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LA 를 중심으로 서부 지역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소식과 한인사회소식 등을 전해 드리는 LA 생생 뉴스 진행에 재미 언론인 정현숙 씨입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 시간에 전해드릴 소식입니다.
-탈북자들의 사업 시작을 돕고 세금을 보고하는 강연회가 로스엔젤스에서 처음으로 열렸습니다.
-김정일의 경호원이었으며 지금 강원도 시골에서 오리농장을 하는 탈북자, 이영국 씨의 얘기를 로스엔젤스 타임스가 보도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한인남성들이 직장에서 여성에 비해 성차별을 당한다고 불평합니다.
탈북자들을 위한 창업, 자신이 직접 시작하는 개인 사업과 세금보고 강연회가 지난 19일 저녁 로스앤젤레스 한인촌에 있는 가주빌립보 교회에서 열렸습니다. 원래 로스앤젤레스는 한겨울에도 눈은커녕 비도 많이 오지 않는 따뜻한 지역이죠. 그런데 금년에는 예년에 비해 매우 춥고 벌써 두 달 동안 비가 많이 내리고 있어서 대부분의 로스앤젤레스 주민들이 요즘 감기로 고생하고 있는데, 이날도 강연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비가 억수로 쏟아졌습니다. 그런 날씨 속에서도 이날 탈북자 1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이 강연회를 마련한 재미탈북자지원회의 로베르토 홍 변호사는 로스앤젤레스의 전체 탈북자 수가 50여명임을 생각하면 많이 참석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강연회가 시작되기 전, 30대의 한 여성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cut: 미국에 오신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한 6년 정도요
지금 무슨 일을 하시나요?
-----전업주부입니다.
그러면 남편은 어떤 일을 하시나요?
-----건축 일을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어떻게 오셨어요?
-----세금 설명회 들으러 왔습니다.
세금은 미국에 오셔서 계속 내셨어요?
-----네
그리고 또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 해마다 세금보고 하는 것이 액수가 달라서 저희가 준비 할 서류가 무엇이 있는지 그런 것을 문의하고 싶어서 왔어요. 지난해 돈 많이 버셨나요?
-----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이날 행사에는 재미중소기업협회 회원 두 명이 강사로 나왔는데요, 재미중소기업협회는 자기 사업을 하는 한인들이 모인 단체입니다. 강사들은 미국에서 개인사업을 시작하는 방법 그리고 일 년에 한 번씩 꼭 해야 하는 세금보고에 대해서 알려주었습니다. 석 달 전 부인 김정희 씨와 한인촌 올림픽 거리에 순대식당을 차린 김철 씨, 얼마 전 이 시간에 소개해 드렸죠, 그분도 참석해서 경험담을 들려주었습니다. 이 같은 내용의 강연회가 열린 것은 2007년10월 탈북자지원회가 생긴 후 처음이랍니다. 로베르토 홍 변호사는, 언어문제 등으로 탈북자들이 미국에서 성공하는 길은 소규모 사업 밖에 없는데 사업에 대해 너무 몰라서 이 강연회를 마련했다며 얼마 전 사업을 시작한 한 탈북자도 절차를 몰라 개업이 너무 늦어졌고 힘들었다고 말합니다.
홍 변호사 : 앞으로 탈북자들이 소규모의 사업하는 것이 아메리카 드림을 이루는 수밖에 없어요. 전문직을 갖기가 아무래도 언어나 교육문제로 힘들죠. 얼마 전에 탈북자 한 분이 비니니스, 사업을 시작했는데 사업관련에 대해 너무 놀라 많이 늦어져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래 이런 강연회가 도움이 될 것 이라고 보고 이 강연회를 열었습니다.
이날 참가자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홍 변호사: 제가 얘기를 나누어 보니까 반응이 참 좋았어요. 그런데 문제는 사업을 곧 시작할 사람이 많아야 한 두 사람이고 또 이들도 앞으로 1-2년 후라 곧 사업을 할 조건이 아니지만 한 두 명이라도 도움을 받고 이런 강연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당장 사업을 시작할 조건이 안 되는 탈북자들이라 이날 강연이 당장 도움은 안 되지만 사업의 이모저모를 알려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는 말이었습니다.
얼마 전 아들을 잃어버린 탈북자 이재근 씨의 애끓는 이야기를 보도했던 로스앤젤레스의 최고 신문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지가 이번에는 김정일의 경호원이었던 탈북자 이영국 씨를 소개했습니다. 이 씨는 지금 삼팔선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강원도 농촌에서 만 마리의 오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이 씨가 김정일을 처음 본 것은 18살이던 1979년 이었습니다.
김정일은 미제 고급 승용차인 링컨 타운 카를 타고 있었으며 이 씨는 그 후 2년간의 훈련을 거쳐 김정일을 보호하는 120명의 경호원 중 한명으로 발탁된 것입니다. 김정일의 경호원으로서의 삶은 금으로 만든 감옥에서 생활하는 것과 같았답니다. 고향에도 갈 수 없었고 김정일의 첩보원이 자기를 감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끊임없었습니다. 그래도 먹는 것은 부족함이 없었던 이 씨는 경호원으로 평양에 갇혀 있는 동안 일반 북한주민들의 생활도 옛날보다는 나아졌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은 1988년 경호원을 그만두자마자 깨달았습니다. 고향으로 내려가는 기차에서부터 이 씨는 북한인들의 처참한 실상을 감지했습니다. 고향 집에서는 더욱 가슴이 무너졌습니다. 겨우 오십에 들어선 부모들이 영양실조로 마르고 등은 굽어져 칠십 노인으로 변해버렸던 것입니다. 이 씨는 전직 경호원 신분을 이용, 중국비자를 받아 탈출했습니다.
그러나 곧 붙잡혔습니다. 북한으로 끌려간 그는 요덕수용소로 보내졌고 4년간 죽을 고생을 한 뒤 또다시 중국으로 탈출해 상선을 타고 밀항해서 드디어 남한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지금도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한동안은 납북되는 두려움에 떨었지만 지금은 두 마리의 잘 훈련받은 독일산 셰퍼드가 그를 지켜줍니다. 물론 만 마리나 되는 오리사육은 쉽지 않습니다. 오리 똥 속에 뒹굴 때도 있고 손해를 볼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는 독재자의 굴속을 벗어난 지금의 순박한 생활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남쪽에 와서도 어려움을 겪었고 실패도 했지만 그래도 너무 좋다고 하는군요. 자유로우니 좋다고 말합니다.
미국에서는 남녀 성차별을 하면 큰 일 납니다. 같은 일을 하는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남성보다 봉급을 적게 준다던지 반대로 남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에 비해 배려를 덜 한다던지 하는 일들이 모두 성차별이지요.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많은 한인남성들이 직장생활에서 남자라는 이유로 여성들에 비해 성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로스앤젤레스의 한인 결혼중개회사가 결혼상대를 구하러 온 마흔 살 미만 남성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0퍼센트가 직장에서 무거운 짐을 나르거나 망가진 물건을 고치는 궂은일을 모두 남자에게만 시킨다며 이는 성차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복사기, 컴퓨터 등이 고장 났을 때 당연히 남성 직원이 고쳐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못 고치면 무능력한 남자로 보일 수 있어 신경이 쓰인 다네요. 직장 윗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도 여성들은 핑계를 대며 일찍 도망가지만 남자들은 끝까지 남아 잔심부름을 해야 한다고 불평했습니다. 또 밖에서는 여자와 데이트할 때 식사비용을 혼자 부담한다든지, 운전을 해주어야 하는데 그것도 남성 차별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도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활발한 것 같던데 그곳에서는 어떤지요. 사회진출로 남녀가 동등해 진 것은 좋은 일이지만, 예전에는 당연히 남자 몫이었던 일들을 남성들이 거부하면서 성차별로 받아들이니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정말 진리인 것 같군요.
미국에서 한인들이 가장 많이 사는 로스엔젤스를 비롯한 서부의 소식을 전해드린 'LA 생생 뉴스' RFA 정현숙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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