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초복 날이었습니다. 이곳 한국에서는 초복 중복 말복이면 꼭 찾아 먹는 음식이 있습니다. 보신탕 장어 등 많은 음식이 있지만도 흔하게 먹는 음식은 삼계탕이랍니다. 삼계탕에도 그냥 황계나 대추 찹쌀을 넣은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일일이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갖가지 삼계탕이 있습니다.
저녁 퇴근길 지점장님은 직원들에게 포장이 된 삼계탕을 선물했습니다. 영문을 모른 저는 포장된 삼계탕이 들어 있는 박스를 받아 든 채 조금은 놀랐지만도 이내 초복이라는 것을 알았고 고맙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네요. 남편과 함께 한 사무실에서 근무 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 보다 한 박스가 더 많았거든요,
삼계탕이 들어있는 박스를 손에 들고 집으로 오는 퇴근길 저녁은 삼계탕을 끓여 먹을 생각을 하니 어느새 발걸음은 빨라지고 가벼워졌습니다. 이곳 남한에서는 삼계탕이라고 하지만 내 고향에서는 닭곰이라고 하거든요. 닭곰을 자주 먹을 수가 없는 북한 주민이라면 누구나 그러 하듯이 저에게도 유별나게 닭곰에 대한 사연이 많습니다.
어린 시절 어느 여름이었습니다. 에어컨이란 말조차 모르고 선풍기라는 것도 잘 모르던 아주 어린 시절 어느 여름 방학이었습니다. 방학 숙제를 마친 저는 친구들과 함께 가까운 학교 수영장으로 갔습니다. 장마철이라 수영장에는 여느 때보다 물이 조금 많았습니다. 생각 없이 깊은 수영장으로 첨벙 뛰어 들었습니다.
순간 물 깊이가 한 길 넘었고 점점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아무리 소리를 쳐도 들어 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옆에서 함께 수영하던 중학교 언니들이 저희를 구원해 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 이곳 한국에도 없을 것이지만 너무 놀란 탓으로 며칠 자리에 누워 앓았거든요.
식구들이 모두 잠든 깊은 밤 어머님은 조용히 그리고 작은 소리로 저를 깨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저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황계와 밤을 넣고 금방 끓여 놓은 닭곰이 제 앞에 놓여 있었거든요. 코로 솔솔 들어오는 구수한 닭곰 냄새를 맡으며 다시 한 번 두 손으로 두 눈을 비볐습니다.
지금 생각 해 보면 부모님에게는 조금 미안하기도 합니다만 어머님이 뜯어주는 닭곰 한 마리를 앉은 자리에서 말 한마디 없이 다 먹었거든요. 그 이후 결혼해 첫 아기 출산 이후 시어머님이 황계를 넣고 닭곰 한 마리를 해 주었습니다. 밥상에서 닭곰을 먹으려는 순간 닭곰이 먹고 싶다고 보채는 참새 같은 시누이에게 양보했고 그 이후 아쉬운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산후 기침을 심하게 앓았고 오랜 시간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어 생 계란을 꿀에 타 먹기도 하고 또 파 뿌리를 참기름에 끓여 먹어도 기침은 좀처럼 낳아지지 않았던 서글픈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겨울이면 부엌바닥에서 닭을 길러 4월이면 닭곰을 만들어 식탁에 올렸습니다.
이곳남한에서는 언제나 쉽게 먹을 수 있는 닭곰이지만 내 고향 북한에서는 1년에 한 번 겨우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입니다. 북한에도 소복 중복 말복이 있습니다. 내 고향 사람들이 복날 음식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는 단고기국, 오리곰, 추어탕, 장어탕이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닙니다.
이 곳 남한에서는 삼복더위 복날에만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흔히 먹을 수 있는 삼계탕을 먹으면서도 지나간 고향에서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네요.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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