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 남겨진 아들의 알콜중독

사진은 서울 대형마트의 막걸리 판매대.
사진은 서울 대형마트의 막걸리 판매대.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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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높이 흰 구름이 뭉게뭉게 떠있고 코스모스 꽃이 활짝 핀 모습을 보니 벌써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는 기분이 드네요. 좋으면서도 쓸쓸한 가을. 누구나 한번쯤은 여행을 떠나 보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되는 아름다운 계절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한 친구에게서 녹두전에 막걸리 한 잔 하고 싶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역시 해 놓은 일 없이 세월 따라 먹어 가는 나이는 어쩔 수 없네” 라는 답장과 함께 약속을 잡았습니다. 지난 주말 친구들과 함께 종로 ‘먹자골목’으로 갔습니다. 비록 고향 맛은 아니지만 녹두전과 막걸리를 시켜 식탁 두 개를 붙여 놓고 빙 둘러 앉았습니다. 오랜만에 모인 자리라 친구들은 손자 자랑, 자식 자랑이 한창이였습니다.

고향이 회령이라지만 해주에서 군인가족으로 오랜 세월을 보낸 친구는 이제 갓 태어난 100일도 안된 손녀 자랑이 한창입니다. 개성이 고향인 친구는 서른이 넘은 아들이 장가 갈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면서 속이 번져진다고 하네요. 옆에서 말없이 조용히 막걸리 잔을 비우던 친구의 한숨 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무슨 근심걱정이 있는가고 물었습니다. 또 한 번 큰 한숨을 길게 쉬더니 타는 속이 아니라 아주 숯검댕이가 되었다고 말을 시작합니다. 3년 전 아들을 이곳 한국으로 데려왔는데 알콜중독자가 되어있어 한국의 중독자 치료 전문병원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이곳 한국에 온지 10년이 된 그 친구는 북한을 탈북할 때 두고 온 아들은 군복무 중이었거든요.

고향에 두고 온 아들과 남편 때문에 어느 하루도 편안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옆에서 보는 우리도 때로는 안쓰러울 때가 많았습니다. 어느 날엔가는 아들을 이곳 한국으로 데려 왔다고 기뻐했습니다. 허나 기쁨은 얼마 못 가고 생각지도 못했던 상처와 아픔이 왔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군복무 10년을 마치고 고향이라고 찾아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매일 시도 때도 없이 보위부와 안전원들의 감시가 심했다고 합니다. 그 정신적 스트레스를 이겨 내기 위해 술 없이는 잠을 잘 수가 없었고 술 없이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고 하네요.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위해 술을 마시다 보니 알콜중독증에 걸렸다고 합니다.

북한을 탈출해 이곳 한국에 도착하는 동안은 술을 마시지 않아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들과 함께 한 번 두 번 술을 마시다 보니 알코올중독 증상이 다시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 친구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해지기도 합니다.

남의 일 같지가 않았고 자녀를 가진 부모들이라 함께 마음을 아파합니다. 조금 분위기를 바꾸어 막걸리 잔을 높이 들고 건배를 권했습니다. 북한에서 벌어진 일들은 들으면 들을수록 말도 안 될 뿐만 아니라 말 같지 않은 일들뿐이니 괜히 지나간 아픈 추억이 되살아났습니다.

영화나 소설책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라고 하지만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이러한 슬픔과 아픔은 영화의 화면과 소설책이나 잡지에서도 볼 수 없는 비극이거든요. 오늘도 북한의 고향에 있는 내 가족과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현실입니다. 서울의 중심인 종로거리에서 녹두전과 막걸리 한잔과 함께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지나간 일들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