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생생뉴스] LA 타임스 납북 어부의 사연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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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로스엔젤스를 중심으로 서부지역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소식과 한인사회 소식 등을 전해 드리는 LA 생생뉴스 진행에 재미언론인 정현숙 씨입니다.

여러분 안녕 하세요? 이 시간에 전해드릴 소식입니다.

30년간 북한에 억류되는 바람에, 갓 난 아기 때 남에게 넘겼던 아들을 영영 잃게 된 탈북자의 가슴 아픈 얘기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습니다.

'북한 탈출'의 저자 마이크 김이 로스앤젤레스를 다녀갔습니다.

미국에 사는 이북 5도민 1세들의 소망은 죽기 전, 다시 한 번 북쪽 고향땅을 밟는 것 이라고 재미 남가주이북도민협의회의 회장은 말합니다.

미국의 일간신문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지난 주 보도한, 애끓는 한국남성의 얘기가 이곳 한인들은 물론, 많은 미국인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로스앤젤레스를 비롯해 남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가장 많은 독자를 갖고 있는 신문입니다.

이 신문이 보도한 가슴 아픈 사연의 남성은 현재 서울에 사는 탈북자 이재근 씨입니다. 이 씨는 지난 70년 고기를 잡던 중 납북되어 북한에서 30년을 지내다 탈출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뉴스가 된 것은 30년이란 세월을 북한에 억류되었었기 때문이 아니라 북한에 납북되는 바람에 갓 난 아기 때 헤어진 자식을 영영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씨는 육이오 전쟁 후유증으로 모두가 어려웠던 1961년 5월, 어린 아내와의 사이에 첫 아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깐, 아내는 몇 개월 후 사망했고 이 씨와 아기마저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이웃 여인들과 절을 찾아다니며 아기에게 젖과 음식을 얻어 먹이던 이 씨는 이대로는 도저히 아기를 키울 수 없다고 판단해서 고아원에 데려다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고아원에 가던 중 한 가게주인으로부터, 돈 많은 은행가의 아들이 딸만 둘이 있고 아들을 낳지 못해 대려다 키울 아이를 찾으니, 그곳에 보내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며칠 후 이씨는 8개월 된 아들을 데리고 저택을 찾아갔습니다. 정말 두 어린 여자아이들이 놀고 있었고, 주인은 만약 아들을 되찾고 싶으면 10년 후 3천 만 원, 미화 3만 달러죠 그 돈을 가져오라며 아기를 받아갔습니다. 당시 3천 만 원이면 도저히 마련하기 힘든 거액이었으니 되돌려 주지 않으려고 작정한 듯 했지만 아들을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 후 군대를 다녀온 이 씨는 아들 찾을 돈을 마련하기 위해 위험하지만 북한과 가까운 서해에서 고깃배를 탔습니다. 갖가지 힘든 고비를 넘겨가면서 이 씨는 수년간 알뜰살뜰 돈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조업 중에, 이씨는 25명의 다른 선원들과 함께 납북되었습니다. 아들을 맡긴지 9년이 되는 1970년4월, 이 씨가 서른두 살 때였습니다. 이 씨 등을 납치한 북한군은 선원 중 건장한 일곱 명을 골라 간첩훈련을 시켰습니다.

이 씨도 그중 한명으로 뽑혔습니다. 2년간의 훈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혹독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훈련이 끝나자 사상불순으로 간첩활동에 부적합하다며 시골로 보내졌습니다. 이 씨는 그곳에서 의혹의 시선을 받으며 노동일을 하던 중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북한에서도 늘 아들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탈출기회를 엿보던 이 씨는 간첩훈련 받을 때 배운 기술을 이용해 드디어 아내와 북한을 탈출하는데 성공했고 중국을 거쳐 마침내 2000년에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서울에 오자마자 이 씨가 한 일은 갓난아기 때 남에게 맡긴 아들을 찾는 일이었죠. 그러나 아들을 맡긴 그 집은 사라졌고 주위에는 아파트가 들어섰으며 30년이란 세월은 아들의 흔적을 찾아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 씨는 납북생활을 회고한 '나의 북한생활 30년'이란 책을 출판했습니다. 책이 나오자 신문, 방송에서 인터뷰를 요청했고 이 씨는 그때마다 아들이야기를 했죠. 그러나 아직까지도 아들의 소식은 들을 수가 없습니다.

이씨는 8개월 때 헤어진 아들의 얼굴이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이 씨는 지금 일흔 둘입니다. 아들에게 진 죄도 갚을 수가 없지만, 이다음에 죽어서, 먼저 간 첫 아내를 만날 때 무어라고 말해야 할지도 막막하다며 이 씨는 눈물짓습니다.

Bridge Music:

미국의 중부도시 시카고에서 재정기획 회사를 경영하며 편안히 살던 중, 중국여행을 갔다가 만난 탈북고아로 인해 인생의 방향을 바꾼 한인 2세, 마이크 김 씨가 최근 로스앤젤레스를 다녀갔습니다.

마이크 김 씨는 자이언트 로봇이라는 책방에서 그의 책 '북한 탈출'을 구입하는 독자들에게 서명도 해주고 독자들과 이야기도 나누는 행사를 하기위해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했던 것입니다.

행사가 있었던 책방은 한인촌에서 조금 떨어진 미국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었는데요 약 30명의 미국인들이 이날 참석해서 마이크 김과 직접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김 씨가 2008년에 출간한 책 '북한탈출'은 북한 주민들의 어려운 실상과 생명을 걸고 북한을 탈출하는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입니다.

김씨는 2001년 중국여행을 갔다 처음으로 탈북자를 보았습니다. 그 후 그는 탈북자에 대한 연민을 떨쳐버릴 수 없어 사업도 그만두고 일 년간 캘리포니아에서 북한관련 공부를 한 후 다음 해 다시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로부터 4년간 중국과 북한의 국경에 머물면서 수많은 탈북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굶주림과 성적, 종교적 탄압을 받는 북한주민과 탈북자들의 처참한 실상을 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탈북자들을 국경에서 탈출시켜 태국의 수도인 방콕 한국대사관으로 인도해주기도 했습니다. 중국, 북한 국경에서 탈북자를 인도받아 중국과 라오스를 거쳐 방콕 한국대사관으로 가기까지 그는 국경수비대원들, 길 안내자들로부터 총살 위협을 받는 등 수많은 역경을 겪었으나 굴하지 않고 끝까지 해냈습니다.

마이크 김 씨는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역에서 사는 동안 평양에서 온 유명한 북한 태권도 사범의 제자로 위장하기도 했는데요 실제로 그는 태권도 2단까지 됐다는군요. 한편 마이크 김 씨의 북한 탈출 이라는 책은 현재 미국에서 영화로 만들기 위해 대본 제작 작업이 한창입니다. 이 영화가 만들어져 상영되면 평양에서 방콕까지 이어지는 6천마일, 즉 9천6백 킬로 미터인데요, 그 길고긴 탈출 길에서 탈북자들이 겪는 참상을 전 세계인들이 알게 될 것입니다.

Bridge Music:

재미 남가주 이북도민협의회 이사회가 최근 로스앤젤레스의 제이제이 그랜드 호텔에서 열렸습니다. 이 협의회의 황경춘 회장의 말입니다.

황 회장: 여기 나성에 남가주 이북도민 협희회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함경북도, 함경남도, 평안북도, 평안남도, 황해도 그리고 경기도 강원도 등 미 수복지구가 속해있습니다.

새해 첫 모임인 이날은 북한의 각 도와 미 수복지구를 대표해서 나온 27명의 회장, 이사들이 참석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이북도민협의회가 올해 계획한 서울 방문, 이북도민 전체 행사, 이산가족 강연회와 상봉 문제 등이 논의됐습니다. 황 회장에 따르면 이북도민들이 모두 참여하는 행사는 비용이 많이 들어 작년에는 하지 못했는데요, 재작년에는 추석을 기해 모임을 가졌는데 약 500명의 북한 출신들이 참석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미국에 사는 북한 출신 한인들의 가장 큰 소망은 무엇일까요. 1세들은 모두 칠십이 넘은 고령으로 죽기 전에 북한 고향땅에 가보는 것이라고 황 회장은 말합니다.

황 회장: 지금 현재 남가 주에 계시는 북한 사람들은 고향인 북한 땅을 밟아 보는 것이 제일 큰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미국에서 한인들이 가장많이 살고 있는 로스엔젤스를 중심으로 한 남 가주 소식을 전해 드린 LA 생생 뉴스 로스엔젤스에서 정현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