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마음 아프고 쓸쓸한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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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이었습니다. 추석은 한국 4대 명절중의 하나로 음력 8월15일에 쇱니다. 한가위라고도 하며 예로부터 설, 단오, 추석이 3대 명절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한해 농사를 끝내고 오곡을 수확하는 시기이므로 명절 중에서 가장 풍성한 명절이기도 합니다. 조상님들 상에 바치는 음식은 햇곡식으로 준비하여 조상들에게 선보이며 1년 농사의 고마움을 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추석은 예로부터 오늘까지 우리 민족의 고유한 명절로 남과 북 따로 없이 자리 잡았습니다. 북한에서는 추석이 그리 큰 명절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다만 추석을 공휴일로 정하고 추석 아침에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가서 여름비에 무너진 묘를 보수하고 벌초를 하는 등 조상의 산소를 찾아가 성묘하는 것을 중요한 전통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은 남한과 북한의 공통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추석 일주일 전부터 시골마을 어귀에는 '풍성한 한가위, 고향에 오는 것을 환영합니다.' 라는 현수막들이 걸려 있고 도시 사람들은 고향으로 간다는 기분에 모두가 들떠 있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나도 세 아이를 잔등에 업고, 안고, 손목을 잡고 지하전철을 타고 친정집으로 찾아 가던 옛 시절을 추억해보곤 합니다. 한국의 추석 풍경을 볼수록 부러움과 쓸쓸함이 겹쳐집니다.

고향을 떠난 지 벌써 15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한 번도 고향을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추석을 앞둔 며칠 전부터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의 모습이 꿈속에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항상 부모님에게 죄를 짓고 사는 것만 같은 심정이기에 설 명절과 추석이 오면 홀로 창가에서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부모님 생각과 고향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올해 추석은 더욱 마음이 아프고 쓸쓸한 추석이었습니다. 두 번 다시 기억하기 싫지만 몇 달 전 새벽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남편이 사망했습니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 앞에서 처음에는 너무도 당황스럽고 많이 놀라기도 했습니다만 추석이 되어 저는 큰딸과 아들 그리고 다섯 살짜리 손녀와 함께 고양시 벽제 통일로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는 예원 추모관을 다녀왔습니다.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집에서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마을버스를 타고 전철을 여러 번 바꿔 타면서 2시간이 조금 지나 목적지인 예원 추모관 납골당에 다녀왔습니다. 어쩌면 울적하고 쓸쓸한 마음을 조금 달래기 위한 마음에서 돌아서 갔는지도 모릅니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사진 속의 남편은 한마디 말도 없이 물끄러미 저를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요즘 건강도 조금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경도 많이 예민해졌습니다. 저는 추석에 가면 꼭 한 번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습니다. 1층에서 구입한 작은 꽃묶음을 유리문에 붙여 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 뭐가 그리 바쁜 게 있어 급히 갔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가네. 1년 못 살고 그렇게 매정하게 갈 바엔 애당초 나를 만나지나 말지,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가 전부인가부지? 내가 비록 애교가 없어 표현 한 번 제대로 못했지만 사실은 당신을 무척 좋아했는데...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당신 역시 이 무뚝뚝한 나를 너무도 좋아했다는 사실 알고도 남음이야. 이제 보니 내가 너무 부족한 인간이었어. 지금 내가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고 아파. 좋은 곳에서 당신은 아프지 말고 아무 근심 없이 잘 있어. 당신생일에 또 올게." 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저는 평소에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응석을 부리는 것 같은 생각에 조금 민망스러워 손수건으로 눈을 찍으며 제 옆에 서있는 손녀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손녀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왜 아무 말 안 해?" 저는 이렇게 묻는 어린 손녀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 1층으로 내려오면서 "할아버지는 하늘나라 좋은 곳에서 항상 내려다보고 있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제가 좋아하는 간장 게장을 먹으러 제부도에 갔던 추억과 강원도 속초에서 친구들과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들을 새삼 추억해 보니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언제든 통일이 되면 고향에 있는 가족들이 이곳 남한에 와서 찾아 볼 수 있게 북한 가족사진과 본인 사진, 그리고 평상시 애장품인 손목시계를 납골함에 함께 넣어 주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오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슬픔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이곳 대한민국이야 말로 북한에서 바라던 천국 같은 세상이 아닌가하고 말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상상도 할 수 없고 생각조차도 할 수 없는 한 장의 그림과도 같은 호화스럽고 고급스러운 궁전 같은 호텔에 납골함을 모셔져 있는 남편은 비록 죽었어도 원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 추석명절 역시 너무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보냈을 고향 주민들도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