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저는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산성, 상당 산성을 다녀왔습니다. 상당 산성은 청주시와 청원군의 경계를 이루는 492m의 둘레를 싸고 있는 산성으로 보은의 삼년산성과 함께 충북도를 대표하는 산성으로 꼽힌다고 합니다. 청원군의 북일면과 남성면의 경계를 이루는 삼각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적 212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지형학적으로는 속리산 천황봉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내려온 한남 금북정맥의 산줄기에 속해 있으며 이 산줄기는 우암산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며 특히 우리나라는 산성의 나라라고 할 만큼 산성이 많다고 합니다. 산성의 전체 둘레는 약 4.4Km이며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석재로 수직에 가까운 성벽을 구축하고 그 안쪽은 토사로 쌓아 올린 내탁공법으로 축조하였으며 높이는 4.7m입니다.
옛 성벽이 잘 남아 있는 서쪽과 동쪽의 성 높이는 3~4m 정도 됩니다. 청주시 동단부의 높은 산록에 위치하고 있어 성에 오르면 서쪽으로 청주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 볼 수가 있어 서쪽지역의 방어를 위해 쌓은 성임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상당 산성이라는 명칭은 백제 때 청주목을 상당현이라 부르던 것에서 유래한 듯하며, 이때 이곳에 이미 토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이 된다고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로 산성 남문 밖에서 사량부라는 신라 6부의 하나가 적힌 기와가 발견되어 통일신라 때 이곳에 관리와 군사가 주둔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함께 간 교수님은 말합니다.
그리고 숙종 때 축성 기록에 상당기지 개석축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상당 산성은 개척 이후 조선시대까지 여러 차례 수축 개축을 거치며 청주의 보루 구실을 해 왔으며, 원래 그 자리에 백제시대부터 토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이 되고 있으며 지금 현재의 성벽은 1592년 임진왜란 때 일부 수축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 후 1716년 숙종 때 석성으로 개축 되었다고 성문무사석의 명문에 밝혀져 있다고 합니다.
성벽은 화강암을 사각형으로 다듬어 쌓았는데 현재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그때의 우리 선조들의 아주 세밀하고 꼼꼼한 재간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해설 강사님이 한창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가운데 저는 손전화기에 많은 사진을 담았습니다.
성벽을 내려다보는 순간 아주 큰 잣나무에 달린 잣을 보고 나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를 질러 많은 사람들이 시선을 끌기도 했습니다. 잣은 나뭇가지 맨 끝에 달리거든요. 그런데 얼마나 큰 잣이었는지 오붓한 세쌍둥이가 달려 있었는데 그만 나뭇가지가 다 휠 정도였습니다. 잣나무와 삼송 나무가 많아 맑은 공기로 인해 오는 길에 차멀미로 인해 아픈 머리가 개운해지기도 했습니다.
친구들은 제 모습을 보면서 이제야 살아났다고 놀려 주기도 합니다만 해설 강사님은 산만한 주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열심히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성안에는 동장대 서장대의 터가 남아 있으며 동남쪽에는 숙구가 남아 있으나 현재는 그 위치에 저수지가 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충청도 병마절도사 영으로서 국방의 요충이었던 유서 깊은 산성이며 오목한 분지를 둘러싼 포곡식 산성으로 한 마을이 들러서기에 충분한 공간을 지니고 있었다고 합니다. 1996년에 이 성내에는 50여 가구가 살고 있었으며 현재 한옥마을 자리는 옛 지도에는 초옥의 민가가 있던 곳이라고 합니다.
서쪽으로는 시의 남부와 북부 및 미호천평야와 증평평야까지 한눈에 들어오고 청주 시내에서 산성을 찾아 가는 도로는 봄날이면 양쪽으로 벚꽃이 아름답고 계절마다 산성 주변을 물들이는 야생화와 깊은 숲은 자연 탐방지로도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합니다. 약수터로 이동하면서 저는 내 고향 북한의 모란봉에도 산성이 있고 을지문덕 장군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아주 큰 산성이 있는데, 왜 북한 당국은 주민들에게 답사할 권한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습니다. 하기에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에 대한 왜곡된 역사학은 배웠어도 옛 선조들에 대한 역사학에 대해서는 너무도 미약합니다.
다음으로 답사대는 초정 약수터를 찾았습니다. 초정리에 있는 이 약수터는 세종대왕이 치료하던 곳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초정이라는 지명은 후추처럼 톡 쏘는 물이 나오는 우물이라는 뜻에서 유래 하였다고 합니다. 동국여지승람에 초수는 고을동쪽 39리에 있는데 그 맛이 후추 같으면서 차기 때문에 그 물에 목욕을 하면 병이 낫는다고 하여 세종과 세조가 일찍이 이곳에 행차하였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세종대왕이 이곳에서 117일 동안 머물면서 눈병을 고쳤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초정약수는 고혈압, 위장병, 당뇨병, 눈병, 피부병 등의 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합니다.
초정약수가 이렇듯 효험이 탁월한 것은 지하 100m의 석회암층에서 솟아오르는 무균단순탄산천으로 물속에 포함된 다량의 라듐성분 때문이라고 합니다. 초정리 광천수는 매콤하고 차가운 천연탄산수가 용출하는 영천으로 일찍부터 전국에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물맛이 좋고 위장병과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 하여 음력 8월이 되면 물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줄을 선다고 합니다.
저는 초정약수 물을 마시기도 하고 가지고 간 물병에 한가득 담아 오기도 했습니다만 북한 같으면 이런 좋은 약수가 나오는 곳이면 무조건 중앙당 간부들이 사용하는 휴양소를 건설하고 김정은이 호화생활 할 수 있도록 별장을 건설하거든요. 묘향산에도 좋은 약수가 있었고 평양시중화군 채송리에도 좋은 약수가 있습니다.
묘향산 약수터에는 김일성이 별장을 지었고 중화군 채송리 약수터에는 중앙당 간부들의 휴양소를 건설했습니다. 북한당국은 이름 있는 좋은 약수터라면 또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이라면 저들만을 위한 곳으로 지정해 놓고 일반 주민들은 금지구역으로 만들어 얼씬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