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생생뉴스] 유나리 회고록 사인회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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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LA 를 중심으로 서부 지역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소식과 한인사회소식 등을 전해 드리는 LA 생생 뉴스 진행에 재미 언론인 정현숙 씨입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 시간에 전해드릴 소식입니다.

-북한에 백사십 일간 억류되었다가 풀려난 후 북한 억류 회고록을 쓴 유나 리 기자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책 서명회를 가졌습니다.

-조선족인 중국계 한인들이 중국 촌 보다 한인촌에 더 많이 살고 있으며 그 이유는 일자리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재 북 아프리카와 아랍지역에서 불붙듯이 일어나는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이 북한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로스엔젤스에 있는 남 가주 대학교수가 전망했습니다.

북한에 백사십 일간 억류되었다가 풀려난 후 북한 억류 회고록을 쓴 유나 리 기자가 지난 2일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자신이 쓴 책에 서명하고 대학생들을 만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날 유나 리 씨의 책 서명 회에는 백 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모여 이 씨의 북한 억류 생활에 큰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이 씨가 쓴 책의 제목은 '지금은 더 큰 세상, 종교, 가족 그리고 자유에 대한 회상'입니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미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던 미국 국적의 유나 리 씨는 2009년3월17일 중국계 미국인 기자 로라 링과 함께 중국과 북한 국경에서 탈북자 취재를 하던 중 잠깐 실수로 북한 쪽으로 들어갔습니다.

국경을 넘었음을 안 순간 돌아가려했으나 북한군에 붙잡혀 국제적인 뉴스가 되었습니다. 미국정부는 이 씨의 석방을 위해 노력했으나 5월 재판에서 12년의 노동 형을 선고받았고 결국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과의 협상으로 8월4일, 백 사십 일 만에 풀려나 남편과 어린 딸에게 돌아왔던 것입니다. 이 씨는 이 책에서 왜 중국과 북한의 국경으로 갔는지, 참담한 억류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했는지, 어떻게 풀려나게 되었는지, 삶을 잃어버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반대로 그것을 되찾는 기쁨은 어떤지 자세히 적었습니다.

생전 처음 겪는 육체적, 심리적인 고통은 함께 잡힌 동료 로라 링 씨도 마찬가지였지만 유나 리 씨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심리적 고통이 더했답니다. 부모가 생존해 계시는 서울은 200킬로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데 완전히 바깥 세계와 단절돼 내일 일을 알 수 없었고, 같은 민족인 북한군으로부터 배신자라는 소리를 듣는 괴로움이 너무 컸다고 말했습니다. 이 씨의 회고록은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나라 북한에서의 생존을 위한 비참함 뿐 아니라 그 같은 경험을 통해 새로이 깨닫게 된 종교와 사랑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도 함께 들려줍니다.

-남 캘리포니아 지역에 거주하는 중국계 한인들의 수가 만 명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보통 조선족으로 불리는 중국 출신 한인들의 단체인 가주 중국동포 연합회와 로스앤젤레스 주재 중국 총영사관에 따르면 이들 중 대부분은 로스앤젤레스 한인촌에 거주하며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로스앤젤레스의 한국어 일간신문인 한국일보가 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 달 말 보도한 바에 따르면 조선족들의 60퍼센트 이상이 한인촌에 살고 있으며 중국 촌에 터를 잡은 조선족은 30퍼센트에 그쳤습니다. 이들이 중국촌보다 한인촌을 미국에서의 생활 근거지로 삼고 있는 이유는 인맥이 있어 정보 취득이 쉽고 일자리가 더 많기 때문이라는군요. 가주 동포 연합회 초기 설립자중 한 사람인 조동훈 씨의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cut: 대부분 한인사회에서 일하는 분들이 불법으로 와서 친척들이나 먼저 온 사람이 한인사회에서 일하기 때문에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꽤 많아요. 요즘에는 이제 다른 곳에서 일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처음에 와서 자리 잡기 전에 식당이나 건축업에서 일하기가 좋죠. 언어도 문제고 중국 사람들은 워낙 경쟁이 심해서 한인촌에서 일하는 것 보다 수입이 적을 겁니다.

하지만 조 씨는 그래도 조선족들은 어디까지나 한국인이라기보다는 중국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cut: 한국말을 하는 중국 사람이라고 보면 정확할겁니다. 여기서 자라나는 한국 애들이 한국하고 미국을 선택하라면 미국을 선택하는 것같이 중국에서 자란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말을 하는 중국 사람입니다.

한편 조선족들의 체류 신분은 대부분이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획득한 상태며 불법 체류 자는 일반인들의 생각보다 적었습니다. 이들의 생활소득은 낮은 편이지만 그래도 대부분 미국생활에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이들은 미국생활의 가장 큰 애로점으로 경제문제나 외로움 보다는 영어문제를 꼽았습니다. 조선족의 미국 이민은 미국과 중국이 수교협정을 체결한 1979년부터 시작되었지만 1990년 설날 모임만 해도 겨우 15명이 모임을 가졌었을 만큼 대부분의 조선족들은 그 후에 미국에 왔습니다. 가주 중국 동포연합회에 따르면 80년대에는 소수의 국비유학생들이 이민을 왔고 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는 일반인이 많이 왔는데, 요즘은 중국이 많이 발전했고 한국기업의 현지진출이 많아 미국이민 행렬이 예전보다는 적다고 합니다.

-로스앤젤레스 한인촌에서 단체를 이끌고 있는 한인이 친북 성향 언론인에게 '미국을 떠나라' 는 협박전화를 하루에도 몇 차례 씩 한 혐의로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협박을 했다고 고발당한 한인은 오래 동안 불우한 사람들을 돕는 단체의 회장으로 한인촌에서 널리 알려진 사람입니다. 경찰은 친북 성향 언론에 걸려온 협박전화를 추적한 결과 이 단체장이 한 것임을 알아냈는데 이 단체장은 한국에 있는 친북 성향의 한 목사를 이 언론이 훌륭한 사람으로 보도한 것에 분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단체장은 사실이 보도된 후 로스엔젤스의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북한 인권 운동을 펼치겠다고 말했습니다.

-일제 강점에 항거하고 조국 독립을 열망한 3.1절이 얼마 전에 지났죠. 1919년에 봉기했으니 금년이 92주년입니다. 이날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한인회, 광복회, 재향군인회, 삼일 여성 동지회 등 모든 한인단체들이 기념식을 가졌고 기독교, 불교, 천주교, 성공회 등 종교지도자들도 종파를 넘어 한자리에 모여 독립운동에 나섰던 선열들의 정신을 기렸습니다. 또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 한국 땅임을 미국인들에게 알리기 위해 미국여행중인 한국의 대학생들도 이날 기념식에 참하는 등 로스앤젤레스의 모든 한인들이 다시 한 번 애국심을 되새기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북한인권보호운동 단체인 링크가 곳곳에 지부를 두고 활발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링크의 남가 주 대학 지부는 지난달 말 '북한에 대한 올바른 이해'란 제목으로 강연회를 열었습니다. 이 대학은 영어로 유에스 씨 대학인데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아주 유명한 사립대학입니다. 이날 강사는 이 대학의 국제관계학 교수인 데이빗 강 교수였으며 이십 여명의 미국학생들이 참석했습니다. 이날 강연에서 강 교수는 현재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와 아랍 권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민들의 민주화 운동이 북한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얘기 했습니다. 그는 북한에서는 민주화 운동이 일어날 수 없다고 했는데요, 그 이유는 한마디로 북한 시민들에게 힘이 전혀 없기 때문이라는 거죠. 현제 시민반란이 일어나는 나라들은 어느 정도의 국민들의 입김이 있지만 북한의 권력은 지도층에만 몰려있기에 지도층에서 반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민주화 운동은 일어날 수 없다는 겁니다. 강 교수는 또 현재 북한은 전쟁을 일으켜봤자 한미연합군에게 패할 것을 알기 때문에 조만간 전쟁이 일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로스엔젤스를 중심으로 남가주 소식을 전해드린 LA 생생뉴스 로스엔젤스에서 정현숙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