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마포대교를 걸으며…

서울 마포대교 난간에 새겨진 '무슨 고민 있어?'라는 문구의 모습.   서울시는 삼성생명과 함께 마포대교의 투신이 자주 일어나는 장소 곳곳에 센서를 설치, 보행자의 움직임에 따라 조명과 응원메시지가 보이도록 하는 등 이 다리를 '쌍방향 소통(인터랙티브)형 스토리텔링 다리'로 조성했다.
서울 마포대교 난간에 새겨진 '무슨 고민 있어?'라는 문구의 모습. 서울시는 삼성생명과 함께 마포대교의 투신이 자주 일어나는 장소 곳곳에 센서를 설치, 보행자의 움직임에 따라 조명과 응원메시지가 보이도록 하는 등 이 다리를 '쌍방향 소통(인터랙티브)형 스토리텔링 다리'로 조성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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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얼마 전에 친구들과 함께 마포역과 여의도를 연결하는 마포대교를 직접 걸어 다녀왔습니다. 정오 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지만 다리 위를 걷는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다리 아래 유유히 흐르는 한강물은 햇살에 평소보다도 더욱 빛이 났습니다. 초겨울 날씨였지만 눈이 온 뒤라 쌀쌀하고 강바람이 볼을 시리게 했습니다. 하지만 마치 어린 소녀들처럼 친구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걷는 제 마음은 따뜻했습니다.

다리 위를 걸으면서 마포대교는 ‘생명의 다리’로 불리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마포 대교는 삼성 생명과 서울시가 삶에 지친 시민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해놨는데요. 드문드문 생명의 전화기가 걸려 있어 수화기를 들면 상담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조명과 함께 ‘당신의 얘기를 잘 들어 줄 거예요’, ‘밥은 먹었어? 피곤하지 않아? 무슨 고민 있어?’ 등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듯한 많은 문구들이 난간에 뚜렷이 적혀 있습니다.

그 중 제 눈에 인상 깊게 들어오는 글발이 있었습니다. 3년 전에... 제일 힘들었던 게 뭐였는지 기억나? 기억, 잘 안 나지, 참 세월 빠르다, 바깥바람 쐬니까 시원하고 참 좋다’ 이 글이 적혀 있는 난간을 잡고 한참을 강물을 내려다보면서 지나간 세월 가슴 아팠던 추억이 눈앞에 떠올랐습니다.

내 고향 평양에도 이곳 서울처럼 시내 중심에 대동강이 있습니다. 대동강 하면 저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거든요. 16년 전 능쟁이 독풀로 인해 퉁퉁 부어 앞을 보지 못하는 아들이 병원에서 고통을 호소하던 모습을 더는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피부성 병원에서 저의 집에 가려면 대동교나 옥류교를 건너야만 했습니다.

당시 10전이면 버스나 전철을 탈 수 있었는데 제 주머니에는 10전짜리 하나 없었습니다. 대동교를 걸어 터벅터벅 맥없이 걷던 저는 철교 밑으로 흐르고 있는 물을 내려다보는 순간, 능력 없는 부모가 된 것이 우리 아이들에게 죄가 되는 것 같은 생각이 불쑥 들었고 나 자신도 모르게 대동교 철교 위에서 흐르는 물밑으로 뛰어 내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흐르는 물 위에 세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엄마가 죽으면 우리는 자살자 가족이 되어 지방으로 추방당한다는 말이 또렷이 제 귀에 들리는 듯했습니다. 저는 두 귀를 잡으면서 그만 정신을 차리게 됐습니다. 5월의 뜨거운 뙤약볕에 흘린 땀으로 인해 온몸이 젖은 채 대동교 철교 밑에서 한참을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그길로 남편의 직장 초급당 비서를 찾아가 하소연을 해 밀가루 10kg을 공급 받았었는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잊을 수가 없습니다. 밀가루를 받아 가지고 다시 대동교를 걸어 집으로 가는 제 발걸음은 정말 올 때와는 정반대로 가벼웠습니다.

참 세월은 빠르기도 합니다. 가슴 아팠던 그 시절이 어제 같은데 벌써 오랜 세월이 흘렀고 지금은 나의 인생이 바뀌어 천국 같은 이곳 대한민국 서울 중심에 있는 한강 마포대교, 생명의 다리에서 이런 지난 추억을 해본다는 것이 정말 꿈만 같습니다. 시원하면서도 쌀쌀한 한강 바람에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어린 시절, 추운 겨울 대동강에서 스케이트를 신고 씽씽 달리던 추억도 잠시 잠깐 해보기도 했습니다.

한창 스케이트를 신고 달리다가도 당장 얼음이 깨질 듯 쩡쩡 울리는 소리가 무서워 한참동안 가슴을 쥐고 서있던 기억도 납니다. 지금도 평양시 주민들은 자주 다니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다 지쳐 대동강 얼음 위로 다니고 있습니다.

내 고향 평양에 있는 대동강에는 제가 가슴 아픈 일이 있기도 하지만 그 반대로 좋은 추억도 있습니다. 군에서 제대하여 저는 동창생들과 함께 대동강에서 보트를 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어디서 몰려 왔는지 한 무리의 보트가 저와 친구들이 탄 보트를 포위하고 노래를 불러야 보내 준다고 했고 우리는 그들을 향해 물을 뿌려 물 찬 제비처럼 만들어 준 적도 있었습니다.

평안남도 안주시가 고향인 한 친구는 청천강 대교로 자전거를 타고 안주 비료 공장으로 출퇴근하던 추억, 그리고 여름이면 청천강에서 빨래를 하고 목욕을 하던 얘기도 들려줬습니다. 또 함북도 무산군이 고향인 친구는 두만강에 나가 추운 겨울에 도끼를 들고 꽁꽁 언 손을 입김으로 불어 가며 겨우 바가지 한 개 들어갈 구멍을 내고 물을 길어다 먹곤 했는데 한 번 길어 오고 두 번째로 나가면 물구멍이 꽁꽁 얼어 또다시 도끼로 구멍을 내야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시원한 한강 바람을 맞으며 어렸을 적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마포대교를 다 건넜고, 한 주간의 작은 스트레스까지 모두 날려버렸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