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의 기쁨

현대중공업 임직원은 주말이면 회사 텃밭으로 출근한다. 회사에서 분양받은 울산시 동구 주전동 16.5㎡(5평) 규모의 텃밭에서 상추, 배추, 깻잎, 방울토마토 등 다양한 농작물 가꾸기에 푹 빠져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임직원은 주말이면 회사 텃밭으로 출근한다. 회사에서 분양받은 울산시 동구 주전동 16.5㎡(5평) 규모의 텃밭에서 상추, 배추, 깻잎, 방울토마토 등 다양한 농작물 가꾸기에 푹 빠져있기 때문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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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는 작은 텃밭 가꾸기에 푹 빠져 있답니다. 주말마다 저는 손녀와 함께 텃밭에서 떠날 줄을 모른답니다. 저에게 있어서 두 번째로 재미있는 일이 농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질 정도입니다. 얼마 전에 저는 큰딸의 소개로 땅주인이 사용하지 않고 놀리고 있는 작은 텃밭을 임시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주말마다 손자들과 함께 가지, 고추, 토마토, 오이를 조금씩 심었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빨갛게 익어 가는 토마토와 고추를 볼 때마다 마치 두 번째로 태어나는 내 자식과도 같은 마음이 든답니다. 게다가 비록 작은 텃밭이지만 수확이 아주 쏠쏠합니다. 어제는 토마토 첫 수확을 했습니다.

크고 잘생긴 빨간 토마토 5알을 첫 수확해 가족과 함께 토마토 화채를 만들어 먹었답니다. 토마토 화채를 먹으며 손자들은 서로서로 제가 심고 가꾼 첫 수확이라 기쁨이 넘쳤습니다. 처음 텃밭을 얻어 손자들과 그저 즐거운 재미로 시작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오이와 토마토, 고추 모종할 때 이런 기쁨과 행복이 있으리라고는 크게 생각지 않았거든요.

하루하루 몰라보게 쑥쑥 커가는 모를 볼 때마다, 그리고 요즘에는 빨갛게 익어가는 열매들을 볼 때마다 괜스레 마음이 설레기도 합니다. 비록 큰 건 아니지만 첫 수확한 토마토를 맛보며 저는 작은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게 됐습니다.

작고 흔한 토마토 화채 하나를 두고도 화기애애한 사랑하는 내 가족을 보면서 저는 북한에서의 지난 세월 너무 힘들었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그 시절, 저에게도 작은 텃밭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사실 내 고향 평양시에는 텃밭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또 평양시에는 텃밭은커녕 인민반 주변에 작은 꽃밭 하나밖에 없습니다. 한해 여름에 겨우 세대별로 오이 1킬로그램 정도 차례지는 평양시민 생활 속에서 오이 한 번 우리 아이들에게 실컷 먹이고 싶은 것 역시 소박한 소원이기도 했었습니다.

한해는 인민반 꽃밭에 호박도 심고 근대를 심었습니다. 근대는 서리 내리는 10월 말까지도 계속 뜯어먹을 수 있기에 분한 있는 남새이기도 합니다. 9월이 되자 지붕 위에는 제 머리만 한 둥근 호박이 여러 개 달렸습니다. 첫 호박을 8월 10일인 언니 생일에 수확했습니다.

저에게 한 명 밖에 없는 언니는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저는 첫 수확한 호박을 가지고 언니 집에 갔습니다. 언니는 고추장에 까나리를 두고 호박 장을 맛있게 만들어줬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며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개구쟁이 손자 녀석이 달고 시원한 토마토 화채를 한 술 떠 제 입에 떠 넣어주었습니다. 정말 꿀맛 같았습니다. 내 손으로 직접 심고 가꾸고 손자 녀석들의 손길이 닿은 토마토라 더욱 꿀맛 같았나 봅니다.

고향에서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작은 창고 뒤에 상추를 심은 적이 있었습니다. 손바닥만 한 초록색 상추가 먹음직스럽게 잘 크고 있었는데 마침 하지 날이라 상추쌈을 먹으려고 아끼고 있었는데 그만 지나가던 술주정뱅이가 거기에 오줌을 쌌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일도 아니었고 또 웃을 일이었지만 오줌에 절어 누렇게 죽은 상추를 뿌리채 뽑아 버리면서 얼마나 마음 아팠는지 모릅니다. 옛날 생각을 하고 있던 저에게 이번에는 손녀딸애가 화채 한 술 떠서 할미 입에 넣어주었습니다.

저는 4명의 손자 녀석들을 모두 품안에 꼭 안고 잔등을 두드려 주었습니다. 할미에게 늘 웃음을 주며 하루하루 몰라보게 자라고 있는 개구쟁이들과 손자손녀들만큼이나 잘 자라고 있는 토마토와 가지, 고추를 바라보며 좋은 추억을 만들어 갑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