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구순잔치에 다녀오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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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저는 한 회원님의 구순 잔치에 다녀왔습니다. 약간 치매기가 있는 그분은 가끔 씩 자신의 아들딸들조차 잘 알아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자녀분들은 부모님의 90세 생일잔치를 해 드렸습니다.

북한 같으면 그 연세에 또 약간 치매기가 있는 부모님을 위해 구순 잔칫상을 차려 드린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괴언이 아니거든요. 수원시가지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잔치를 했는데 그 음식점은 1관 2관 3관으로 되어 있는 아주 큰 음식점이었습니다. 함께 간 친구들은 평양 옥류관에 가본 적은 없지만 마치 평양 옥류관에라도 들어와 있는 기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들어오는 음식을 하나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향 생각이 났기 때문이죠. 명절 때나 혹은 좋은 음식을 앞에 두면 언제나 그러 하듯 부모님 생각이 나서 음식이 목에 넘어가지 않더군요. 하지만 특별히 그 날은 구순을 맞는 회원님의 효자 자녀들의 늠름한 모습을 보노라니 더더욱 부모님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부모님 구순 잔치는 물론, 환갑잔치도 제대로 해드리지 못한 자책감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가 탈북하기 오래 전에 고향에서 부모님의 환갑잔치를 했습니다.

이곳 한국에서는 60은 청춘이고 90이나 되어야 환갑이라는 말이 있듯이 대부문 60환갑 잔치는 하지 않습니다만 북한 주민들은 명이 그리 길지 않으므로 환갑상을 크게 합니다. 그런 데도 저는 고향방문 통행증이 부결 되여 부모님 환갑잔치에 참석을 못했습니다. 통행증을 여러 번 반복 신청하고 나서야 환갑잔치가 훨씬 지난 후 30호 승인이 겨우 떨어져서 고향에 갔었거든요, 이미 환갑잔치 상을 다 치른 뒤끝이었습니다.

그 이후 탈북으로 인해 부모님들의 칠순, 팔순 잔치에도 참석을 하지 못했습니다. 형제들의 말로는 칠순잔치와 팔순잔치를 해 드렸는데 이 둘째 딸의 무소식으로 인해 부모님의 얼굴이 몹시 어두웠다고 합니다. 내 자신 불효자식이라고 생각을 하니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구순잔치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귀여운 꼬마 손자들이 한 줄로 서서 생일축하의 노래를 박자에 맞춰 불렀습니다.

맏아들은 손님들에게 와인 한잔씩 따르고 아버님의 건강을 빌어 축배의 잔을 권했습니다. 친구들은 건강을 위하여 라는 소리를 크게 외치면서 와인 잔이 쨘 소리가 나도록 서로 마주치며 즐거워했습니다. 순간 저는 나를 낳아 주고 키워 주신 부모님이 이곳 천 국 같은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도록 하늘나라 어딘가에서 도와주고 살펴주신다는 생각에 또다시 목이 메었습니다. 그런 부모님께 불효를 했다는 자책감으로 인해 저는 평소 제일 좋아 하는 쇠고기 구이였지만 한 점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들의 곁을 슬그머니 나와 음식점의 큰 홀에 나온 저는 쇼파에 앉아 따끈한 커피 한잔으로 마음을 달랬습니다. 구순잔치가 파하고 축하의 자리를 떠나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오는 내내 차안에서 살아온 추억과 더불어 마음 아팠던 고향 생각으로 다시 한 번 눈시울이 젖기도 했습니다. 서울에 올라온 저는 선물가방에 포장해 준 떡을 친구들과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다시 한 번 고향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한 친구도 역시 양가 부모님 환갑잔치에 참여 하지 못한 게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고 얘기했습니다. 부모님 환갑 잔치준비를 위해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 한 마리를 품에 안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었는데 그만 중국공안에 붙잡혀 북한으로 강제 송환되었다고 합니다. 부모님 환갑상대신 노동수용소로 끌려가 죽도록 노동만 했다고 합니다. 몇 개월 동안의 강제 노역을 마치고 집이라고 돌아와 보니 부모님은 영양실조로 자리에 누워 있었다고 합니다.

또 한 친구는 식량공급이 중단 된지 오래 되어 부모님은 환갑잔치도 해 보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눈물을 흘려가며 얘기 했습니다. 또 한 친구는 이곳 대한민국에 함께 와서 북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아주 큰 상으로 어머님의 칠순잔치를 해드렸다는 얘기로 분위기를 바꿔 주었습니다.

그 친구는 이곳에 홀로 모셔온 어머님을 한국식으로 환갑에는 어머님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보내드렸고 칠순잔치 때는 큰 웨딩홀은 아니더라도 평양 옥류관보다 더 좋은 뷔페 음식점에서 많은 사람들을 초청해 크게 원 없이 해 드렸다고 합니다.

이런 애기를 들으면서 제 마음은 더더욱 아팠습니다. 언제이면 나도 고향 평양에 있는 부모님 묘소를 찾아 늦게나마 부모님께 해드리지 못한 환갑, 칠순, 팔순, 구순 잔치를 모두 한꺼번에 해드릴 수 있을까. 그날은 과연 언제쯤일까. 부모님 생일을 며칠을 앞둔 요즘 저는 부모님께 효도를 못 다 해드린 자책감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