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평양시내에 궤도 전차노선을 철수했다는 글을 보면서 평양시민들의 출퇴근길이 얼마나 어려울까 하는 생각을 새삼 해보았습니다. 궤도 전차는 평양시민들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평소에 많이 이용하던 교통수단이었거든요.
송신 만경대 노선에는 궤도 전차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버스가 두 대 연결된 노란색의 버스가 다니던 노선이었습니다. 이 노란색 버스를 없애고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어 궤도 전차가 처음 송신역부터 시작되어 만경대까지 가는 노선과 락랑거리에서 문수 거리까지 구간에 무궤도 전차가 생겼습니다.
한마디로 평양시 동평양 지구에는 지하철이 없어 대동강을 건너 출퇴근 하는 시민들의 교통수단을 위해 송신역에서 만경대까지의 구간에 무궤도 전차를 건설했고, 일반 주민들이 밀집되어 살고 있는 문수거리와 락랑 거리 구간에도 무궤도 전차가 만들어졌습니다. 평양시 궤도 전차 하면 저에게는 좋은 기억, 안 좋은 기억을 포함해서 참 많은 추억이 있습니다.
궤도 전차를 처음 건설할 때부터 많이 봐 왔고 또 건설동원에도 자주 참가했습니다만 궤도 전철을 많이 이용하기도 했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평양시 궤도 전철에 대한 추억이 많네요. 주말이면 아침 일찍부터 분주했습니다. 한참 곤히 잠들어 있는 애들을 깨워 첫 궤도 전차를 타고 문수원이나 창광원을 다녀오곤 했습니다.
남편 역시 송신 만경대 궤도 전차를 타고 출퇴근을 했는데 한여름이면 매일 저녁 퇴근길에 창백한 모습으로 들어오곤 했습니다. 사실 궤도전차 공사비용에다 무궤도 전차 차량을 구입해 오는 데도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차 철로선 공사와 도로포장은 일체 공병국 군인들이 밤낮으로 24시간 교대를 해 가면서 건설했고 주변 정리 같은 것은 주변 주민들이 동원되어 했습니다. 락랑 거리와 문수 거리 사이 무궤도 전차 공사가 한창 진행되던 때 김일성 생일과 관련하여 평양시민들에게는 가구마다 5kg짜리 햄이 공급되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받아 본 햄이라 많은 사람들은 아끼느라 먹지 않고 창고에 보관해 놓았습니다. 그로 인해 매일 인민반에서는 오늘은 이 집, 내일은 저 집에서 창고에 넣어둔 햄이 없어졌다고 소란이 일어났습니다.
인민반장인 저는 주민들의 소란을 없애기 위해 밤마다 동네를 지켰습니다. 이튿날 밤 12시가 되어 주민들이 다 잠든 야밤에 저희집 앞으로 지나가는 범상치 않은 발자국 소리가 들렸습니다. 잠든 남편을 깨워 부엌문을 살그머니 열고 밖의 동정을 살펴보니 군복을 입은 사람 두 명이 달빛에 그림자가 보였습니다.
세집 건너 이웃집의 창고 문고리를 뭔가로 뜯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집중을 했는지 남편이 살금살금 다가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잡고 보니 너무도 낯이 익은 얼굴이었습니다. 궤도 전차 공사를 위해 동네 공원에 천막을 치고 생활 하고 있는 부대 군인이었고 군인의 정치지도원이 제가 맡은 인민반에 함께 살고 있는 정치지도원 집에 자주 다니던 군인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는 군인은 처벌과 비판이 두려워 정치지도원에게 알리지 말아달라고 애원했고 알리지 않기로 했습니다만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궤도 전차공사가 끝날 때까지 동평양 지구 주민들은 밤마다 불안 속에서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시퍼런 대낮에 날강도가 들어 쓸 만한 물건을 훔쳐가지 않나, 빨래줄에 널어놓은 옷을 걷어 가지 않나, 시장 상인들의 물건을 통째로 덮쳐 가지고 달아나질 않나, 단층집 담벼락을 부수고 빈집털이를 하지 않나, 그야말로 군인이 아니라 날강도들이었습니다.
그 당시 인민반장이었던 저는 주민들의 돈을 모아 경비를 섰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건설군인들의 도시락 준비 역시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럭저럭 무궤도 건설이 완공되었고 시민들은 전차를 타고 출퇴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궤도 전차를 타고 출퇴근 하는 남편은 애들처럼 자주 궁시렁 댑니다. 식량 공급표가 자주 잘린 채 가져옵니다.
3번 지각하면 하루 무단결근이 됩니다. 출퇴근 시간에 정전이 되면 무궤도 전차는 그 자리서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송신에서 만경대 까지 그리고 문수구역에서 락랑 구역까지 궤도 전차들이 줄을 지어 멈춰 서있습니다. 콩나물시루처럼 사람이 빼곡한 궤도 전차 안에서는 각종 범죄자들로 인해 여성들에게는 매우 불쾌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또 북한에서는 모든 건설이 끝나면 꼭 총화 사업이 뒤따르거든요. 제 친구의 남편은 궤도 전차 건설이 끝난 뒤 총화 사업에서 물자를 낭비했다는 이유로 군복을 벗고 감옥에 갔습니다. 하기에 친구는 궤도 전차만 보면 남편을 잡아먹은 호랑이라도 되는 듯 아무리 바쁘고 중요한 일이 있어도 궤도 전차만은 타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돈과 노력을 허비하면서 건설한 무궤도 전차를 없앴다고 하니 평양시민들에게는 시원섭섭한 일이 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을 해 봅니다. 고향에 다시 가면 저한테도 추억이 많은 궤도 전차를 타보려고 했는데 이젠 어렵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