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생생뉴스] 평통지회 탈북자 초청 간담회 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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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LA 를 중심으로 서부 지역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소식과 한인사회소식 등을 전해 드리는 LA 생생 뉴스 진행에 재미 언론인 정현숙 씨입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 시간에 전해드릴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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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천영우 외교안보수석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전국 부의장.협의회장 합동회의에서 '2011년 한반도 통일정세와 정부 통일.외교.안보정책 추진방향'을 주제로 보고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남북한 평화통일을 실천하기 위한 자문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로스앤젤레스 지회가 지난 5일 탈북자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이 단체의 로스앤젤레스 지부가 탈북자들과 만나 식사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요, 이 단체는 최근 임원회의에서 탈북 한인 지원사업을 올해의 주요 사업 중 하나로 정한 바 있습니다. 이날 간담회에는 평화통일자문회의의 로스앤젤레스 지부장 이서희 씨와 재미탈북자 지원회의 로베르토 홍 회장, 그리고 탈북자 십여 명 등 약 20명이 참석했습니다. 평화통일자문회의의 이 회장은 그동안 미주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탈북자의 생활에 무관심했다며, 탈북자들의 어려움을 직접 듣고 현실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참석한 탈북자 이장호 씨입니다.

cut: 로스엔젤스에 사는 탈북자들과 민주평화통일회의 로스앤젤레스 지부의 위원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미국에 사는 탈북자분들의 고충을 들어보는 시간이었고 저희도 미국에서 살면서 느끼는 애로사항과 모든 것을 말씀 드리며 얘기를 나눈 좋은 기회였어요.

이 씨를 포함한 탈북자들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 미국까지 왔지만 아직 체류 신분이 해결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직장 구하는 일, 생활이 어려운 탈북자들도 있다며 탈북자들이 미국에 잘 정착해 살 수 있도록 한인사회의 따뜻한 시선을 부탁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한편 대학생 때 북한을 떠난 이 씨는 이제 마흔 가까이 되는데요, 그동안 중국은 물론 태국, 한국, 일본, 영국 등 많은 곳을 다녀봤답니다. 이 씨는 북경대학 유학생으로 처음 외부세계를 접했는데 중국의 첫 인상은 너무 지저분해 쓰레기장 같다는 것이었데요. 왜냐하면 평양은 너무 깨끗했으니까요. 그러나 그때는 지금보다 20년 전이었고 계절 또한 한겨울이었는데도 중국여성들이 아주 짧은 치마를 입고 멋을 내고 있었으며 그것을 보고 중국은 북한보다 훨씬 자유로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 씨가 한국에 간 것은 2001년이었는데 한국에서 대학에도 다녀보고 일본, 영국에 가서 영어공부도 해보다가 2009년 미국으로 왔습니다. 이 씨는 영주권을 받아 걱정 없이 사는 탈북자들도 많지만 아직 정착이 어려운 탈북자들도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그들 모두 언젠가 북한이 문을 여는 날 자신들이 도움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이 씨의 얘기입니다.

cut: 탈북자들의 오늘 이 자리에서 느낀 소감은 미국이 전 세계의 민주주의 표본이고 전 세계의 어떤 인종도 이곳에 와서 미국인으로 융합되어 모든 이들이 꿈을 실현해 가고 있다고 말 합니다 또 우리의 간절한 바람은 북한의 문이 열릴 때 미국의 참 민주주의 참 자유의 정치를 배워서 북한 재건에 힘쓰는 귀한 초석이 될 것을 다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3월10일 로스앤젤레스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샌페드로 항구에서 육이오 전쟁 당시 피난민을 구출했던 선박, 빅토리 호를 기리는 행사가 펼쳐졌습니다. 정식이름이 에스에스 레인 빅토리 호인 이 선박은 2차 세계대전부터 시작해서 육이오전쟁, 베트남전쟁에 모두 참여해 수많은 전공을 세웠으며, 특히 육이오전쟁에서는 흥남 피난민 철수 작전에 투입되어 7천명이 넘는 피난민을 구출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이 혹시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남한에서 나이 드신 분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운데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대중가요가 있습니다.

cut: (노래)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이런 노랩니다.

노래 제목은 ‘굳세어라 금순아’ 인데 이 슬픈 노래의 배경이 바로 흥남 피난민 철수 작전입니다. 남쪽으로 피난 온 남성이 흥남부두에서 헤어진 금순이에게 안부를 전하고 다시 만날 때까지 굳세게 잘 지내라.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사이는 변함없을 것이며 남북통일이 되면 만나서 함께 춤추자 라는 실향민의 아픔과 희망을 담은 내용입니다.

육이오 전쟁이 일어난 1950년, 중공군의 12월 2차 공세로 미군과 국군은 12월6일 평양을 내주고 삼팔선으로 철수 했습니다. 그러자 함흥, 원산 일대의 군인들이 고립되었죠. 그래서 흥남부두에서 백25척의 수송선이 동원돼 십 만 명이 넘는 미군과 국군의 철수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철수작전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다른 곳에서 생겼습니다. 그 살을 에는 엄동설한에도 불구하고 몰려드는 피난민들이었습니다. 공산정권에 치를 떤 수십만 북한주민들이 남쪽으로 가겠다며 끊임없이 흥남 항으로 밀려왔습니다. 예상보다 너무 많은 피난민이 몰려들자 미군과 국군은 중공군을 방어하면서 배가 닿는 대로 피난민을 철수시키기로 결정해 12월24일 마지막 엄호부대가 떠날 때까지 모두 9만8천명이나 되는 피난민을 탈출시킨 것입니다. 물론 구출되지 못한 피난민들의 숫자도 그와 비슷했지만 당시 여건에서는 그야말로 최선을 다한 것이었고 이 피난민 구출작전은 세계전쟁사에서도 찾기 힘든 인도적인 피난민 철수 작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역사적인 피난민 철수에 큰 몫을 했던 빅토리 호는 1989년 퇴역해 현재 샌페드로 항구에 역사적 기념물로 정박되어 있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육이오 전쟁에 참전했던 미국인을 포함 한국전참전용사들이 초청돼 흥남철수 피난민 작전에 대한 강의, 육이오전쟁 기록사진 전시회 등이 열렸습니다. 또 한인촌의 공연단체들이 한국의 전통 무용과 음악을 선사했고 태권도 시범도 있었습니다. 이날 참석자들은 모두 이 행사가 한국과 미국의 우호관계를 되새기는 좋은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로스앤젤레스의 함경남도 도민회가 김태영 씨를 새 회장으로 뽑았습니다. 새 회장 취임식이 지난달 말에 있었는데 7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함경남도 도민회는 매달 50명 정도가 모여 식사를 하고 고향 이야기 들을 나눕니다. 김 회장은 육이오 전쟁 당시 후퇴하는 국군을 따라 홀로 남쪽으로 내려왔으며 그 후 다시는 북한에 가지 못했는데,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네 형제들 중 동생 두 명만 아직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다른 실향민들도 모두 비슷한 사연들을 갖고 있다고 전합니다. 김 회장은 금년 일흔 여덟인데요, 대부분의 도민회원들이 모두 고령이어서 점점 회원 수가 줄고 있다고 합니다.

로스앤젤레스의 식당과 커피 파는 매점에서는 3월초부터 업소 밖에 있는 식탁에서도 10피트, 그러니까 3미터 안에서는 담배를 필수 없게 된다고 얼마 전에 말씀드렸죠? 그 금연 법에 대한 단속이 시작됐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점점 담배를 끊으라는 압박이 심해서 슬프기까지 하다며 우울해 하고 있습니다. 한 직장인은 점심식사 후 커피 매점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담배 한 대 피우는 것이 습관화 되었는데 이제 그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섭섭해 했습니다. 또 한 애연가는 이제 담배 필 때마다 3미터 이내에 음식점이 있는지, 커피 매점이 있는지 확인해야 하니 피곤하다고 말했습니다. 금연 법을 위반하면 최고 5백 달러의 벌금을 내야합니다.

로스엔젤스를 중심으로 한 남가주 소식을 전해드린 LA 생생 뉴스 로스엔젤스에서 정현숙 이었습니다.