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2만 6천 탈북자들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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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면 고향 생각으로 마음이 쓸쓸해집니다. 누구나 자기를 낳아준 부모님이 계시고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낸 정든 고향이 있습니다. 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해마다 추석이면 사랑하고 존경하는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을 찾곤 합니다. 하여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9월이 되면 추석 준비로 마음이 설레기도 합니다.

저 역시 나고 자란 고향이 있고 나를 낳아 키워준 존경하는 부모님과 어린 시절 때로는 싸우기도 하고 보글보글 볶으면서 함께 자란 사랑하는 형제들이 있습니다. 하기에 추석 명절이 되면 한국에서 저마다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 며칠 전 저는 꿈속에서 부모님을 보았습니다.

주름살이 많은 어머님의 손목을 잡고 있다가 꿈에서 깨어난 저는 마음속으로 추석이 임박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음날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떨다 꿈에서 부모님을 뵌 얘기를 하자 친구들 역시 꿈에 고향을 다녀온 사람도 있고, 또 꿈속에서나마 부모님 산소에 가서 한없이 울었다는 친구도 있었고, 또 한 친구는 군복을 입고 자동보총까지 메고 고향에 가서 부모님을 모시고 이곳 한국으로 오는 과정에 아쉽게 눈을 떴다고 합니다.

저는 만나는 친구들에게 추석 명절에는 무슨 특별한 계획이 있는 가고 묻곤 하는 것이 이제는 습관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번 추석에도 친구들은 부부동반, 혹은 가족끼리 경치 좋은 관광지를 간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추석이 되기도 전부터 미리 많은 사람들이 시골로, 도시로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을 찾는다고 들떠 있습니다. 시골에 계신 부모들은 자식들이 오면 한 짐, 두 짐 듬뿍 싸줄 손수 지으신 갖가지 농산물들을 준비하느라 분주하고, 또 시내에 있는 자식들은 부모님에게 드릴 용돈이 들어있는 두툼한 봉투와 보약 선물을 준비하느라 바쁩니다. 저 역시 추석이 되면 자녀들이 챙겨주는 용돈 받는 재미가 있어 참 행복합니다.

고향과 가족을 가까이에 두고도 갈 수 없는 우리 탈북자들은 명절 때마다 고향으로 달려가는 시민들을 한없이 부러워합니다. 대한민국 여자들이라면 누구나 대가족의 며느리 노릇을 톡톡히 하느라 명절 뒤끝에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고 합니다만 우리는 그것마저도 부럽다고 합니다.

저희집 역시 아들 회사에서 제주도 갈치선물을 집으로 보내주고 또 추석 특별 상여금도 넉넉히 받는다고 자랑입니다. 며느리와 딸들도 저에게 무슨 선물을 드렸으면 좋겠는가 물어왔지만 제가 돈이 더 좋다고 답변하는 바람에 또 한 번 웃음꽃이 폈습니다. 이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평생 잊을 수 없는 고향과 부모님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지나간 세월,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님께 언제 한 번 제대로 된 선물을 드렸나 기억이 아득하고, 또 용돈 한 번 듬뿍 드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짠했습니다. 명절이면 그저 우리 가정에 차례진 태평 술 한 병 아니면 인삼 술 한 병 달랑 드리곤 한 것이 전부인 것 같았습니다.

제가 내 자식을 찾아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다는 얘기를 듣고는 1년 열두 달 365일 항상 대문을 열어 놓고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다는 어머님, 부모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도 모시지 못한 이 불효는 꿈속에서 잠깐이나마 보인 부모님을 두고도 마음속으로만 추석이 가까워졌나보다, 혹은 설 명절이 가까워 오는가보다, 혹은 부모님 생일이 되었나보다 하는 생각이 전부입니다.

쌀독에서 인심이 난다고 부족한 것이 많고 어려운 생활고에 시달리던 북한에서는 잘 몰랐습니다. 나이 60을 바라보는 이제야 늦은 철이 들지 않았나 가끔 생각해 봅니다.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고 때로는 불효자식인 저를 지금 내 자식들이 알까 조금은 두렵습니다.

하지만 때늦은 감은 있으나 이제라도 알게 된 것도 바로 이곳 한국에서의 행복한 새 삶 덕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가면 불과 4시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이건만 저는 부모님 묘소가 있고 형제들이 있는 고향으로 갈 수 없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2만 6천 명이 되는 우리 탈북자들의 마음은 모두 저와 같으리라 봅니다.

오늘도 푸짐한 식탁에 빙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랑하는 내 가족을 보며 부모님의 색 바랜 사진을 앞에 놓고 그리움만 달랬습니다. 언제면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고맙고 존경하는 부모님 묘소를 찾아 살아생전에 좋아하시는 음식 가득 차려 놓고 그동안 하지 못한 효도를 할 수 있을까, 그날이 바로 내년 추석이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