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손녀들의 크리스마스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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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은 손자여석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성탄절이었습니다. 개구쟁이 여석들이 이날을 기다리는 이유가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이거든요. 성탄절이 지나간 지 며칠 되었지만 아직도 산타할아버지가 주고 간 선물을 손에서 놓지를 않네요.

토요일 오전 손자여석들을 찾아 평택으로 갔습니다. 식구들과 함께 원양삼치 횟집에서 가족 회식을 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저는 남편과 함께 잠깐 안중 홈플러스를 찾았습니다. 4개의 선물을 구입해 예쁘게 포장해 차에 실었습니다. 손자여석들에게 나름대로의 깜짝 선물을 안겨주고 싶은 마음에서였습니다. 저녁 8시가 되어 가족들과 함께 안중성당을 찾았습니다.

안중성당은 두 번 정도는 가 보았지만 아는 사람 없는 아주 생소 한 곳입니다. 그래도 만나는 사람들마다 서로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눴습니다. 성당 세례를 받지 않은 딸들과 사위와 손자들이었지만 함께 성탄전야제 미사에 참석 했습니다. 어린 학생들의 공연을 보았습니다. 빨간 모자에 빨간 옷을 입은 언니 오빠들이 힘찬 노래에 맞추어 율동을 하자 제법 개구쟁이들도 목소리를 높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손자여석들의 재롱에 빠져 들었습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큰 딸집으로 갔습니다. 7살짜리 손자여석의 생일이라 방안 불을 끄고 케이크에 촛불을 켰습니다. 4명의 손자여석들에게 모두 산타할아버지에게서 받고 싶은 선물이 있으면 그 소원을 빌게 했습니다. 모두 잠자리에 누워 쌕쌕 잠자고 있는 시간 저는 손자들의 머리 옆에다가 미리 준비한 선물을 놓았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놀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개구쟁이 여석들 못지않게 어느덧 동심 세계로 돌아 왔었거든요. 워낙 새벽잠이 없는 5살짜리 손녀애가 제일 먼저 눈을 떴습니다. 베개 옆에 예쁘게 포장 되어 있는 핑크색을 보자 눈이 커지는 동시에 산타할아버지가 밤에 선물을 주고 갔다고 큰 소리로 오빠와 언니들을 깨웠습니다.

남들이 다 자는 새벽 5시에 우리 집 식구들은 모두 잠에서 깨여 벅적였습니다. 그리고는 서로 쳐다보며 손가락을 가리키며 웃었습니다. 이 할미가 손자들의 얼굴에 조금씩 장난을 쳐 놨었거든요. 이렇게 좋아하고 행복해 하는 손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나간 세월에 대한 추억을 해 보았습니다.

가지고 놀 장난감 하나 없었던 우리 아이들이었습니다. 5살, 3살, 1살 나는 세 아이만 방안에 남겨 두고 한창 김장 준비를 하느라 추운 밖에서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5살짜리 큰딸이 뛰어나오며 눈물이 글썽해 걱정이 섞인 목소리로 말합니다. 아버지 대원수님 사진이 찢어 졌다고 하네요.

800Kg 되는 배추를 절임하고 있던 저 역시 깜짝 놀라 짠 소금이 묻은 손으로 방안으로 뛰어 들어 갔습니다. 방에 들어 가보니 어린아이들 역시 놀라 부동자세로 앉아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볼까 두렵기도 했습니다만 저는 재빠른 동작으로 찢어진 초상화가 담긴 빨간 뚜껑이 된 당생활노트를 빼앗아 들고 나왔습니다. 김장 배추를 절임하고 있었지만 근심과 걱정으로 마음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이 다 잠든 늦은 저녁 시간 아궁이에 넣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비밀은 감출 수가 없나 봅니다. 퇴근을 한 남편이 갑작스럽게 부엌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많이 놀라기도 했지만도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하늘같은 남편이라 믿었습니다. 남편이 묻기에 저는 고지식하게 그대로 말했습니다. 그 일이 저에게는 남편에게 큰 약점이 되었습니다. 그 후로 남편의 외도에 저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나 자신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찢어진 초상화를 아궁이에 넣었다는 카드로 보위부에 신고하겠다는 협박에 그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북한 사회에서는 초상휘장을 땅에 떨어 뜨려도 시범에 걸리면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야 하거든요. 초상화를 찢어 아궁이에 넣었다는 현실은 정말 최악의 큰 정치범 대상이거든요. 본인인 나 자신은 물론 우리 부모님들의 공로까지 다 무너뜨릴 수 있는 상황이라 저는 자갈 물고 소화시키는 격으로 살아 왔습니다.

이런 아픔이 있었기에 우리 아이들에게 해주지 못한 한을 이곳 한국에 온 저는 우리 손자들에게 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할 수가 있습니다. 추위에 떨고 있는 내 고향 북한의 어린이들에게도 따스한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안겨 주고 싶네요.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