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들과 함께한 크리스마스, 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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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 명절로 북적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월은 흘러 또 한해가 지나갑니다. 한일 없이 또 한 살이 든다는 생각을 하니 지나가는 한해를 새삼 돌아보게 됩니다. 지난 한해는 정말 많은 일로 다른 여유적인 생각들을 할 시간조차 없을 만큼 바쁜 시간이었지만 즐겁고 행복했던 추억들도 많았습니다.

손전화기의 사진첩(갤러리)에 담겨 있는 사진들을 통해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들을 돌이켜 보고 있는데 요란한 손전화기의 벨 소리가 울렸습니다. 다름 아닌 9살 공주 손녀입니다. 이 할미에게 성탄절 선물 뭐 가지고 싶냐 는 손녀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제 법이었습니다만 결론은 할미에게서 성탄절 선물을 받고 싶어 미리 선술을 쓰는 손녀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밉지가 않았고 더 귀여웠습니다.

제 생에 제일 장하고 잘한 일은 조금 어려운 고생은 있었지만 이곳 천국 같은 한국으로 내 가족과 함께 온 것이고 또 하나는 눈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은 내 손자손녀들이거든요. 하기에 저는 시도 때도 없이 제일 먼저 찾게 되는 것이 손주들입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손주들의 맑고 밝은 목소리를 들으면 하루 피곤이 싹 가셔지기도 합니다. 또 괜스레 행복하고 마음이 즐거워지고 뿌듯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한국에서 부부 모임에 가도, 친구 모임에 가도 또는 전철을 타거나 버스를 타도 흔히 들을 수 있는 것이 손자손녀들 자랑입니다. 심지어 택시를 타도 택시 기사님을 통해 손자손녀 자랑을 들을 수 있는 아주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조금은 우스꽝스럽지만 저에게만 주어지는 행복과 기쁨이 아닌가 하는 착각 속에 있을 때도 있습니다. 하기에 저는 손주 녀석들로 인해 친구들에게 맛있는 밥을 산 적이 있습니다.

손자들이 없으면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만 성탄절 아침 일찍 손자 녀석들을 찾아 갔습니다. 조카 손녀까지 네 명의 손자들을 불러 앉혀 놓고 성탄절 선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다들 좋아라, 껑충껑충 뜁니다. 제일 작은 4살짜리 손녀는 빨간 산타 옷에 수염이 있는 산타 할아버지가 주는 게 아니어서 성탄 선물이 아니라고 합니다.

순간 제 입에서는 산타할아버지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척척 할아버지라는 이름이 튀어 나왔습니다. 껑충껑충 뛰던 손자 녀석들의 동작이 멈춰지고 모두 눈이 둥그레졌습니다. 재치 있는 조카가 인춤 말을 이었습니다. 먼 옛날에는 산타 할아버지 대신 아이들이 얘기를 잘 들어 주고 가르쳐 주던 척척 할아버지가 있었다고 말입니다.

사실 저는 자주 손자들에게 내 고향에서 사용하던 사투리를 쓰다가 실수를 할 때가 많습니다. 이곳 한국에는 성탄절에 산타 할아버지가 있듯이 북한에는 척척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북한의 척척 할아버지는 비록 빨간 옷은 입지 않았고 또 아이들에게 선물은 주지 않았지만 길고 흰 수염이 있는 할아버지가 학생들의 궁금한 질문과 물음에 척척 답변해 주는 모습이 한 주일에 한번쯤 텔레비전에 나왔거든요.

이곳 남한이든 북한이든, 우리 아이들에게는 누구나 할아버지들은 다 좋은가 봅니다. 제게도 외할아버지가 있었는데 키가 크시고 무뚝뚝하게 생겨 조금은 무서웠지만 뭐든지 좋은 것이 생기면 감추어 두었다가 평양 손녀인 저에게 먼저 챙겨 주셨거든요. 어린 시절이었던 그 때엔 잘 몰랐지만 내가 할미가 되고 보니 비록 무서웠던 할아버지였지만 마음속 깊은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고 보니 할미가 되어서야 나 자신의 할아버지에 대한 좋은 추억을 해보게 되네요.

오후에는 손자 녀석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 썰매장을 찾았습니다. 300m 되는 거리에 썰매를 끌고 오를 때에는 조금은 힘들어 했지만 썰매를 타고 쏜살같이 달릴 때에는 제법 어른스럽스럽네요.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소리도 막 질러 댑니다. 저 역시 손자 녀석들과 동심으로 돌아가 신나게 썰매를 타다 보니 이마에서는 땀이 비오듯 흘러내립니다.

누가 손자이고 누가 할미인지 분간하기조차 힘든 상황이라고 딸들은 말합니다. 손자 녀석들도 인제는 제법 할미와 농담도 척척 잘 합니다. 개구쟁이 손자 녀석들과 몇 시간을 신나게 땀을 흘리고 나니 배가 출출했습니다. 우리는 썰매장 근처에 있는 능이버섯 오리 백숙집으로 갔습니다. 개구쟁이 4명이 들어서니 그야말로 음식점이 꽉 찬 듯 보이기도 합니다.

썰매 타느라 신나게 놀던 때와는 다르게 백숙이 조금 늦어지자 개구쟁이 녀석들은 배고프다고 졸라 대기도 합니다. 드디어 푸짐한 음식상이 나오자 손자 녀석들은 좋아라 손뼉을 치며 또 한바탕 귀가 멍멍할 정도로 법석을 떱니다. 어미들은 조용하라고 합니다만 오랜만에 사촌들이 모여 좋아하는데 그냥 놔두라고 했습니다.

저에게는 마냥 귀엽고 사랑스럽고 대견할 따름입니다. 올 한해는 첫 시작도 손자 녀석들과 했습니다만 다사다난했던 한해 마무리 역시 눈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은 금쪽같은 손자 녀석들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추억으로 마무리를 했네요.

새해에도 내 손자들이 아프지 않고 보다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