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제 전우회와 함께 아픈 역사 속으로

'휴전선 155마일 횡단 평화통일 체험활동'에 참가한 청소년 155명이 철원 백마고지로 향하고 있다.
'휴전선 155마일 횡단 평화통일 체험활동'에 참가한 청소년 155명이 철원 백마고지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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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저는 윁남전에 참여했다 고엽제 피해를 입은 고엽제 전우회 회원들과 함께 강원도 철원에 있는 백마고지와 6. 25 전쟁기념관을 다녀왔습니다. 백마고지는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신명리에 위치한 해발 395m의 야산으로 전쟁 전에는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이름 없는 무명고지에 불과했으나 한국전쟁 때 한국·유엔군과 북한·중공군 양측이 조금이라도 유리한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치렀던 곳입니다.

명칭의 유래는 전쟁 중 포격에 의해 나무들이 다 쓰러져버리고 난 후의 모습이 그야말로 누워 있는 백마처럼 보였기 때문에 백마고지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말도 있고 당시 참전했던 어느 연대의 부대장이 외신 기자의 질문에 백마고지라는 뜻의 ‘화이트 호스 힐’이라고 답변하여 비롯되었다는 말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격전을 치루고 난 처절한 산의 형상이 백마의 와상과 같다하여 백마고지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말이 유력하다고 합니다. 어쨌든 이 전투를 계기로 전투를 수행한 9보병사단의 이름은 백마 부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함께 간 고엽제 회원들 속에는 백마 부대에서 근무한 사람들도 있어 더욱 의미 있는 관광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백마고지 전투는 1952년 10월 철원에 위치한 작은 이 고지를 두고 국군 제 9보병사단과 중공군 제38군 등 3개 사단이 쟁탈전을 벌인 끝에 한국군 9사단이 승리한 전투라고 합니다.

당시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10일 동안 불과 395m밖에 안 되는 이 작은 고지를 빼앗기 위해 중공군 1만 명이 사상 혹은 포로가 되었으며 국군 제 9사단도 총 34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발사된 포탄 수는 아군 21만 9954발, 적군 5만 5000발등 총 27만 4954발이 사용되는 등 세계적으로 봐도 유래가 없을 만큼 처절한 포격전과 수류탄전, 그리고 백병전을 10일 연속 주야로 반복한 끝에 백마고지를 한국군이 차지했습니다.

비록 우리가 보기에는 그리 높지도 않은 야산 봉우리였지만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귀중한 고지였는가를 잘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백마고지 전시관 안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백마 3용사라는 글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1952년 10월12일 한국군은 고지 탈환을 위한 세 차례의 돌격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강승우 소위와, 오귀봉 하사, 안영권 하사는 양손에 수류탄을 들고 탄우 속을 헤쳐 단숨에 고지 정상으로 달려가 적의 기관총 진지를 박살내고 장렬하게 전사하였다고 합니다.

전 장병들은 육탄 3용사의 투혼에 사기를 얻어 순식간에 고지 정상인 백마고지에 태극기를 꽂았다고 합니다. 오늘도 조국을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바친 3용사는 백마의 삼군신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백마고지의 전적지 기념물들인 호국영령 충혼비와 위령비, 백마 3용사 기념 동판, 상승각 등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다음으로 노동당사를 찾았습니다. 노동당사가 세워져 있는 곳은 전쟁 이전에는 북한 땅이었다고 합니다. 철원지역은 해방 후 북한의 관할 하에 놓였는데 그때 지어진 노동당 철원군 당사 건물이라고 합니다. 이 건물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파괴되고 지금은 외벽만이 보존되고 있는데, 외벽의 포탄흔적은 한국전쟁 때의 상처이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전쟁기념관을 찾았습니다. 기념관 통일관과 함께 철원평야를 가로질러 흐르는 한탄강 중류에 위치한 철원팔경 중의 한곳인 고석정을 돌아보았습니다.

임꺽정이 잠깐 은둔 생활을 하고 갔다는 고석정과 강물과 바위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한탄강의 계곡, 숲이 우거진 웅장한 전경은 정말 혼자 보기에는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식사를 하고 서울로 오는 도중 산정 호수에서 약 3시간 정도 자유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고엽제 전우회 분들은 여기에서 술 한잔 하기도 했고 산책을 하거나 시원한 그늘에 앉아 산전수전 겪으며 살아온 인생을 푸념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6. 25 전쟁을 겪었고 또 나이 들어 군에 입대해 윁남전쟁에서 수많은 고생과 어려움을 견디며 살아온 그들이었습니다.

저는 저수지 주변 올레길을 따라 걸으며 아픈 한반도 역사를 살아온 그분들이 바로 우리 대한민국 발전과 역사의 주인공들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알게 됐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