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대용으로 도토리 먹는 북한주민

도토리묵을 직접 만들어보고 맛도 볼 수 있는 '구즉묵 제조 체험관'을 찾는 시민들이 묵을 썰고 있다.
도토리묵을 직접 만들어보고 맛도 볼 수 있는 '구즉묵 제조 체험관'을 찾는 시민들이 묵을 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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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유난히 가을비가 자주 내리네요. 한 번 비가 올 때마다 기온이 떨어져 날씨가 많이 쌀쌀해 졌습니다. 춥다는 말이 인제는 입버릇이 됩니다. 가을바람이 한 번 불어 올 때 마다 도토리들이 후드득 떨어집니다. 들깨 수확을 하다 말고 떨어지는 도토리가 아까워서 하나 둘씩 줍기 시작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을 줍다 보니 어느덧 자루에 가득 찼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저는 도토리를 깨끗이 손질해 찬물에 담가 놓고 수첩을 꺼내 며칠 전에 적어 놓은 번호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48시간을 물에 불려 가지고 오라고 하네요. 이틀 후에 점심을 먹고 가공공장 사장님의 말씀대로 깨끗이 손질한 도토리를 가지고 공장을 찾았습니다. 가공 공장주변에 도착하니 벌써 구수하면서도 씁쓸한 도토리 냄새가 코로 들어옵니다.

시간이 조금 걸린다고 해 맡겨 놓고 회사로 돌아온 저는 껍질을 벗겨 가루가 되는 모든 순서가 몹시 궁금하기도 했습니다만, 저녁시간까지 참다가 퇴근시간에 맞추어 맡겼던 도토리를 찾았습니다. 가루라고 생각했었는데 묵직한 덩어리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뭐지?’ 했거든요.

어린 시절 평안남도 덕천군 두메산골에 살고 있는 먼 친척 집에 갔었습니다. 동네 어른들이 금방 주어온 도토리를 물에 담가 맷돌에 갈아 도토리묵을 쑤는 것을 보았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으로 웃음이 나오지만도 저는 그때를 추억해보면 물에 섞인 가루인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여 ‘가루가 되도록 어떻게 말리지?’하는 걱정도 은근히 했었지요.

집으로 돌아온 저는 도토리 가루를 조금 물에 풀어서 끓는 물에 넣고 타지 않도록 밥주걱으로 저었습니다. 어느새 걸쭉하게 묵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잘 익은 묵을 쟁반에 담아 식혔습니다. 가족들은 생각보다 쫄깃쫄깃 하고 맛있다고 하네요.

오이와 묵을 섞어 상큼하게 무치고 그냥 양념장에 발라 먹을 수 있도록 따로 식탁에 올려놓았습니다. 밥상에 빙 둘러 앉아 내 손으로 직접 한 알 두 알 주운 도토리로 만든 묵 하나를 먹으면서도 마냥 행복해하는 가족들을 보느라니 지나간 고향에서의 추억이 새삼 나네요.

평양 시민들에게도 한때는 옥수수 전분가루가 식량으로 공급이 되었거든요. 그 전분가루로 제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묵이었습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시어머님은 하루가 멀다 하게 묵을 만들어 식탁에 올려놓았습니다. 목화솜보다도 더 흰 묵만 봐도 저는 싫었습니다. 시어머님 앞에서 투정을 할 수가 없다 보니 저녁을 먹고 왔다는 거짓말로 핑계를 대고 수다하게 굶고 잠자리에 누우면 배에서는 나도 모르게 꼬르륵 소리가 나곤 했습니다. 어떻게 아셨는지 시어머님은 묵을 만드는 날이면 꼭 밥을 해 주곤 했습니다. 아마도 지금 생각해보면 옥수수 전분가루 묵 때문에 시어머님과 며느리 사이가 더 가까워지지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 보네요.

또 하나 도토리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도토리 술입니다. 평양시 어느 식료공장에서는 도토리 술을 만들기 위해 많은 직원들이 집단적으로 도토리가 제일 많은 덕천 군으로 갔습니다. 산을 잘 모르는 많은 직원들이 도토리를 줍다가 길을 잃어 다시는 가족들의 곁으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 되면서 북한 주민들은 도토리가 기본 주식이 되기도 했고 군인들도 도토리를 주어다가 식량 대용으로 사용했습니다.

당시 군복무를 하던 제 조카 역시 하루에 한 배낭씩 무조건 도토리를 주웠는데 그 할당량을 수행하기 위해 깊은 산속에서 헤매다가 길을 잃어 하루 밤을 무서운 산속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깊은 산속에서 친구와 함께 밤을 보내는데 춥고 무섭고 배고프고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고 하네요.

이곳 남한 사람들은 도토리로 묵을 만들어 건강식품으로 먹고 있지만 북한의 많은 주민들은 도토리를 식량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병원에 가도 약이 부족해 도토리로 약 대신사용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도토리 술을 만들어 외화 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