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많은 사람들에게 한창 인기가 있는 유명한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국제시장’입니다. 며칠 전에 저는 친구들과 함께 ‘국제시장’이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2014년은 저에게 있어서 너무도 많은 일들로 인해 아주 뜻깊은 한 해이기도 합니다. 탈북어머니회 회원님들과 함께 송년회 겸해서 점심을 먹고 커피숍에 모여 앉아 한창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커피숍은 우리 회원님들이 세를 줬나 할 정도로 다른 손님은 단 두 명밖에 없었거든요.
워낙 목청들이 높은 우리들이라 지난 한해에 있었던 재미있고 또 즐겁기도 하고 또는 마음 아팠던 이야기들로 한참 목소리들을 높여 가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한 친구가 요즘 좋은 영화들이 나왔는데 텔레비전을 보니 그중에서 ‘국제시장’이란 영화가 제일 인기라고 합니다. 벌써 400만 관람객이 돌파했다고 하면서 너무도 좋은 영화라고 말합니다.
한쪽에 앉아 한창 수다를 떨던 한 친구는 앞뒤 말은 채 듣지 못한 듯 부산 국제시장을 이제 어떻게 간다고 하는 가고 반문해 우리는 또 한 번 크게 웃기도 했습니다. 영화 관람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의 얼굴을 한눈에 읽은 저는 영화 관람을 할 사람은 후회하지 말고 손을 번쩍 들라고 했습니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10명 중 저를 포함한 6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소수는 다수에 복종해야 한다고 하면서 관람을 하자는 결론을 하게 됐고 택시를 타고 영등포역 백화점 8층으로 갔습니다.
드디어 시간에 맞추어 영화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좋은 친구들과 또 우리 탈북 어머니회 회원님들과 만나 수다를 떠는 시간이 저에게는 너무도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만 영화관으로 들어가는 제 마음은 벌써 지난 한 해 동안 아팠던 일들은 다 어디로 가고 이미 기분이 들떠 있기도 했습니다.
북쪽의 아주 추운 곳에서 나서 자란 사람들이라 워낙 목소리 톤이 높은 것도 있지만 동심세계로 돌아간 친구들은 마치 자기 목소리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큰 소리로 떠들자 주위 사람들로부터 조용해 달라는 신소까지 받기도 했습니다. 드디어 본 영화 ‘국제시장’이란 영화가 시작 됐습니다.
영화의 첫 시작은 부산 시장이 나왔으며 노부부가 나란히 앉아 어린 시절 꿈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주인공 덕수는 고향은 북한이었고 어린 시절 6.25 전쟁 시기 중공군이 밀려오면서 흥남부두에서 미군 군함을 타고 이곳 남한으로 피난 오신 분이었습니다.
흥남 부두에서 미군은 군함에 많은 무기를 싣고 출발하려고 하는 그 순간 한국인 통역원이 미군 장군에게 두고 가면 중공군에게 희생될 피난민들을 무조건 함께 가게 해달라고 도와 줄 것을 간절히 부탁하는 장면과 이렇게 피난민들이 살기위해서 필사적으로 오르는 모습에서 저는 너무도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배에 오르려다가 다시 차디찬 물속으로 떨어져 죽어 가는 장면과 또다시 오르다가 다시 떨어지는 모습들, 그 속에서도 주인공 덕수는 어린 동생에게 여기는 운동장이 아니고 놀러 가는 곳이 아니라고 오빠의 잔등을 꼭 잡으라고 부탁하는 주인공의 당돌한 모습과 그 작은 손으로 굵은 밧줄을 억세게 잡고 한발 한발 톱아 오르는 모습과 군함에 올라서야 등에 업었던 동생이 떨어진 줄 알았고 덕수의 아버지는 떨어진 딸을 구하기 위해 배위에서 내렸습니다.
우리 탈북자들이 살기 위해 두만강을 건너 목숨을 걸고 이곳 남한으로 오는 장면들과 별로 다를 바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해보니 더더욱 이 비극같은 현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에서 더더욱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와 생리별이 아닌 생리별에 어린 몸으로 가장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배선장이 꿈이었던 덕수는 해양대학에 합격했지만 가족을 위해 독일에 탄부로 일을 하러 떠났고 그는 칠흑같이 캄캄한 탄광에서 밤낮 석탄을 캐면서도 그리고 갱이 무너져 그 속에 묻혀 있으면서도 오로지 가족들만을 그리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 왔지만 동생 결혼자금을 위해 또다시 기술자로 베트남 전쟁 터로 가게 됩니다. 저는 영화에서 가슴에 깊이 와 닿는 말이 있습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명언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저에게도 말 못할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었기에 이곳까지 자유를 찾아 올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어제 오늘이 아닌 지금 이 순간에도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내 고향 주민들을 생각했고 살길을 찾아 두만강을 넘다 죽어간 사람들과 강제 북송되어 정치범 수용소로 혹은 공개총살을 당한 내 고향주민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KBS 방송국에 출연해 미국으로 입양한 누이동생, 그 난리 통에 등에서 떨어뜨렸던 누이동생을 찾게 됩니다. 언제이면 우리도 당당하게 텔레비전에 나와 식량난으로 헤어진 가족들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더불어 어린 주인공 덕수가 어린 시절부터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부산 국제시장에서 잔뼈가 굵었고 독일과 베트남에서 한순간도 본인을 위해서는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오로지 가족을 위해 한평생을 살아 오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오직 자기 가족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고 또 주인공처럼 힘든 풍파를 겪으면서 더 힘을 내게 된다는 것이 우리 아버지들의 마음이라는 말이 정말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우리 부모들이 어렵고 힘든 시련과 어려움의 시기를 견디어 냈기에 오늘의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우리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