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저는 우연히 금순이를 만나게 됐습니다. 친구의 친구는 나의 친구라는 말이 있듯이 이제 나이 40이 갓 넘은 금순이는 나에게 동생과도 같은 친구입니다. 시간이 감에 따라 그의 살아온 경력을 알게 된 저는 크나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의 고향은 개성이었는데 군복무를 하던 남편을 따라 함경북도로 시집을 오게 됐다고 합니다. 함북도는 1990년도부터 식량 공급이 중단됐었는데 당시 가장이었던 남편은 이미 오래전인 1998년 겨울, 가족을 살리기 위해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북했다가 2000년 봄에 강제 북송되어 5년의 징역형을 받고 2001년도 여름에 교화소에서 굶주림을 참지 못해 쥐를 잡아먹고 급성 출혈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는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아 철없는 두 딸과 함께 죽을 결심까지 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친지의 소개로 어린 딸들과 함께 강을 건넜는데 중국에서 공안에 잡혀 딸들과 함께 강제 북송됐다고 합니다. 먹고 살기 힘들어 결국 두 딸을 고향에 남겨 두고 다시 강을 건넜는데 어린 두 딸은 고아라는 죄와 집이 없고 미성년이라는 죄 아닌 죄로 관리소에 가게 됐다고 합니다.
19살이 되어서야 두 딸은 관리소에서 나와 큰딸은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고 작은 딸은 엄마를 찾아 한국으로 오기위해 준비하던 중 두만강 물에 들어서지도 못한 채 북한에서 브로커와 함께 체포되어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 생사조차 모르고 있다고 합니다.
그의 얘기를 듣는 순간 저의 눈에서는 눈물이 저절로 흘렀습니다. 그의 얘기가 저와 별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의 남편 역시 교화소에 가서 굶어 죽었고 제 아들 역시 집과 부모가 없다는 구실로 관리소에 몇 년 동안 갇혀 있었습니다. 저 역시 나중에 찾은 아들이 관리소에서 고생했다는 얘기를 들으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지난 가슴 아픈 추억을 하며 둘이서 실컷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의 모습에서 다시 한 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신발을 벗는 순간 사람은 10손가락과 10개의 발가락이 있어야 정상인데 금순이는 2개의 발가락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뭉텅 잘린 발에서는 빨간 선지피가 흘러 양말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제가 그 이유를 묻기도 전에 그는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금순이는 임신 6개월 된 몸으로 이곳 대한민국으로 오기 위해 중국을 출발해 몽골국경을 넘었다고 합니다. 길을 잃은 일행은 모두 얼어 죽고 금순이는 탈진된 상태에서 발견되어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는데 그만 임신 6개월 된 아기는 자연 유산됐고 두발은 꽁꽁 얼어 있었다고 했습니다.
대한민국에 입국한 금순이는 얼어서 썩은 두발의 발가락들을 모두 절단해야만 했고 5급 장애인증을 받았는데 몇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아물지 않은 상처에서 피가 흐른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의 상처와 그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인간은 정말 대단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엄청난 고난의 세월을 견디며 살아남은 우리 탈북자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귀중한 존재이며 그들의 가슴 속에는 아직 말 못할 마음의 상처와 육체적 상처가 남아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두 다리의 통증으로 인해 하루도 약을 먹지 않고서는 잠을 잘 수 없다고 하면서도 본인의 아픔보다도 고향에서 고통을 겪고 있을 자식을 생각하면 잠을 잘 수도 없고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안 된다고 했습니다.
금순이는 이미 위암 진단으로 위암 수술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한테도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그는 정말 악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항상 밝고 명랑한 모습으로 웃으며 당당하고 그리고 열심히 노력하며 살고 있는 그의 강한 모습과 고향에 있는 큰 딸과 사위와 손녀에게 매달 용돈을 보내 주고 있는 강한 엄마의 모습에서 새로운 힘을 얻게 됐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기의 인생 전부를 김정일이 앗아 갔다고 하면서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하고 죽은 남편과 사랑하는 자식들을 위해 오늘날 살아야 할 이유가 생기게 됐다고 하면서 오늘도 자신의 가족처럼 억울하게 숨진 북한의 모든 주민들을 위해 김정일 정권의 반인륜적 행위를 온 세상에 폭로하기 위해 기자 자격증을 따게 됐고 어느 작은 언론 단체에서 글을 쓰고 있다고 했습니다.
북한 당국과 김정일 독재 정권으로 인해 오늘도 울타리 없는 정치범 수용소에서 굶주림과 배고픔에 허덕이고 있는 2300만 주민들과 이산가족의 비극 같은 현실은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그리고 금순이도 저도, 저희와 같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다시는 없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오늘도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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