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양온천에서 부모님 생각에 눈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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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저는 가족들과 함께 충남 아산시 모종동에 있는 온양 온천을 다녀왔습니다. 우리 집에서 온양 온천까지는 약 40분 거리입니다. 처음 아들이 주말에 온양 온천을 가자고 할 때 평소 온천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그저 평범한 온천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목적지인 온양 온천에 도착해서야 한국에서 유명하고 큰 온천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다녀온 온양 온천은 백제, 고려, 조선을 거치며 1300년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이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온수라 불리었고 온양으로 불리게 된 역사는 약 600여 년이 됐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여러 임금들이 휴양이나 병 치료를 위해 오랜 시간을 머물고 돌아간 기록과 유적들도 남아 있습니다.

온양의 온천수는 알칼리성 온천으로 천질이 부드럽고 온열에 의한 진정 작용이 있어 피부병과 위장병, 신경통, 빈혈, 부인병에 특효가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하루에 솟아나는 온천수의 양이 6천 톤에 달해 모든 숙박시설과 온천탕에서 온천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간 온천탕은 우선 온탕과 열탕 저온탕 그리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천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나무로 만든 전통 한증탕과 미네랄 소금방, 황토방 등이 있었고 가족실이 따로 있었습니다. 가족실에는 텔레비전이 설치되어 있고 아기가 조용히 잘 수 있어 편안했고, 아이들에게는 따로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와 게임방이 있어 좋았습니다.

마침 모두가 쉬는 일요일이라 가족과 함께 온양 온천을 찾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기에 우리 가족은 시간을 조금 기다려서야 가족실을 잡았습니다. 어른들은 소나무 전통 한증막을 교대로 드나들며 땀을 냈고 저는 손자 녀석들과 놀이터 공간에서 집에서 가져온 과일들과 음료수 등 갖가지 먹을거리를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좋아라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는 손자 녀석들을 미처 쫓아다니기란 헐치 않았습니다만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애들이나 남의 집 애들이나 하나같이 꼭 같은 찜질방 옷을 입었기에 아마 더욱 손자 녀석들 따라다니기가 더욱 힘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식구들처럼 비록 한증막에는 드나들지 않았지만 땀이 비 오듯 했습니다. 드디어 4시간이 지나서야 저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천탕에 들어갔습니다.

야외에 차려놓은 노천탕을 들락날락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어느덧 날은 어두워져 우리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7살짜리 손녀와 5살짜리 손자 녀석은 다음에 또 오자고 조르기도 합니다.

정말 옛날 임금님들이 이곳에 와서 휴양을 즐기면서 병 치료를 했었다는 말이 이해가 됐습니다. 피부가 얼마나 매끈매끈하고 윤기가 나는지 모릅니다. 저는 광이 도는 얼굴을 두 손으로 문지르며 한 10년은 더 젊어진 기분이 든다는 제 말에 온 식구가 크게 웃었습니다.

온양 온천에서 나온 우리 가족은 저녁식사를 위해 갈비집으로 갔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뜨끈한 갈비탕 국물을 쭉 들이마시며 10년 체기가 내려간 것 같이 속이 시원하다고 했는데 아들은 뜨거운 갈비탕이 정말 시원하냐고 제 말을 받아 넘겼습니다. 그래서 온 식구가 음식점이 떠나갈 듯이 또 한 번 행복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저는 우리 가족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잠시 잠깐 어렵고 힘들었던 지나간 세월을 추억해 봤습니다. 처음 한국에 와서 어렵고 힘들었던 날들과 남편 없이 두 딸의 결혼식장에서 슬퍼서인지, 기뻐서인지도 잘 모르겠는 눈물이 흐르던 날도요. 세월은 흘러 딸들도 이제는 아기엄마가 됐고 한 남편의 아내가 되어 가정의 행복을 지켜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하기도 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집으로 오다가 저는 평택호를 바라보며 갑자기 부모님 생각이 나기도 했습니다. 우리 부모님도 온천을 한없이 좋아하셨는데, 살아생전 이곳으로 모셨다면 이 좋은 온천을 다니면서 남은 인생을 여한 없이 행복하게 마감했을 텐데, 자식으로서 그러지 못한 죄송스러운 마음을 죽을 때까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