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팥빵에 담긴 가슴 아픈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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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굽는 마을’이라는 간판을 보기만 해도 구수한 냄새가 솔솔 코를 찌르는 듯합니다. 지난 주말 손자들과 함께 늦은 오후 심심한 입을 달래보기도 할 겸 동네 주변 시가지로 외출을 했습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이 녀석들은 구수한 냄새가 나는 빵 가게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승강이질을 하며 달려 들어갑니다.

저 역시 빠른 동작으로 따라 들어갔습니다. 가게사장님은 환한 웃음을 띠며 안녕 '방가방가' 하며 손을 들어 반겨 줍니다. 사실 손자 녀석들과 함께 자주 찾아가는 빵가게거든요. 저마다 입맛도 다르다 보니 각기 찾는 빵도 달랐습니다. 4살짜리 손녀애가 뜬금없이 속이 꽉 찬 단팥빵을 찾습니다.

순간 저는 단호하게 단팥빵만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손녀애가 울음을 터뜨립니다. 사장님은 따끈따끈하고 반질반질 빛이 나는 그야말로 금방 구운 단팥빵을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사실 저에게는 오래전부터 단팥빵에 대한 안 좋은 기억, 가슴 아픈 사정이 있거든요. 중국에서 강제 북송되어 북한으로 끌려가 아버님 생일 제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함북도 청진 집결소에서 평양으로 이송되던 도중 탈출해 친척 집에 숨어 지내다 보니 제대로 된 생일 제를 지내지 못했습니다. 그냥 장마당에서 팥 속을 넣은 앙꼬빵 3개와 배 한 알, 사과 한 알 아버님이 평소 좋아하시던 생오이 1개가 전부였습니다.

그 이후 이곳 한국에 처음 와서 빵가게에 들어갔었는데 팥을 꽉 채운 그야말로 단팥빵을 보는 순간 슬픈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 이후 단팥빵을 먹으려면 왜인지 부모님 생각과 함께 괜스레 목이 꽉 메여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부터인가 저는 단팥빵에 대한 슬픈 기억으로 인해 제일 좋아했던 단팥빵이었지만 잊고 살아 왔거든요.

잠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평상시에는 단팥빵을 쳐다보지도 않던 손녀는 어느새 훌쩍 손에 든 단팥빵을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이것저것 애들이 좋아하는 빵을 구입해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마트에 들렸습니다.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지만 스스럼없이 장바구니를 하나씩 손에 듭니다. 손자녀석은 큰 수박을 한 개 장바구니에 담았고 큰 손녀는 복숭아를 제일 작은 손녀 애는 자두를, 역시 각자 달랐습니다. 거기에 과자 봉지 한 개씩 보충을 하고는 계산대에 가 순서대로 줄을 섭니다.

아이스크림도 한 개씩 손에 들고는 이 할미에게 빨리 계산하라고 졸라 댑니다. 마트에서 나온 손자들은 또 마을 알뜰 시장에 들러 꼬부랑 감자튀김을 한 개씩 손에 들고 집으로 들어 왔습니다. 작은 손의 엄지손가락을 내 보이며 바로 이 맛이거든 하며 능청을 부리기도 합니다.

응석이 제일 많았던 손녀애도 언니나 오빠를 따라 엄지손가락을 쳐들고 쫑알쫑알 댑니다만 그야말로 눈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을 개구쟁이 손자손녀들을 보며 지나간 추억을 해 봅니다.

어느 누구나 부모라면 심정은 똑같습니다만 다섯 손가락 중 어느 한 손가락을 깨물어 봐도 아프지 않을 손가락이 없듯이 자식 셋 중 저에게는 귀하지 않은 자식이 없습니다. 셋 모두가 내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하고 소중한 자식들입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어렸던 고향에서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흰쌀밥 한 그릇 배불리 먹이고 싶은 것이 최고의 소원이었지만 그 작은 소원도 풀지 못한 응어리가 아직도 제 가슴속 깊이 묻혀 있거든요.

이런 아픈 응어리로 인해 저는 우리 손자 녀석들에게만은 최고의 좋은 외할미가 되는 것이 소원입니다. 외손자들을 봐 주려면 파밭 김매라는 속담도 있습니다만 사실 저는 비록 외손자들이지만 손자들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아까울 것이 하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하늘의 별이라도 무조건 따줘야 한다는 심정입니다.

하기에 자식만이 아니라 저에게는 손자들 역시 어느 하나 귀하지 않은 녀석이 없습니다. 뭐 하나 해 주어도 똑같이 해 주고 둘을 해 주어도 똑같이 해주고 싶거든요. 지난달에는 손녀 애의 공주방을 꾸며 주었는데 오늘은 손자녀석이 왕자 방을 꾸며 달라고 합니다. 저에게는 손자들이 그야말로 공주, 왕자보다도 더 귀하고 소중한 아이들입니다.

오늘 나에게 이 귀염둥이들이 있는 것도 부모님이 있고 또 부모님이 이 세상에 나를 낳아 주고 키워 주셨기에 오늘의 이 기쁨 이 행복 이 즐거움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과 함께 부모님 생일제사에 단팥빵 3개 밖에 올려 주지 못한 자책감으로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먹을거리가 끝도 셀 수 없이 많은 이곳에서는 이해할 수도 없지만 단팥빵 하나에도 슬픔과 아픔이 배어있는 것은 비록 저에게만 있는 슬픈 추억은 아닐 것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아픈 마음을 잠깐 달래고 있는데 손자 애들이 수박을 먹겠다고 조릅니다. 제일 큰 수박 한 조각을 할미에게 쥐어주는 손자 녀석의 궁둥이를 두들겨 주었더니 경찰서에 신고한다는 손자 녀석의 엉뚱한 말에 우리 가족은 또 한 번 크게 웃었습니다.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바라만 봐도 배가 부릅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