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 동안 아침 출근길이나 저녁 퇴근길에 전철이나 버스 그리고 회사에서 잠이 모자라 졸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동료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예년에 없는 찜통더위 때문에 잠을 못 이뤄 피곤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도 대다수가 올림픽 경기에 참가한 우리 선수들을 응원 하느라 밤잠을 설쳤기 때문이랍니다. 회사 동료들 뿐 만 아니라 음식점이나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가면 “금메달 11개는 따야 하는데 오늘은 몇 개나 더 땄을까?” 하고 궁금해 하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온 국민들의 관심과 응원 속에서 진행되었던 리우 올림픽 경기도 이제 막을 내렸습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우리 한국은 많은 국민들의 관심 속에서 금메달 9개 은메달 3개 동메달 9개를 따내 8위를 차지함으로써 스포츠 선진국이라는 승리의 기쁨을 가져왔습니다.
저도 이번 올림픽 경기에서 많은 선수들의 목에 걸리는 금메달과 함께 애국가의 음악 소리에 맞추어 태극기가 하늘 높이 올라가는 장엄한 모습에서 마음이 짠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축구선수들의 8강 진출과 더불어 양궁선수들과 권총 사격경기에서 1등을 해 금메달을 목에 거는 우리 선수들이 모습에서 정말 역시나, 대단하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 나왔거든요.
이곳 한국에 온 제 조카 역시 사격 선수였기 때문에 조금 남다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제 조카는 10살 전에 이미 국방체육단에서 사격수로 이름이 있었거든요, 16살에 저격수로 선발 되어 전연 사령부인 5군단 여자 저격수로 뽑혀 어린 나이로 군복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번 올림픽 경기를 통해 제일 감명 깊게 본 것은 우리 선수와 북한 선수가 함께 기념사진도 찍고 서로 말도 주고받는 모습에서 이제는 북한 선수들도 많이 변해 가고 있다는 모습을 찾아보았습니다.
고향에 있을 때 제 주위에는 압록강 체육단의 많은 지도원들이 있었거든요. 그중에 한 지도원은 남한 감독으로부터 두 번의 안부를 받았다고해 어느 날 갑자기 정치부로 불려갔으며 몇 십 년을 체육계에서 늙어온 그는 끝내 군복을 벗고 광복거리 공훈 체육인 아파트의 집도 내놓지 않으면 안 되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체육으로 한평생 늙어온 그는 소위 김정일 명함 시계와 김일성의 명함시계를 비롯한 많은 배려를 받고 살아온 공훈 체육인이었지만 결국 인생의 마지막 장식은 정치적 문제의 올가미로 인해 군복을 벗고 집까지 빼앗겨 몰골 없고 볼 골 없는 인생의 종지부를 찍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이런 모습이 국가 선수들과 지도원들의 현실이었거든요.
이곳 한국 선수들은 올림픽을 비롯한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면 인터뷰를 통해 맨 처음으로 인사 하는 것이 본인을 낳아준 부모님과 감독님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합니다. 남과 북의 꼭 같은 국가 선수들이지만 북한 선수들은 금메달을 따면 장군님 덕이라고 장군님 품으로 달려가고 싶다고 합니다. 과연 그 말이 맘속으로부터 우러러 나오는 진심인지. 과연 내가 50년 반평생을 살아온 곳이 그런 곳이라고 생각 하면 할수록 이해가 안 됩니다. 비록 저 역시 50년을 그런 방식으로 살지 않으면 안 되었지만 말입니다. 아직도 내 고향 주민들은 두 얼굴을 가지고 이중 성격을 가지고 살아가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마음이 짠해 옵니다.
105리 마라톤 선수로 4,25체육단에서 이름을 날리던 내 동생도 압록강체육단에서 축구 선수로 이름을 날리던 시동생도, 이미 어린 나이에 벌써 사격 선수로 이름을 날리던 조카도 북한이 아니라 이곳 한국에서 태어나 영예로운 대한민국 국가 선수였다면 특별했던 그 재능과 기술로 마음껏 자유롭게 희망과 꿈을 이루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이번 올림픽 경기를 보면서 새삼 해 보았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