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 그는 한반도 역사의 민족주의사관을 성립한 역사학자였지만 언론인으로 또 독립운동가로도 활동한 인물입니다. 그가 세운 민족주의 사관은 일제의 식민사관을 극복하는데 큰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근대사학의 기초를 확립했습니다. 바로 보는 한반도 역사, 오늘은 단재 신채호의 민족주의 사관과 그의 연구가 오늘 날 국사연구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1880년 충남 대덕군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 부터 할아버지의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며 역사책인 '통감'과 '사서삼경'을 통달했습니다. 스물다섯의 나이로 성균관 박사가 된 그는 을사조약이 채결되자 관직을 버리고 독립운동에 가담해 민족의식 양성에 힘썼습니다. 신채호의 이러한 활동과 사상은 그가 세운 민족주의 사관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신채호의 역사관을 연구하는 남한 이화여자 대학교 신용하 석좌교수는 말합니다.
신용하
: 신채호 선생은 한말 국권회복운동을 벌이며 민족주의 사상을 전개했다. 그의 역사학과 한국근대 역사학도 그의 국권회복운동과 관련된 학문의 한 부분으로서 확립됐다. 그의 민족주의 사관은 그가 독창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당시 한국의 역사학계를 지배하던 사관은 실증사관이었습니다. 실증사학자들은 학문의 중립성과 객관성을 명분으로 일제의 식민체제를 묵시적으로 동조하는 한편 일본 학자들의 식민사학을 구축하는데 협력했습니다. 신채호의 민족주의 사학은 이러한 식민사관을 극복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고 신용하 교수는 말합니다.
신용하
: 최초의 작품은 1908년 단재 신채호 선생이 쓴 독사실록이라는 저서이다. 이 저서는 그전까지 역사학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전환시키고 민족주의 사관에 입각하여 우리나라 고대사학으로 부터 발해 시대 사학까지를 새로 체계화 했다. 그래서 한국 역사학의 기초를 확실하게 재정립했다. 이것이 그의 가장 큰 업적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신채호가 한반도 상고시대의 역사를 서술한 '조선상고사'를 보면 그의 역사이론의 기본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역사를 '아'와 '비아'의 투쟁으로 보고 있습니다. 신용하 교수의 설명입니다.
신용하
: 아와 비아의 투쟁 역사관은 독사실론,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 등에 실려 있는 그의 논문들에 관철되고 있는 그의 사관이고 역사학 방법이다. 당시 신채호 선생이 생존해 있을 때까지의 모든 역사는 주체가 아이고 비주체가 비아사이의 투쟁역사이다. 기본적으로 아는 한국 민족이고 비아는 외국 특히 주변국 열강들의 투쟁관계로 이뤄진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그렇지만 신채호 선생의 민족주의 사관은 근대까지 남한의 강단학자 즉 주류를 이루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크게 각광받지 못했습니다.
특히 1950년대 까지만 해도 신채호에 대한 연구는 금기시 됐었고, 민족주의 자체가 이승만 정부에서는 언급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4.19 혁명이후 민족주의의 저변이 넓어지고 신채호의 사상과 그의 연구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고 신용하 교수는 말합니다.
신용하
: 근대사학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사학은 실증주의 사학으로 논문을 쓰더라도 각주를 상세히 붙이고 하는 사학이었다. 그러나 단재 선생의 사학은 각주를 붙이는 일이 없고 주는 보통 본문 안에 넣어서 쓴다. 그래서 형식상 실증이 없는 것으로 오해를 한다. 사실 신채호 선생의 사학은 문언고증 사학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일본에서 들어온 사학보다는 신채호 선생의 사학을 계승하는 새로운 경향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북한의 역사학계에서도 신채호 선생의 민족주의 사관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2007년 12월에 발간된 북한의 학술 계간지 '역사과학'을 보면 신채호 선생의 논설 '독사신론'에 대해 민족주의적 사학형성에 진보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또한 단군을 종전의 신화적 인물로서가 아닌 역사적 인물로 보려한 것도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화여대 신용하 석좌교수는 북한의 주체사관과 신채호 선생의 민족주의 사관에는 일부 유사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전혀 다른 역사관이라고 설명합니다.
신용하
: 북한사관은 계급사관이고 민족주의 사관은 부차적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전혀 다른 사관이다. 그러나 신채호 선생의 고조선사 고구려 역사 등은 그가 개척해 놓은 것이고 북한 사학자들이 고구려 부분에서 신채호 선생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비록 지금까지는 신채호 선생의 '민족주의 사관'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실증사관의 그림자 밑에 있었지만 신채호 선생의 연구에 대한 실증자료가 계속 나오고 있고 또 젊은 사학자들 사이에 민족사관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고 있어 그의 한반도 역사에 대한 시각이 앞으로 역사교육에도 반영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