살아온 할머니들이지만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손뼉을 치고 떠들썩하게 시원한 맥주잔을 들어 언니의 건강 기원과 죽기 전에 고향에 한 번 가보자는 의미로 소리쳐 건배했습니다. 저는 사장님에게 국수 한 그릇을 먼저 부탁했습니다. 북한에서는 생일에는 꼭 국수를 먹어야 명이 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뜻밖에 언니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한참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언니는 이곳 대한민국에 온지 8년이 됐지만 친구들과 함께 생일을 보내는 것이 생전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언니의 말을 듣는 순간 조금 놀라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외로움을 느껴보지 못한 이들은 잘 모릅니다.
언니가 두만강을 넘어 탈북했을 때, 남편은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었고 두 아들은 고향에 두고 왔다고 합니다. 그사이에 언니의 두 아들은 결혼을 했으나 얼굴도 모르는 두 며느리와 눈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을 손자들이 얼마큼 자랐는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고향에 두고 온 그들을 위해 살다 보니 어느새 세월은 흘러 언니의 나이도 66세가 됐습니다.
고향에 두고 온 자식들을 위해 열심히 살다 보니 생일에 함께 보낼 친구도 없이 살아온 인옥언니가 너무도 안됐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곳 천국 같은 대한민국에서 귀한 자식들을 모두 슬하에 두고 있는 저는 너무도 행복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마음으로 느껴 보게 됐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저에게 언니는 또 한마디 했습니다. 오늘과 같은 고마움을 두고두고 잊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지난 고향에서의 생일을 보냈던 얘기를 했습니다. 딸이 없었던 언니는 항상 딸부자인 옆집에 딸 한명만 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 마음을 알아주듯이 맏아들은 바쁘게 살고 있는 엄마의 일손을 많이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던 언니는 그만 자신의 생일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고 합니다. 회사일 을 마치고 저녁에 퇴근해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도착해 보니 아들이 저녁밥을 지어 놓고 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동생까지 챙겨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날도 아들이 다 자랐구나 하는 생각으로 대견해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남편의 사랑을 누구보다도 끔찍이 받아온 언니는 남편이 살아 이곳 대한민국에 함께 왔다면 오늘 같은 날 빨간 장미 100송이 꽃묶음을 안겨 주었을 것이라고 해 우리 모두 또 한 번 마음이 짠했습니다. 이런 우리들의 마음을 알아주듯이 하늘에서도 보슬비가 말없이 내렸습니다. 비는 내렸지만 언니의 생일을 축하하며 2차로 노래방에 갔습니다.
비록 아는 노래도 없고 노래방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언니였지만 친구들이 부르는 노래에 춤을 추었습니다. 비는 멈추지 않고 계속 내렸지만 우리는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서로 헤어졌습니다. 저는 외로운 언니와 함께 하룻밤을 보내고 싶어 언니가 살고 있는 집으로 갔습니다.
한 우산을 둘이 함께 나란히 쓰고 걸었습니다. 올해 66번째 생일을 맞은 그날부터 언니는 많은 복지 혜택이 차례진다고 합니다. 우선 전철도 무료로 탈수가 있고, 홀로 사는 독거노인이라 생계비 수당도 오른다고 말입니다. 비록 남편과 자식이 없이 의지할 사람은 없지만 정부에서는 부담 없이 살아 갈수 있게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갖가지 복지 혜택을 주고 있다는 언니의 얘기를 들으면서 저는 다시 한 번 한국정부에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지게 됐습니다.
인옥 언니는 고향에 두고 온 친언니의 나이가 70세인데 죽기 전에 남은 인생을 이곳에 와서 함께 보낼 수 있도록 돈을 모으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정말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하며 제 손을 꼭 잡았습니다. 오늘도 저는 친구들과 함께 인옥 언니의 생일날 즐겁고 행복한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