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과 스스럼없는 남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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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화면에서 박근혜 대통령께서 대구 주민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시장에 들려 상인들의 손을 잡아 주기도 하고 상품을 구입하는 모습과 상인들뿐만 아니라 대구 주민들의 환영을 받고 또 답례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북한에서는 저런 모습이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사실 북한 텔레비전에서도 김정은이 군이나 건설장이든 농촌이든 항상 인민들과 함께 한다는 모습이 자주 나옵니다. 하지만 그 장면은 하나의 선전 매체가 만들어 낸 쇼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미 김정은이 현지 지도한다는 내용이 제기되면 하늘과 땅 즉 다시 말해 열차로 간다면 철길 주변 승용차로 간다면 도로 주변을 며칠 전부터 검색을 진행합니다.

그 주변에는 인원 유동을 통제할 뿐만 아니라 당일에는 개미 한 마리 얼씬 못하게 철저한 경호와 함께 며칠 전부터 접견자를 선출해 사상교육을 시키고 많은 갖가지 상품을 사전에 준비해 진열을 합니다. 고향이 평양인 저는 나름대로 많은 1호 행사에 참가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요즘 평양 시민들은 10월에 진행되는 무력시위 행사 준비를 위한 훈련을 많이 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미 경험을 해본 저로서는 평양 시민들이 겪고 있을 어려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무력시위 단 하루를 위해 이미 몇 개월 전부터 평양시민들은 훈련을 합니다.

시민들은 모내기 전투와 김매기 전투에 참가하면서도 저녁마다 광장에 모여 무력시위 훈련을 합니다. 시민들은 그 속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 힘들고 어려움을 자유롭게 표현도 할 수가 없습니다.

무력시위 하루를 위해 수많은 군인들과 시민들이 겪는 어려움과 고달픔, 그리고 그 후유증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주변 친구들에게 조차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 바로 북한 사회입니다. 행사 훈련 전 과정에는 부모가 사망이 되어도 행사가 끝날 때까지는 장례식에도 참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당일 날을 기준으로 일주일을 특별 경비 주간으로 임하고 장마당 운영도 못하게 강한 통제를 실시합니다.

행사가 10시부터 시작이라고 해도 새벽 5시부터 행사 참가자들은 대열을 검열하고 김일성 광장 주변에 대기해야 하며 강하고 엄한 통제와 검열에 화장실도 마음대로 갈수 없습니다. 광장 주변이나 도로 주변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역시 사전에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원래 평양시에는 성분이 안 좋은 사람들은 거주할 수도 없지만 일선 도로주변에는 더더욱 사상 검증된 사람들로 구성이 되어 살고 있습니다. 물샐틈없이 이미 사전 준비를 하는 것이 바로 북한 당국입니다.

뿐만 아니라 행사 참가자들 속에도 보위원들을 스파이로 박아 놓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북한 주민들은 울타리 없는 감옥 아닌 감옥, 그 지독한 독재하에서 노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해 봅니다.

제가 군복무 시절 군 창건 날인 2.8절에 김일성이가 부대를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이런 명령을 이미 5개월 전부터 받았고 부대에 있는 각종 무기를 비롯한 부대 환경을 꾸리느라 말이 아니었지요. 하루하루 당일 날이 다가올수록 들뜬 생각에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행사일 한 주일 쯤 새 군복과 세면도구를 공급 받았습니다. 기다리던 설렘과 함께 8일 아침 꼭두새벽부터 우리는 새 군복을 입고 구두와 모표를 반짝반짝 닦고 또 닦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부대로 오던 김일성이 평양시 삼석 구역 고사포부대로 갔다는 청천 벽력같은 전달이 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리석은 일이었지만 김일성이 현지 지도한다는 비밀이 부대 주변 동네에 그만 누설되었다는 것입니다. 부대 주변 주민들은 벌써 벌판에 두엄을 다 뿌려 놓았습니다. 그분들의 생각은 이러 했습니다. 새해 농사 준비를 미리 빈틈없이 해 놓았다는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농민들의 착한 모습 그대로의 충성심이었거든요. 그런데 김정일은 비밀이 누설되었다는 구실과 조건을 별미 삼아 다른 부대로 차를 돌렸다고 합니다. 부대 지휘관들과 군인들은 아쉬움으로 땅을 치며 울었습니다.

부모의 핏줄 그대로 이어 받은 북한 김정은은 자기 이름 앞에 존칭어를 붙이지 않고 썼다고 또 김정은의 사진이 찍혀 있는 신문지에 철없는 아이가 낙서를 했다고, 초상화를 찢었다고 죽어서도 나올 수 없는 정치범 수용소로 하루아침에 온 가족을 보내버렸습니다.

단지 한국 사람을 만나 도움을 받았다는 죄, 굶어 죽기 싫어 자유를 찾아 이곳 한국으로 오다 체포되어 강제 북송된 사람들, 그냥 굶어 죽기 싫어서 살기 위해 한국행을 시도한 죄 밖에 없는데 죽음을 당해야 하는 수많은 우리 형제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자기 혈육도 믿지 못하는 정신분열증 사회이기에 지금도 북한에서는 우리들은 상상도 할 수 없고 생각할 수도 없고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 점의 꾸밈도 없이 국민들과 소통하는 박근혜 대통령. 하나 된 마음으로 대통령은 국민들을 믿고 국민은 대통령을 믿는 소통하는 자유 민주주의 체제가 얼마나 좋은지를 알게 된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또 진정한 대한민국 국민이 된 긍지와 자부심을 다시 한 번 갖게 되는 계기였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