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함께 중국음식점에서 회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창 양꼬치 구이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을 하려고 하는 순간 손전화기의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큰딸에게서 걸려온 전화였습니다. 그런데 전화기를 드는 순간 전화기에 울려 나오는 목소리에 저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손녀의 챙챙한 목소리였습니다.
큰딸의 목소리가 들려올 줄로만 알았던 저는 ‘할머니’하고 부르는 손녀의 목소리에 순간 눈이 커졌습니다. 손녀는 할머니에게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할머니가 너무 너무 그립다고 덧붙였습니다. 손녀는 26일에 유치원에서 가을 운동회를 하는데 할머니 손을 잡고 달리기를 하고 싶다고 부탁하고는 ‘알러뷰’ 라는 말을 남기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친구들과 저는 한참을 웃었습니다. 한 친구는 옛날 속담에 외손자 보려면 차라리 파밭의 김을 매라고 한다더니 너무도 손자들에게 껌벅 죽는다고 놀려주기도 했습니다. 정말 저는 눈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을 손자들이라면 자다가도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답니다.
저는 손녀가 처음으로 참가하게 되는 운동회라, 그날을 마치 어린 소녀 마냥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25일 저녁 퇴근해 곧바로 전철을 타고 평택으로 갔습니다. 전철역에 마중 나온 손녀는 저를 보는 순간 폴짝 폴짝 뛰며 좋아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손녀의 손목을 잡고 현덕 초등학교로 갔습니다. 손녀는 올해 현덕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입학했거든요.
병설 유치원은 초등학교 안에 있는 유치원을 말합니다. 이미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 언니, 오빠들이 모여 오전 10시부터 오후 12시까지 학급별 공연을 펼쳤습니다. 유치원 아이들의 장기자랑은 세 번째 순서로, 하늘하늘한 파란 나비 옷을 입고 무대로 올라갔습니다. 손전화기를 들고 맨 앞에 나가 나풀나풀 춤을 추고 있는 손녀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공연을 마치고 무대 아래로 내려오는 손녀에게 이미 준비한 꽃묶음을 안겨 주었습니다. 이러는 제 모습을 바라보시던 학교 교장이자 원장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꽃보다도 돈을 줘야 좋아 한다고 해 많은 학부형들이 웃었습니다.
드디어 오후 1시부터 운동회가 시작됐습니다. 저는 신발 던지기, 집채만한 공 높이 띄우기, 손녀와 함께 물체를 던져 높은 숫자 맞추기, 계주 달리기 등에 참가 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은 계주 달리기였습니다. 청팀과 백팀 모두 각각 8명씩 참가 했는데 모두 30대 중반 나이인 젊은 애기 엄마들이었습니다.
청팀의 한 애기 엄마가 달리다가 그만 넘어져 많이 뒤처지게 됐습니다. 이어 제 차례가 됐습니다. 다섯 발자국 뒤로 나가 계주봉을 받아 들고 달렸습니다. 백팀을 따라 잡아 청팀이 이겼습니다. 주변에서 어떻게 그렇게 달리기를 잘하냐고들 했습니다. ‘아직 죽지 않았구나’ 하는 자신감으로 저는 조금 으쓱 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종목마다 우승을 해 상품 4개를 탔습니다. 운동회를 마치고 손녀의 손목을 잡고 집으로 오면서 저는 지난 고향에서의 추억을 떠올렸습니다. 북한에서도 해마다 10월이면 운동대회를 하거든요.
우리 아이들의 운동대회에 참가해 학부형 경기 즉 계주 이어 달리기를 비롯한 바늘구멍 끼우기 그리고 병뚜껑에 실을 끼고 달리기 등 어느 종목에서도 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여 운동대회에서는 항상 학부형들이 제 편에 많이 서겠다고 다툼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어느 해인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큰딸은 청군이고 작은 딸은 홍군이었는데 아침부터 두 딸은 서로 자기 팀에 참가해 달라고 했습니다. 결국 계주 이어 달리기에는 큰 딸 편에서 뛰고 작은 딸애 편에서는 바늘구멍 끼기와 사람 찾기 달리기에 참가했었습니다.
그 때에도 두 학부형이 달리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그만 청군이 지게 됐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지만 삐죽 나온 큰 딸의 입은 들어갈 줄을 몰랐습니다. 저는 오늘도 큰딸에게 그 생각이 나느냐고 물었습니다. 딸은 아직도 그 때 생각이 생생하다고 말해 우리는 다같이 웃었습니다.
저는 가을 운동회 역시 북한 학교 운동회와는 다를 바 없이 꼭 같습니다. 그러나 북한 학생들은 어느 학교나 ‘미국놈 때리기’ 종목을 통해 아이들에게 적개심을 키워주고 있는 북한과는 다르게 우리 대한민국의 운동회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마음껏 펼치게 해주는 그런 운동회였습니다.
또 다른 것이 있다면 북한의 모든 학교 운동장은 흙이나 석비레로 다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넘어지면 무릎이 깨지고 손바닥이 터져 피가 흐르고 깊은 상처가 생기지만 우리 대한민국의 모든 학교 운동장은 푸른 잔디로 돼있습니다. 하기에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뛰어 놀아도 다칠 염려가 없습니다.
손녀 역시 이 할미를 닮아서인지 달리기에서는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유치원에서 제일 작은 체격이었지만 맨 앞에서 달리는 손녀의 당찬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뿌듯하기도 했고 세월이 지날수록 우리 가족의 행복한 새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