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보는 한반도 역사] ⑮불운의 왕 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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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왕 고종. 그는 조선의 연호를 광무라고 고치고 또 국호를 대한제국이라고 바꾸었습니다. 대한제국의 황제가 된 고종은 최초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홍범14조를 반포하고, 이용익과 이채연 등의 인물을 등용해 광무개혁을 실시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세도정치의 폐단이 극에 달해 무능한 양반들에 대한 민중세력의 불만이 커지고 또 외부에서는 일본과 서양 열강의 침략 세력이 밀려오고 있던 혼란기에 왕권을 잡은 고종은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오늘 날 '불운의 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바로 보는 한반도 역사 오늘은 조선 말기의 왕 고종에 대해 살펴봅니다.

1800년대 중반 조선사회는 커다란 변화와 존립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흥선 대원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고종은 아버지의 힘으로 열 두 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됐습니다. 고종 즉위와 함께 조선의 실권을 쥐게 된 흥선 대원군은 실추된 왕권을 다시 세우고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펼쳤습니다. 그는 무능력한 세도 가문들을 몰아내고 능력 있는 인재들을 고르게 등용하는 한편 당파싸움의 원인이 됐던 600여개의 서원가운데 47개만 남기고 포두 철폐, 정리해 버렸습니다.

흥선 대원군은 또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비변사를 폐지하고 경복궁을 중건 하는 한편 의정부와 삼군부의 기능을 회복시켜 민생을 안정시키는데 일정 기여를 했습니다. 그러나 흥선 대원군의 이러한 개혁은 전통 체제 안의 개혁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고 일부 역사학자들은 지적합니다. 경복궁 중건으로 인한 재정적 압박은 백성들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들고 또 외세 침투를 막기 위해 통상 수교 요구를 거절하고 또 천주교인들에 대한 탄압은 결국 미국과 프랑스의 침략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조선은 흥선 대원군의 폐쇄정책으로 외세의 침략을 일시적으로 저지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과적으로 조선의 문호 개방을 늦추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아버지의 그늘 밑에서 왕권을 발휘하지 못하던 고종은 부인인 명성황후와 그 일가족의 공작에 따라 대원군을 섭정에서 물러나게 하고 고종이 친정, 즉 직접 나서서 나라를 다스리게 됩니다. 그러나 다시 명성황후와 그 일족인 민승호, 민겸호 등 에 의한 세도정치가 시작돼 고종은 실질적인 왕권을 발휘하지 못할 뿐 더러 아버지인 흥선 대원군과 부인인 명성황후 간의 세력 다툼에 휘말리게 됩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오늘 날까지도 고종은 무능력하고 운이 없는 왕이라는 오명을 얻고 있습니다. 남한 동국대학교 대외교류연구원의 하원호 교수는 남한 역사학계의 고종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말합니다.


하원호

: 고종에 대한 평가는 남쪽에서는 두 갈래이다. 부정과 긍정이다. 고종에 대한 평가는 고종은 나름대로 근대화를 하려고 했는데 일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합방으로 갔다는 의견... 부정적인 쪽은 고종이 가지고 있는 여러 정치적 한계 그리고 고종은 국가보다는 왕권을 더 생각했다는 면이 강하다. 국권을 지키기 보다는 왕권을 지키기에 급급했고 그 결과가 결국 식민화로 가는 중요한 동기가 됐다고 평가한다.

조선의 26대 왕 그리고 대한제국의 첫 황제였던 고종. 남한에서 그의 삶에 대한 인식은 흥선 대원군과 명성황후 사이에서 휘둘리다가 맥없이 사라져간 조선에서 가장 나약한 임금이었다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일부 고종을 동정하는 사람들은 격변의 시기에 홀로 서야 했던 고종에게 있어서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 이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고종은 자신이 버텨내야만 나라가 무너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의견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에서 고종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요? 북한의 역사학계는 다른 조선의 군주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고종에 대한 역사적 언급도 거의 없습니다. 다만 그 당시 시대적 흐름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고 하원호 교수는 말합니다.


하원호

: 고종 자체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고종 자체보다는 한말시대의 관리제도나 정권의 한계를 지적하는 쪽이다. 고종 자체를 직접적으로 언급할 값어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원호 교수의 말대로 북한에서 고종은 이미 잊혀진 인물입니다. 그렇지만 남한에서는 최근 고종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의 통치력이 결국은 조선을 식민지로 몰아넣는 결과를 가져오기는 했지만 그가 겪어야만 했던 고뇌와 복잡한 생각들은 후손들인 우리가 다시 한 번 되돌아봐야 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보는 한반도 역사 진행에 이규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