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북한의 수재민 생각에 가슴 아파

지난달 촬영된 평안남도 안주시의 침수피해 현장 모습.
지난달 촬영된 평안남도 안주시의 침수피해 현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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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이라 며칠째 비가 멎지 않고 많이 내리고 있습니다. 텔레비전 뉴스를 볼 때마다, 또 인터넷을 통해 기사들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아플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갑자기 내리는 폭우로 인해 한강이 불어나면서 자가용 승용차가 물에 잠겨 있는 모습과 운동이나 등산을 하던 사람들이 갑작스레 불어난 강물에 발목이 잡혀 119구조대원들의 힘겨운 노력 끝에 구조되는 모습을 볼 때도 그렇고요. 또 시골길이 무너지고 한창 꽃이 피고 익어 가던 벼이삭들이 물살에 씻겨 가거나 강냉이 밭들이 물살에 씻겨 내려가 없어지는 모습, 단층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이 집에 들어오는 물을 퍼내느라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습, 군인들과 주민들이 중장비를 총동원하여 수재민들을 돕는 모습도 가슴 아픕니다.

이렇게 텔레비전과 신문 언론과 뉴스에서는 갑작스러운 폭우로 하루아침에 집이 사라지거나 흙더미로 뒤덮여 산사태로 막힌 도로를 중장비로 도로 정리를 하는 모습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 뉴스에서도 저는 할머니가 방안에서 샘솟듯 흘러나오는 물을 연속 퍼내는 장면을 텔레비전에서 보았습니다. 순간 저는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12살 나던 여름이었습니다. 인민학교 4학년이었거든요. 그때도 바로 지금과 같은 8월이라 방학이었고 장마철이었습니다. 아직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잊을 수 없는 기억은 장맛비로 인해 제가 살던 집 부엌에 물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집뿐만 아니라 우리 동네 어느 집이나 똑같았습니다.

남편들이 부대로 출근하면 하루 종일 아낙네들은 부엌 아궁이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물을 푸는 게 일이었습니다. 방학이라 저는 동생들과 함께 어머니를 도와 소랭이를 들고 물을 퍼내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아궁이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물을 보게 됐습니다.

얼마나 물이 맑은지 공동 수도에서 흘러나오는 물보다도 더 맑고 깨끗했습니다. 퍼내면 퍼낸 만큼 또 가득 찼습니다. 어린 철부지 나이라 저는 좋은 수영장이 생겼다고 동생과 함께 부엌에서 수영복을 입고 물놀이도 하고 목욕도 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자 저는 고열로 앓아눕게 됐습니다.

오후 2시만 되면 온몸에 고열이 나고 헛소리를 하곤 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한 번 병원에 가려면 2시간 정도 걸어가야 합니다. 작은 딸딸이에 실려 병원에 갔습니다. 학질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약도 지어다 먹었지만 쉽게 낫지 않았고 한여름 내내 그 병으로 고생을 했습니다.

당시 평양시에서는 러시아에서 수입해 온 흰 밀가루를 공급했습니다. 정말 눈이 부실 정도로 흰 밀가루였는데 음식을 만들어 놓으면 약간 파란 색이 돌면서 무슨 냄새가 났습니다. 어머니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밖에 만들어 놓은 가마 위에 할아버지가 만들어 준 분틀로 자주 밀가루국수를 눌러 먹곤 했었습니다.

어린 철부지인 저는 고열로 헛소리를 하면서도 냄새가 난다면서 그 밀가루 국수를 먹지 않겠다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TV를 보던 저는 갑자기 그 시절이 생각이 나 화장대에 놓여 있는 부모님 사진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어머님은 저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고 있었습니다. 순간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인해 조금 쓸쓸한 마음으로 부모님 사진을 손에 들려고 하는 순간 밖에서는 불이 번쩍했습니다. 번개였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비가 많이 내려 주민들이 많은 피해를 보고 있다는 뉴스가 흘러 나왔습니다.

북한에도 이번에 300mm의 이상 폭우가 쏟아져 내렸는데 그중 개성시에는 309mm로 가장 많은 강우량을 기록했고 황해북도 장풍군은 211mm, 강원도는 130~150mm의 큰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고 합니다.

또한 이번 폭우로 인해 560여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고 144명이 다쳤으며 침수도 21만 2,000여 건이 발생해 이재민이 많다고 합니다. 뉴스는 이렇게 나왔지만 사실은 이보다 더 많은 피해가 있으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워낙 북한의 산은 민둥산이라 비가 많이 내리면 바로 산사태로 이어지곤 합니다.

아무리 지방공사가 잘된 평양이라고 하지만 장맛비로 인해 항상 대동강 물이 불어나 제가 살던 동네는 물에 잠겨 있곤 했습니다. 인민반장이었던 저는 물에 잠겨 있는 동네를 지키느라 몇몇 세대주들과 함께 밤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던 기억도 납니다.

북한 주민들은 겨울에 땔감이 부족해 추위에 떨다 얼어 죽고, 그나마도 추위가 없어 조금 낫겠다하는 여름에는 장마철 큰 폭우에 휩쓸리거나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방법조차 연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죽든 말든 상관 않고 자기 권력과 안락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죠.

오늘도 없어진 생활의 빈 터전 위에 하늘을 지붕 삼아 넋을 놓고 목 놓아 울고 있을 북한 주민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