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면 누구나 한 번쯤은 마음이 쓸쓸할 때가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가을비가 촉촉이 내리던 지난 주말 늦은 오후 왠지 모르게 마음이 울적해 홀로 아파트 베란다 창밖에 서서 떨어지는 가랑잎이 가을비에 젖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손에 들고 있는 손 전화기가 드르릉 하고 울렸습니다.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 살고 있는 조카딸의 다정한 목소리였는데 해물전을 부쳐 놓았으니 저녁 식사를 함께 하자고 합니다.
조카딸은 전화통화 마지막에는 다정한 목소리로 새삼스럽게 ‘이모 사랑해’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얼결에 ‘나도 사랑해’ 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 나왔습니다. 가을비와 함께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잠시 쓸쓸했던 기분은 어디로 사라지고 괜스레 기분이 즐거워졌습니다.
많은 활동으로 인해 이곳 사람들을 만나면 한국에는 언제 왔는가 하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서슴없이 12년이 됐다고 대답합니다. “아이고, 12년이면 한국 사람이 다 됐네요” 라는 말을 많이 들어 왔고 또 저 역시 12년이면 어느 정도는 이곳 서울 생활에 적응이 됐다고도 생각했습니다만 아직 이곳 서울 사람이 되기엔 멀었구나 하는 생각을 조카의 전화를 받고 나서 새삼 해 보게 됐습니다. 이곳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어른이든 아이들이든 누구나 ‘사랑해’ 라는 단어를 흔하게 자연스럽게 사용하거든요.
부모들은 ‘아들 사랑해’ ‘딸 사랑해’ 또 부부간에는 ‘여보 사랑해’ ‘자기야 사랑해’ 또 자라나는 아이들은 ‘아빠 사랑해’ ‘엄마 사랑해’ ‘언니 오빠 형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해’ ‘뽀뽀’라는 단어를 어색함이 없이 자연스럽게 사용합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부모들이 흔하게 다 쓰는 ‘아들 사랑해, 딸 사랑해’ 이런 말을 못해 봤습니다.
북한사회에서는 사랑이란 말은 남녀 간에 만 사용하는 단어인 줄로만 알고 살아왔었거든요. 얼마 전에 보험료를 입금했다는 아들의 문자를 받고 저는 ‘아들 고마워’ 하는 답장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엄마 뭐 잘못 드셨어? ㅠㅠ’ 하는 아들의 회답 장이 왔습니다. 이제 30이 된 아들 역시 잘 쓰지 않던 엄마의 단어에 조금은 어색했나 봅니다.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오르면서 조금 멋쩍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아들이 친구 같기도 하고 때로는 남편 같기도 해 힘들고 지칠 때마다 항상 남모르게 의지하고 기대고 살아온 저에게는 든든한 기둥이거든요. 하기에 저도 이곳 부모들처럼 ‘아들 사랑해’ 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싶었고, 이곳 한국의 엄마들이 너무도 부러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 역시 ‘엄마 사랑해’ 라는 말을 사용하기가 어색해 입에서 떨어지지가 않는다고 합니다. 손자들에게는 ‘할머니 사랑해’ 라는 말을 하라고 훈시는 하면서도 딸들 역시 어색한가봅니다.
텔레비전이나 언론들에서 가정 폭력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저는 세 아이를 키우면서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에서의 스트레스를 모두 우리 아이들에게 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쌀독에서 인심이 난다고 워낙 부족한 것이 많고 열악한 생활고에 시달리다 보니 때로는 남편이 밉다고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고, 하는 일이 잘 안된다고 죄 없는 우리 아이들에게 눈치를 주고 그저 아이에게 핀잔했던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아이들에게 너무도 많은 죄를 지었구나 하는 자책감이 많이 듭니다. 하지만 그때엔 부모들의 스트레스를 왜, 죄 없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야 하고, 또 그것이 아이들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 것인지 느끼지 못했거든요.
지나간 마음 아팠던 추억을 하다 보니 어느새 조카의 집 문 앞에 이르러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4살짜리 조카 손녀딸애가 달려와 품에 안겼습니다. 따끈한 해물전을 먹으며 또 한바탕 수다를 떨었습니다. 꼭 이런 때 보면 조카가 저에게는 친구 같습니다. 해물전을 먹으며 조카는 이런 말을 합니다. 요즘 먼저 ‘사랑해’라는 말을 의식적으로 사용하니 또 상대방에게서도 ‘사랑해’ 라는 말을 들으니 괜스레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항상 마음이 즐겁다고 합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뭐든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왜 나는 어색하다고만 생각했을까. 먼저 남을 배려하고 사랑한다면 그 사랑이 내게로 돌아온다는 것을 늦은 감은 있으나 이제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나는 지금부터라도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쉽게 할 수 있는 인사와 사랑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들 사랑해’ ‘딸 사랑해’ 자연스럽고 편하게 말 할 수 있게 말입니다. 가정에서 인성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