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은 제가 세상에 태어나 60번째로 맞게 되는 생일이었습니다. 지나간 세월이 야속하다는 말뜻을 인제야 알 것 같네요. 한일 없이 흘러간 세월과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을 자주 해보게 됩니다. 지난 인생에 내 자신이 제일 큰일을 한 것은 이곳 대한민국으로 사랑하는 내 가족과 함께 온 것입니다. 뒤돌아보면 볼수록 이것 밖에는 제 기억에 크게 기억할만한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주일이라 아침 미사 시간을 통해 하늘나라에 계시는 부모님에게 먼저 이 딸을 낳아 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의 봉헌을 드렸습니다. 조금 늦은 시간이었지만 자녀들이 차려준 밥상에 앉았습니다. 정성들여 끓여준 미역국을 보는 순간 남다르게 미역을 좋아하시던 어머님 생각이 문뜩 났습니다. 여름이면 시원하고 상큼한 미역냉국과 미역무침 그리고 돼지 고깃국에 구멍이 숭숭 난 곤포국도 그렇게 좋아하셨거든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손자 녀석들이 생일축하 노래를 큰 목소리로 부르고는 소원을 빌어보라고 재촉합니다. 지난날도 그러했지만 앞으로도 사랑하는 내 가족의 행복과 건강 그리고 새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습니다. 아들딸 사위 그리고 며느리들의 선물과 여행비용이 들어 있는 두툼한 봉투를 받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하늘도 이런 내 마음을 헤아려 주듯 갑자기 밖에서는 소낙비가 쏟아집니다. 행복해하는 내 가족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지나간 시간들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어렵고 힘든 시절이었던 지난 세월. 여러 번의 죽을 고비를 겪으면서 이곳으로 오지 않으면 안 되는 정말 어려운 선택으로 말도 통하지 않은 여러 나라 국경을 거쳐 왔던 힘든 과정, 그 추억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갑자기 고향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이곳 한국에서는 60이면 한창 청춘이라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60하면 이제부터 인생이 시작이라고들 쉽게 말합니다만 사실 북한에서는 환갑잔치를 크게 하거든요. 극심한 생활고를 겪다 보니 칠순 잔치, 팔순 잔치를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저는 시어머님과 친정아버님 어머님 환갑잔치를 고향에서 했거든요. 그야말로 동네에서도 소문이 날 정도로 아주 크게 했었습니다. 얼마나 환갑잔치를 크게 했으면 비사회주의 비판까지 받을 정도였습니다. 친정아버님 환갑을 너무 크게 했다고 반탐오 낭비 현상이라며 비사회주의 검열에 걸려 사상투쟁의 무대에 올라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부모님 환갑잔치조차 마음대로 편하게 할 수 없었던 지난날 생각과 함께 벌써 내 자신이 환갑 나이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들 며느리가 술잔을 채워 주며 ‘어머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라고 말합니다.
지난날의 아픈 기억으로 조금 쓸쓸했던 제 마음을 달래보는 의미에서 술잔을 주며 건강하라는 말은 수박과 다를 바 없다고 하자 온 식구들이 크게 웃었습니다. 정말 저에게는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내 가족이 없었다면 오늘날 이런 행복과 즐거움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봅니다.
부모 형제들을 뒤에 남기고 목숨을 걸고 오지 않으면 안 되는 그 어려운 시간들. 친척 친구 한명 없는 이곳에 정착해 사는 동안 무슨 일들이 없었겠는가마는 지나간 세월 소금에 절고 간장에 절고 쓴맛 단맛 다 겪으며 살아온 그 시간들, 아마 우리 가족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내가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처음 이곳 낯선 곳에 세 자녀와 함께 보금자리를 잡았습니다만 지금은 남부럽지 않을 만큼 대 가족이 되었습니다. 든든한 큰딸과 아들, 사위, 며느리와 눈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을 귀염둥이 손자들 5명의 새가족이 생겨 그야말로 대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곳 대한민국에서 나만큼 큰 부자도 없을 것 같네요. 돈과 땅이 있어야 부자가 아니고 또 재산이 많아서가 부자가 아니거든요. 그 사람의 행복 지수는 얼마만큼의 생각과 마음가짐을 가지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낙비가 멎자 해가 쨍하니 말할 수 없이 뜨겁네요. 정말 좋은 날씨였습니다.
우리 가족은 잘 익고 제일 큰 수박 3개와 간단한 음료수를 구입해 차에 실었습니다. 집에서 제일 가까운 연천군에 있는 재연 폭포로 출발했습니다. 후덥지근한 마음을 조금 식히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침 비가 온 뒤라 재연 폭포물은 지난 때보다 많이 떨어져 그 웅장했습니다. 20m의 높이에서 쏟아지는 물의 굉음은 그야말로 화보의 한 장면과도 같았습니다. 주변에는 아름다운 오색 무지개가 비쳐 있었습니다.
손자 녀석들은 무지개를 보며 좋아라 손뼉을 쳤습니다. 4살짜리 손녀는 높은 계단을 보고 처음에는 조금 무서워 놀라기도 했습니다만 무지개를 보고는 좋아라. 빨리 내려 가겠다고 합니다. 저는 쏟아 져 내리는 웅장한 폭포수의 기를 받아 또 한 번 소원을 빌었습니다.
폭포에서 조금 떨어져 흐르는 계곡물에 수박을 담가 놓았습니다. 차디찬 수박을 쪼개어 입에 넣는 순간 수박의 단맛과 함께 시원한 맛은 정말 내 인생에 처음으로 먹어 보며 느껴 보는 별미였습니다. 아들은 가지고 간 카메라로 사진을 연신 찍었습니다. 계곡에는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들도 있었습니다.
손자녀석들은 하나 둘 바짓가랑이를 걷고 물속으로 발을 담급니다. 손자들과 함께 저도 발을 물속에 담갔습니다. 한 여름 더위가 싹 가셨습니다. 우리 식구들은 시원한 계곡에서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늦은 점심 겸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요즘 한창 집밥으로 유명한 백종원의 본가음식점으로 갔습니다. 대 가족이라 제일 큰방 한가득 한자리에 모여 앉았습니다.
올해 61번째 맞는 생일 파티 역시 내 인생에 잊을 수 없는 행복한 하루가 아니었나 하고 생각하면서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